검찰은 정모 전 녹원씨엔아이(옛 큐브스) 대표의 결정적 진술을 토대로 윤 총경의 추가 혐의를 포착했다. 그런 정 전 대표를 코 앞에서 놓친 건 경찰로서는 가장 뼈아픈 부분이다. 연예인 수사에 집착하면서 곁가지만 짚다가 결국 본질은 건들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13일 CBS 노컷뉴스 취재 결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광수대)는 버닝썬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지난 3월을 전후해 정 전 대표를 두 차례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최근 검찰 조사에서 정 전 대표는 지난 2016년 자신이 연루된 경찰 사건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윤 총경에게 수천만원 상당 비상장주식을 공짜로 건넸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당시 정 전 대표를 상대로 두 차례나 참고인 조사를 벌이면서도 이 같은 정황은 파악하지 못했다. 정 전 대표가 가수 승리(30·본명 이승현) 측에 윤 총경을 소개해준 이유 정도만 묻고, 정 전 대표와 윤 총경의 '거래 관계'에는 주목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에는 윤 총경과 그가 수사 상황을 알아봐줬다고 하는 술집 '몽키뮤지엄' 그리고 승리, 유인석과의 관계에만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정 전 대표는 의혹 당사자들을 연결한 주요 인물임에도, 당시 경찰은 단순한 참고인 조사에서 그친 채 한발짝 더 나아가지 못했다. 정 전 대표와 큐브스 법인 계좌 등 그를 둘러싼 금융 내역의 추적은 물론, 이와 관련한 압수수색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경찰은 윤 총경 아버지의 계좌까지는 확보했으면서도, 나머지 형제·자매 등 방계 가족의 계좌까지 살펴보는 건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무리한 수사 확대라는 판단에 따라 진행하지 않았다.
반면 검찰은 지난 7월 녹원씨엔아이 파주 본사와 서울사무소 등에 대한 압수수색 당시 확보한 컴퓨터에서 정 전 대표와 윤 총경 사이 공짜 주식 거래를 뒷받침하는 증거물을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조사 과정에서 윤 총경이 정 전 대표로부터 공짜 주식을 받을 때 형 명의를 빌린 정황까지 확인했다고 알려졌다.
한 경찰 관계자는 "정 전 대표와 큐브스 법인 등 금융계좌를 들여다봤더라도 현재 검찰에서 포착한 비상장주식 거래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어쨌거나 아예 손도 대지 않은 건 결과적으로 봤을 때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광수대는 윤 총경의 큐브스 주식 매입 정황을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던 지난 5월 중순쯤 돼서야 뒤늦게 파악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초창기에는 영장이 안 나와서 (윤 총경 주식계좌를) 못 봤다가 보강수사를 거쳐 다시 받았다“고 설명했다.
곧이어 광수대는 정 전 대표와 윤 총경의 관계를 다시 한번 들여다봐야 한다며 서울청 지능범죄수사대(지수대)에 수사 내용을 넘겼지만 타이밍은 이미 늦은 때였다.
지수대가 미공개 정보 이용을 의심하면서 부랴부랴 내사에 착수해 정 전 대표를 입건하고, 그와 윤 총경의 계좌를 순차적으로 추적했지만 그사이 정 전 대표는 경찰의 출석 요구를 무시한 채 돌연 잠적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소재 파악에 나섰지만 쉽지 않았고, 그렇게 신병 확보가 늦어지던 도중 검찰이 지난달 16일 정 전 대표를 체포했다. 경찰은 수사에 제동이 걸렸고, 윤 총경이 구속되기까지 검찰 수사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경찰 안팎에서는 결국 수사 초반부터 윤 총경과 승리·유인석 사이 의혹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다가 핵심 인물인 정 전 대표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예인 의혹만 지나치게 조명한 언론 보도가 경찰의 본질 수사를 방해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윤 총경을 구속한 검찰은 앞서 경찰이 송치한 기록을 검토한 뒤 경찰의 부실 또는 축소 수사 배경에 청와대 등 다른 기관의 외압이 있었는지 수사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버닝썬 사건 지휘 라인이 향후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