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사각형의 우중충한 건물, 잿빛 사각 벽으로 둘러싸인 꽉 막힌 교실…
'마치 교도소 같다'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답답한 공간으로 전락한 학교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도 거부감을 주고 가기 싫은 곳이 돼버렸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아이들이 가고 싶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당장 변화를 줄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아이들이 학교에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은 땡볕이 내리쬐고 비바람을 피할 수 없는 허허벌판 운동장뿐입니다.
쉬는 시간만이라도 우리 아이들이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휴식공간이 가장 필요해 보이는데요.
지난 2014년부터 건물 리모델링을 시작한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카를스루에 시의 하인리히 헤르츠 슐레(Heinrich-Hertz-Schule·전기공학 직업학교).
학생 수가 늘면서 반이 모자라 학교 리모델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학교 리모델링에서 중점을 둔 것은 휴식공간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교무실이 좁아졌지만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위해 공간을 양보했다고 합니다.
안드레아스 호너 교장선생님은 "선생님들 방에 50개의 책상과 의자만 있었는데 카페테리아처럼 바꿨다. 이곳에서 아이들도 선생님들과 같이 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안드레아스 교장선생님은 "건물을 바꾸고 난 후 학생들이 정말 좋아했다. 바꾼 후 학생들이 공부에 열정이 많이 생겼다"고 설명했습니다.
휴식 공간 하나만으로도 공부에 대한 열정이 오르고 아이들의 만족도도 높아지는데 왜 우리는 힘든 걸까요?
공간이 한정적이고 심지어 부족하기까지 한 학교 건축물 안에 아이들의 휴식공간을 마련해주기는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교실 간의 벽을 허물자'입니다.
일본의 후쿠오카 현에 있는 하카타 초등학교. 이 학교에는 교실 사이의 벽이 없습니다.
교실에 벽이 없으니 교실 공간이 넓어졌고, 복도 공간까지 확장해 교실을 넓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교실의 벽이 사라진 만큼 아이들이 쓸 수 있는 휴식 공간도 만들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교실은 수업 밖에 할 수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벽이 사라지니 수업 시간에는 교육의 공간으로, 쉬는 시간에는 휴식의 공간으로, 유연하게 공간을 활용하며 공간 낭비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우라카와 히로무 교장선생님은 "벽이 없는 학교는 누가 봐도 외부에서 보이기 때문에 일반 학교보다는 학교폭력이 없어졌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교실 간 벽을 없애니 단점도 있습니다.
학생들은 입학할 때부터 벽이 없는 교실을 사용해 익숙하지만 선생님들이 적응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소음의 문제도 있습니다. 각각의 교실에서 나오는 소음 문제를 해결하기가 여간 쉽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벽이 없는 교실'이 실패한 사례가 있습니다.
어룡 초등학교 오혜경 교장선생님은 "열린 교육의 시작은 '건축물의 벽 없애기'였다. 그런데 열린 교육을 4~5년 하니 각 반의 담임선생님이 불편함을 호소하는 거죠. 그러면서 '열렸던 공간을 다시 막자'며 벽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독일의 ASW 학교(Alemannenschule Wutoschingen·알레마넨슐레 부튀싱엔)는 공간을 분리했습니다.
정숙을 유지해야 하는 공간과 큰소리를 내도 되는 공간이 따로 존재합니다. 물론 이 두 공간에는 휴식공간과 수업하는 공간이 모두 있습니다.
8살부터 18살까지 650명의 아이들이 다니는 이 학교는 반 개념이 없습니다. 같은 학년끼리는 자유롭게 뒤섞여 수업을 듣고 소규모 수업 위주로 진행됩니다.
이곳은 학교 공간을 디자인할 때부터 학생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학교 공간 어느 곳에서나 자유롭게 앉거나 누울 수 있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앉거나 쉴 수 있는 소파가 곳곳에 많이 놓여있습니다. 학교 1층에서는 자유롭게 떠들며 공부를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지만 2층으로 올라가면 정숙해야 합니다.
