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여름까지 일곱 작품 선보일 허성태 "너무 행복"

[노컷 인터뷰]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노석현 역 허성태 ②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배우 허성태를 만났다. (사진=한아름컴퍼니 제공)
※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허성태의 데뷔 일화는 꽤 유명하다. 부산대 노어노문학과 출신인 허성태는 조선소에서 일하던 직장인이었다. 과장 진급을 앞둔 지난 2011년 이번이 꿈을 이룰 마지막 시기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SBS '기적의 오디션'에 출연했다. 마음속에만 품었던 배우에 도전하기 위한 과감한 선택이었다.

단편영화를 거쳐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상의원', 선지자의 밤', '레나' 등에 출연한 그가 본격적으로 관객에게 자기 얼굴을 알린 작품은 '밀정'이었다. '범죄도시'에서는 독사파의 두목 독사 역을 맡았고, '남한산성'에서는 용골대 역으로 얼굴도장을 찍었다. 이 밖에도 영화 '부라더', '꾼', '창궐', '말모이', 드라마 '무신', '백년의 신부', '터널', '마녀의 법정', '크로스', '친애하는 판사님께', '이몽', '못말리는 컬링부', '보이스 3', '왓쳐'까지 꾸준히 작품을 늘려나갔다.

올해 드라마 4편, 영화 1편에 출연(특별출연 제외)한 그는 내년 여름까지 일곱 편의 작품으로 관객과 시청자를 찾을 예정이다. 다작하는 배우가 한둘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소보다 더 부지런히 일한다고 평해도 과장이 아닐 테다.


그래서일까.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CGV 용산아이파크몰 시네 드 쉐프에서 만난 배우 허성태는 "요새 너무 행복하다"면서 미소지었다. 작품 수가 여러 편인 것도, 연기하는 캐릭터가 더 다채로워진 것도 모두 기쁨이다. 그동안 악역을 자주 맡았다면, 차기작들에선 코미디에도 도전하기에 그에겐 의미가 더 남다르다.

◇ 역할보다 중요한 건 작품이 가진 뜻

'열두 번째 용의자'는 추리극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과오에 관해 질문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전하려는 메시지가 극중 인물 대사로 꽤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편이다.

허성태는 "교과서에 매번 나오는 일제 강점기, 6.25, 5공화국 6공화국, 민주화 운동이 아닌 다른 시대를 다루고, 관객들도 '나였다면 (저 때) 어떻게 했을까?'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라서 매력적이었다. 특히나 일본 앞잡이 전문 배우였던 저로선 되게 많은 걸 생각하게 됐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백두환 시인의 살인사건을 파헤치려는 김기채(김상경 분) 수사관이 사실은 이념에 매몰된 자였다는 것은, 이 영화의 중요한 반전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군으로 있다가 해방되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육군으로 탈바꿈한 그의 변신은 카멜레온 뺨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누구보다 '애국자'라고 강조하는 데선 실소가 나온다.

허성태가 맡은 노석현은 김상경이 맡은 김기채와 극 후반부에서 대립한다. (사진=㈜영화사 진 제공)
'열두 번째 용의자'는 김기채라는 인물을 통해 맹목적인 이념 몰이의 위험함을 경고한다. 허성태는 "우리 영화에도 있지만, '이게 진짜 애국'이라는 대사가 '변호인'에도, '말모이'에도 있다. 김상경 선배님이 맡은 역할이 애국을 운운하고, 저는 땅에 묻힌 애국자들이 통곡하니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하지 않나. 집착 내지는 종교 같은 믿음을 갖고 사는 것 같은데 그건 어떤 선택일 것"이라며 "저도 (김기채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저렇게 신념이 강하지?'"라고 말했다.

김기채 역을 연기한 김상경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극우 사이트 일베로부터 '빨갱이 배우'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김상경은 지난해 인터뷰와 '열두 번째 용의자' 언론 시사회에서 자신은 배우일 뿐이라며, 이야기가 재미있고 인물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서 선택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배우 본인 뜻이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동안 해 온 작품을 가지고 얼마든지 어떤 배우의 성향을 재단하려 들 수 있다. 허성태 역시 이런 점이 걱정되진 않았을지 궁금했다. 허성태는 "그걸 따졌으면 '이몽', '밀정', '말모이는 안 했을 거다. 그 작품이 좋은 뜻을 가졌다면 제가 악역이 됐든 그냥 해 왔던 것 같다"라면서도 "일본 쪽은 못 간다"라고 해 폭소가 터졌다.

