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바나바의 여정따라 지중해 가르다

[잊을 수 없는 CBS 크루즈 성지순례 ③]

1
크리스탈호의 출항은 이스라엘의 북단 하이파 항구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이윽고 배는 떠났다. 크리스탈호에 승선한 성지순례자들이 5층, 8층, 9층의 레스토랑에서 망망한 지중해의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저녁식사를 마쳤을 무렵인 8시경이었다.

우리가 탄 배는 이스라엘 북서쪽의 키프로스 섬을 향해 18노트의 속력으로 가고 있었다. 그 망망한 지중해의 뱃길을 그 옛날 사도바울과 바나바는 작은 돛단배에 몸을 싣고 건넜을 것이다.

오늘처럼 파도가 없는 날은 잔잔한 지중해이지만 바람이 심한 날은 풍랑도 만만치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전도 여정은 참으로 위험했고 그 고충 또한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그 바닷길의 위험과 어려움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에서 구체적으로 적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라고 써놓았다.

그들의 그 전도여행은 정말 참혹하고 처절했으며 목숨을 건 고난의 길이었다. 여러 차례의 태장을 맞는 것도 힘든 일인데 하루도 아니고 일주일간의 낮과 밤을 파선 당한 배의 잔해를 붙들고 지중해의 바다 속에서 견뎌냈던 일이다.

2
또 요한계시록을 저술한 예수님의 제자 요한도 이 지중해를 거쳐 밧모섬으로 유배의 길에 올랐다. 실로 가시밭길이나 다름없는 그 험난한 여정을 따라 선인들의 발자취를 크루즈로 뒤따른다는 자부심에 나도 모르는 긍지와 용기가 솟아올랐다.

거기에다 푸르다 못해 코발트빛을 띠고 있는 잔잔한 지중해를 항해하는 기쁨은 더욱 컸다.


그 밤이 지나고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을 때 나는 항해중인 배의 제일 높은 갑판위로 올라갔다. 저 바다를 향해 크고 힘찬 목소리로 사도바울과 바나바의 이름을 외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갑판 위 좀 떨어진 곳에 몇 사람의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누가 봤으면 흡사 정신 나간 사람같이 보였을 지도 모른다.

나는 두 손을 입에 대고 마치 나팔을 불듯 소리를 질렀다. ''사도바울님! 바나바님!''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저 먼 바다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바닷바람을 타고 메아리도 없이 날라 간 내 목소리는 이내 지중해의 파도 속으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윽고 크리스탈호는 키프로스의 리마솔에 기항을 했다. 거기서 가까운 살라매스가 바울의 동역자 바나바의 고향이었다. 그 섬의 살라미에는 바나바의 무덤이 있다고 했다.

키프로스는 독립공화국으로 제주도의 다섯 배의 크기이며 지중해의 동부에 있는 섬이다. 이 키프로스의 파포스(Paphos)는 아름다운 도시여서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성경에는 ''파포스''를 ''바보''라고 번역했는데 그 때 그곳에는 바울의 전도를 극렬하게 방해하던 바예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3
마침내 바울로부터 소경이 되라는 질타를 받은 그는 그 즉시 눈이 멀었고 이를 본 총독 서기오 바울이 감동을 받아 예수를 영접한 곳이다.

또 그 바로에 서기 300년경에 세워진 바울기념교회인 채찍교회가 발굴이 되어 그 의미가 더욱 깊었다.

그런데 그 교회의 뜰 왼쪽에 박혀있는 대리석 돌기둥이 찾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 돌기둥은 바울이 채찍을 맞아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린 바로 그 현장이었다.

''사십에 하나를 감한 매''를 맞았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사람이 사십대 전부를 맞으면 죽기 때문에 사십에 하나를 감하여 매를 쳤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

숙연한 마음으로 그 돌기둥을 바라보고 서 있는데 어느 외국인 부부가 가까이 오더니 잠시 묵념을 한 후 그 돌기둥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그들을 따라 그대로 했다. 바로 이런 순간이 성지순례가 주는 또 다른 감동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 주에 계속)

글·사진 ㅣ 이광천 한국교회사연구소장·수필가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