2층에도 공부를 하는 공간,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각각 마련돼 있습니다.
스테판 루파너 교장선생님은 "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이 자기 공간을 갖고 있다. 학교에서 공부도 하지만 그 외의 시간도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학교가 독일의 학교처럼 다양한 공간을 둘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게 현실입니다.
어룡 초등학교는 그래서 교실 안과 각층에 휴식공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만드는 과정에도 아이들이 적극 참여했습니다.
교실 안에는 구역을 나누어 다양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층별로도 휴식공간이 있습니다. 4층 동아리 공간은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3층 배움의 공간에는 놀이시설을 구축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어룡 초등학교 오혜경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이 행복해한다. 교실이 가장 좋다고 해요. 아이들이 집에 안 가서 선생님들이 오후에 일을 못 하겠데요. 애들이 뒹굴뒹굴 놀고 있으니까. 애들이 딱딱한 의자에 안 앉고 뒹굴 수 있는 교실. 애들한테는 그게 좋은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최은영 (3학년, 어룡초등학교) 학생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공간에 마음대로 앉아서 하게 해주시니 좋아요"라고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정승은(6학년, 어룡초등학교) 학생은 "저희 손으로 공간을 만드니까 친구들도 많이 나오고 즐거운 학교가 된 거 같아요. 오고 싶은 학교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오혜경 교장선생님은 "궁극적인 혁신 학교의 목표는 수업 혁신이에요. 공간을 활용한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수업이 목표"라고 강조했습니다.
영국의 학교는 또 다른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캐피털시티 아카데미는 벽이 통유리입니다.
모든 공간이 오픈되어 있어 한눈에 들어오고 아이들도 생활하면서 답답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선생님도 안과 밖에서 아이들을 언제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소음의 문제도 잡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학교를 설계한 폴 칼호벤(Paul Kalkhoven) 포스터앤파트너스 기술 설계 책임자는
"제가 강조하는 부분은 건축에 대한 유연성이다. 예를 들면 복도는 수업이 끝나면 왔다 갔다만 하지 수업이 시작되면 교실로 사용되지 않는다"라며 "그래서 이 사용되지 않는 공간을 개방하게 되면 좀 더 유동적으로 변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캐피털시티 아카데미 마리안 진스 교장선생님은 "이 학교 공간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태도에도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향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캐피털시티 아카데미는 기존의 학교를 리모델링한 학교로 2003년도에 설립됐습니다.
정부 정책의 일환으로 기업의 재정투자를 받아 리모델링한 이 학교는 지역 주민들과도 시설을 공유하며 지역사회활동을 위한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마리안 진스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이 학교 시설을 자기들 만을 위한 게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해 주민들과 공유해야한다는 책임을 심어주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폴 칼호벤 기술 설계 책임자는 "노인들도 배울 수 있는 환경 제공을 목표로 두고 디자인해 (학교 건축물이) 만들어졌다"며 "저녁에 학생들이 학교를 사용하지 않을 때 지역 주민들이 그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학교 공간을 현대화하려면 비용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영국은 정부 정책을 통해 기업 투자를 받았고 이렇게 정부와 기업의 투자를 받은 학교는 주민들도 학교 건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일본 사이타마 현에 있는 시키 초등학교는 아예 건축 단계부터 지역주민들과 함께 사용할 공간을 설계해 만들어진 복합화 학교입니다.
학교 안에는 보육원도 있고 지역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강의실도 있으며 저녁에는 컴퓨터실, 음악실을 개방합니다. 강당과 도서관도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이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이타마현 교육위원회 관계자는 "학교 건물 복합화는 아이들은 적어지고 고령자가 늘어나고 있는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일본은 이런 현상이 극심해서 재정 부담이 많아졌는데 학교 시설과 공민관 같은 시설을 융합하면서 유지 관리비를 줄이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시키 초등학교처럼 건축 비용 문제는 학교 건축물을 주민들과 함께 사용하는 공간으로 만들면 건축 예산도 더 많이 확보해 해결할 수 있고 공간의 낭비도 줄이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학교는 장기적으로 많은 문제에 직면해있습니다.