이어, "(일본인 역도) 못할 것 같다. 부담감 때문이 아니라 그쪽으로 제가 보여줄 다른 연기 색깔이 없다. 또 똑같다는 얘기를 들을 것 같다. 일본어로 했지, 한국어로 했지, 일본 사람도 됐지, (친일하는) 한국인도 했지, 수염도 기르고 올백도 해 봤고 포마드도 해 봤고 총도 맞고 완장도 차 봤다"라고 말했다.

정의롭고 선한 역할은 잘 안 들어오느냐는 짓궂은 질문에 허성태는 "기자님이 그런 질문을 해서 '폭소를 자아냈다'라고 쓰시면 될 것 같다"라고 너스레를 떨어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 허성태는 "이게 첫 작품이다. 정의로운 역할이 다행히 들어와서 지금 촬영하고 있다. 드라마 '사이코패스 다이어리'에서 주연 배우 조력자 역할을 하게 돼 천만다행이다. 너무나 하고 싶었고 정말로 해 보고 싶었다. 정의로운 역할 많이 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 하고 싶은 장르는 전쟁 영화

허성태는 '열두 번째 용의자'를 비롯해 내년 여름까지 무려 일곱 편의 차기작이 대기 중이다. "요새 너무 행복하다"라는 허성태에게 바쁜 걸 체감하냐고 묻자 "네. 매니저가 더 힘들 것 같다"라고 답했다. 비슷한 역할이 많이 들어오던 시기도 있었지만, 앞으로 관객과 시청자에게 다가갈 작품에서는 새로운 모습이 꽤 나올 예정이다.

10일 개봉한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한 유명 시인의 살인사건을 통해 시대의 비극을 밝히는 심리 추적극이다. (사진=㈜영화사 진 제공)
허성태는 "내년 여름까지 오픈될 게 7개인데 다행히 그 작품에서는 빌런의 모습이 아닌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게 돼서 진짜 운이 좋은 것 같다"라며 "코믹도 엄청 많이 보시게 될 거다. 저한테 어울리는 옷을 딱 입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코믹 연기의 장점은 좀 더 자유롭고 유연하게 연기할 수 있다는 거다. 허성태는 "감독님이 긍정적인 테이크를 많이 갔다는 건, 제가 애드리브를 무모하게 치는 건 아니라는 거니까 되게 짜릿하기도 하다. 요새 그런 작품을 되게 재밌게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과거 인터뷰에서 정의로운 역할이나 코미디 장르를 하고 싶었다고 한 허성태는 그 바람을 실현했다. 지금은 또 어떤 캐릭터와 장르에 관심이 있을까. 허성태는 "옛날부터 전쟁 영화 한번 해 보고 싶었다. 전쟁 영화를 많이 본다. '블랙 호크 다운' 같은 건 배우들이 진짜로 액션을 다 했다고 해서 보면서도 놀랐다. 엊그제는 무료 영화로 '12 솔져스'를 재밌게 봤다. '봉오동 전투'도 봤고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도 봤고. 전쟁 영화 좋아한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해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전쟁 영화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허성태는 "배우가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건, 카타르시스나 뭔가를 느꼈다는 것이지 않나. 남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전우애 같은 것? 그럴 기회는 그런 작품 하는 현장밖에 없을 것 같다"라면서도 "근데 아마 북한군 역할이 먼저 들어올 것 같다"라고 답해 또다시 폭소가 나왔다.

◇ '열두 번째 용의자', 참여에 의의가 있지만…

허성태는 평소엔 '나는 자연인이다'를 즐겨 보고, 고양이 두 마리의 집사로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하나에 꽂히면 파고드는 편이라, 인제 지난 방송분은 얼핏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아내에게 줄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라고. 도심에서 빡빡하게 사는 걸 좋아하지 않아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는 그의 꿈은 열심히 연기해서 공기 좋은 곳에 마당 있는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열두 번째 용의자' 흥행에 대한 부담이 있냐고 질문하자, 허성태는 "흥행할 수 있는 성격의 영화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참여한 의의에, 흥행이라는 부분이 그렇게 크진 않았다"라고 답했다. 이어, "학생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라며 "저희는 의의를 담은 영화지 큰 상업영화는 아니지 않나. 의미 있게 봐주셨으면 좋겠고, 다들 고생하셨으니 적자는 안 났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끝>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언론 시사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배우 김동영, 허성태, 고명성 감독, 김상경 (사진=㈜인디스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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