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배는 떠났다. 크리스탈호에 승선한 성지순례자들이 5층, 8층, 9층의 레스토랑에서 망망한 지중해의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저녁식사를 마쳤을 무렵인 8시경이었다.
우리가 탄 배는 이스라엘 북서쪽의 키프로스 섬을 향해 18노트의 속력으로 가고 있었다. 그 망망한 지중해의 뱃길을 그 옛날 사도바울과 바나바는 작은 돛단배에 몸을 싣고 건넜을 것이다.
오늘처럼 파도가 없는 날은 잔잔한 지중해이지만 바람이 심한 날은 풍랑도 만만치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전도 여정은 참으로 위험했고 그 고충 또한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그 바닷길의 위험과 어려움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에서 구체적으로 적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라고 써놓았다.
그들의 그 전도여행은 정말 참혹하고 처절했으며 목숨을 건 고난의 길이었다. 여러 차례의 태장을 맞는 것도 힘든 일인데 하루도 아니고 일주일간의 낮과 밤을 파선 당한 배의 잔해를 붙들고 지중해의 바다 속에서 견뎌냈던 일이다.
거기에다 푸르다 못해 코발트빛을 띠고 있는 잔잔한 지중해를 항해하는 기쁨은 더욱 컸다.
그 밤이 지나고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을 때 나는 항해중인 배의 제일 높은 갑판위로 올라갔다. 저 바다를 향해 크고 힘찬 목소리로 사도바울과 바나바의 이름을 외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갑판 위 좀 떨어진 곳에 몇 사람의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누가 봤으면 흡사 정신 나간 사람같이 보였을 지도 모른다.
나는 두 손을 입에 대고 마치 나팔을 불듯 소리를 질렀다. ''사도바울님! 바나바님!''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저 먼 바다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바닷바람을 타고 메아리도 없이 날라 간 내 목소리는 이내 지중해의 파도 속으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윽고 크리스탈호는 키프로스의 리마솔에 기항을 했다. 거기서 가까운 살라매스가 바울의 동역자 바나바의 고향이었다. 그 섬의 살라미에는 바나바의 무덤이 있다고 했다.
키프로스는 독립공화국으로 제주도의 다섯 배의 크기이며 지중해의 동부에 있는 섬이다. 이 키프로스의 파포스(Paphos)는 아름다운 도시여서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성경에는 ''파포스''를 ''바보''라고 번역했는데 그 때 그곳에는 바울의 전도를 극렬하게 방해하던 바예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또 그 바로에 서기 300년경에 세워진 바울기념교회인 채찍교회가 발굴이 되어 그 의미가 더욱 깊었다.
그런데 그 교회의 뜰 왼쪽에 박혀있는 대리석 돌기둥이 찾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 돌기둥은 바울이 채찍을 맞아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린 바로 그 현장이었다.
''사십에 하나를 감한 매''를 맞았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사람이 사십대 전부를 맞으면 죽기 때문에 사십에 하나를 감하여 매를 쳤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
숙연한 마음으로 그 돌기둥을 바라보고 서 있는데 어느 외국인 부부가 가까이 오더니 잠시 묵념을 한 후 그 돌기둥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그들을 따라 그대로 했다. 바로 이런 순간이 성지순례가 주는 또 다른 감동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 주에 계속)
글·사진 ㅣ 이광천 한국교회사연구소장·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