출산율 감소, 고령화, 인구 감소.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학교 건물의 복합화는 이젠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보는 학교도 있습니다.
일본 도쿄에 있는 하루미 중학교에는 보육원, 중학교, 양로원이 모두 한 건물 안에 있습니다.
도시로 후지에 교장선생님은 "여기에 양로원과 보육원이 있다. 1학년 학년생들이 양로원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휠체어도 밀어드린다. 3학년 학생은 보육원 아이들이랑 놀아주는 보육 체험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출산율 감소와 고령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학교 건물 복합화를 시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학교 건물 복합화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동탄중앙 초등학교와 동탄중앙 이음터가 있습니다.
동탄중앙 초등학교와 이음터가 연결돼있어 학생들과 주민들이 함께 시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주민들과 학생들이 함께 같은 공간에 모여 소통하면서 유대감이 깊어졌다고 합니다.
동탄중앙 초등학교 안영길 교장선생님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뜨개질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어른들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교육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만들어진거다"고 말했습니다.
학교를 만들 때 비용과 현대적인 시설, 공간 확보 이 모든 점을 충족시키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학교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건 어떨까요.
넓은 공간도 확보하고 예산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좋은 시설까지 구비한다면 학교는 학생들을 넘어 전 세대를 만족시키는 공간으로 거듭나지 않을까요?
홍익대학교 유현준 교수는 "우리나라 학교의 문제점은 지역사회와 연계가 부족한 게 아닐까. 학생과 주민이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배우고 느끼는 게 있을 텐데 완전히 단절돼있어요"며 "학교를 개방해서 주민들이 남의 아이도 내 자식처럼 생각하면서 같이 키워야 합니다"고 지적했습니다.
유 교수는 "(학교를) 더 좋게 만들려면 아케이드(개방된 통로 공간)를 그 주변에 한 바퀴 돌려야 돼요. 그러면 방과 후 시민들이 쓰면서 거기가 광장처럼 쓰이겠죠. 거기 도서관이 있다면 저녁에 시민들이 왔을 때 시민도서관이 될 수 있고, 체육관이 있다면 시민 체육관이 될 수 있는 거죠"라며 "학교가 모든 공동체 설계의 중심이 돼야 해요"라고 강조했습니다.
※건국이래 대한민국 교육과정은 숱하게 바뀌었다. 사회변화와 시대요구에 부응한 결과다. 하지만 학교건축은 1940년대나 2019년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다. 네모 반듯한 교실, 바뀌지 않은 책걸상, 붉은색 계통의 외관 등 천편일률이다. 이유는 뭘까? 이로 인한 문제는 뭘까? 선진국과는 어떻게 다를까? 교육부는 앞으로 5년간 9조원을 학교공간 혁신에 투입한다. 학교건축 무엇이 문제인지 CBS노컷뉴스가 총 11회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편집자주]
글 게재 순서 |
①우리나라 학교건물은 왜 교도소를 닮았을까? ②"학교 갇혀서 공부하는 곳 아냐" 지역과 함께하는 영국 학교 ③'낙오자는 없다'…건물에 교육철학 반영한 독일 ASW ④ "학교가 오고 싶어요"…비결은 '사용자 참여 설계' ⑤ "보이지 않는 공간이 폭력을 부른다"…몰랐던 학교 공간들 ⑥ 해외 학교만 최고? 국내 학교도 모범 사례 있다 ⑦ 공간이 학생을 바꾼다…"죽어있던 교실이 살아났어요" ⑧ 교실 벽도 없앴다…학교건축 획일화 탈피한 일본 ⑨ 하늘 못 보는 한국 학생 vs 하늘 보는 일본 학생 ⑩ '학교시설 복합화' …우리나라 학교 공간이 나아갈 방향 ⑪ [영상] 공간과 세대간 벽 허문 학교…"아이들이 집에 안가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