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후 7시 30분쯤 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VIP 시사회 현장 분위기는 그렇게 무르익어 갔다.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를 향한 우리네 열망을 노래한 '그날이 오면' 등이 흐르는 가운데, 스크린에서는 반독재 운동에 몸을 던진 고 문익환(1918~1994)·문동환(1921~2019) 목사 등 북간도 출신 기독교인들의 치열했던 삶이 물결치고 있었다.
1900년대 초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나라 밖 전초기지로 뿌리내렸던 북간도. 일찍이 이곳에서 기독교에 바탕을 둔 선진 교육을 받고 자란 북간도 후예들은 해방 뒤 한국 사회에 정착했다.
치열한 항일 독립 무장투쟁에 참여하거나 이를 목격하면서 자란 그들이, 분단·전쟁·독재에 휘말린 당대 한국 사회 참상을 목격했을 때 취할 행동은 자명했으리라.
이날 오후 9시쯤 시사회가 마무리된 뒤 만난, 우리 사회 민주화에 헌신해 온 김상근(KBS 이사장) 목사는 "그때 기억들이 많이 떠올라 나 역시 눈시울을 붉혔다"며 "함께 살고… 다 겪고 보내드리고 한 사람들이니까, 그분들 삶이 너무 아쉽기만 하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 영화를 두고는 "처음에는 너무 교육적이다 싶었는데, 전체적으로 잘 조화를 이루도록 엮었다"며 "교인들은 물론이고 젊은이들도 많이 봤으면 한다"고 평했다.
김 목사는 "북간도 역사를 비롯해 민주화·인권 운동 역시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된 듯하다"며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보면 '얼'이 깃든 힘을 얻을 수 있을 텐데, 그것이 곧 우리 역사를 만들어가는 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 "기억하고"…"반성하고"…"실천하고"…"이어가고"
이날 시사회에 앞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한완상 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우리가 북간도를 생각하면 윤동주(1917~1945) 시인과 문익환·문동환 목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운을 뗐다.
한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윤동주 시 '십자가'와 문익환 시 '꿈을 비는 마음'을 낭독한 뒤 "제국주의 하늘 아래에서 '모가지를 드리우고' 진짜 십자가에서 민족을 위해 죽겠다는 윤동주, 분단된 현실을 통해 이득을 얻는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문익환이 여기에 있다"며 "오늘 이 다큐멘터리('북간도의 십자가')를 보면서 가슴으로 그 찬가를 외치시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진 국회·정부 유력 인사들이 건넨 축사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을 지니고 있었다.
정세균(더불어민주당) 전 국회의장은 "CBS는 권위주의 시대에도, 민주화 시대에도, 산업화 시대에도, 그리고 지금도 많은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채널이다. 3·1운동 100주년인 올해 CBS가 야심작을 내놓은 데 박수를 보낸다"며 "북간도에서 기독교인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열심히 싸웠던 사실을 우리 국민 모두가 기억하고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오늘 '북간도의 십자가'를 보면서 이러한 (민주화에 앞장선) 기독교 운동의 뿌리가 북간도 만주에서 독립운동했던 기독교인들에게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며 "지금 우리가 민주화를 한창 꽃피워 나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갈 길이 멀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건설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래서 기독교 정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하는 '북간도의 십자가'는 뜻깊다."고 전했다.
우리공화당 홍문종 공동대표 역시 "십자가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쳤던 신앙의 선각자들 모습을 보며 신앙인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십자가도, 나라도 지키는 것인가'라는 좋은 시사점을 주는 것 같다"며 "기독교가 빛과 소금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현장의 모습들을 본다. 오늘 이 시사회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를 생각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 문화체육관광부 노태강 제2차관은 "개인적인 희망사항이 있다. 사실 이 일을 하면서 청년들을 만나보면 독립운동이나 일제에 맞서 북간도에서 숭고하게 희생하신 분들 이야기를 아주 먼 옛날 이야기로 생각하고 있다"며 "그분들의 숨결과 활동들이 아직도 우리 주위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청년들이 이 영화로 많이 느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 "종교로 끝나지 않고 '민족의 희망' '빛과 소금' 되도록…"
이날 시사회에서 CBS 한용길 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 영화가 끝날 때 우리가 어떤 느낌을 갖게 될지 궁금하다"며 "CBS가 올해로 창사 65주년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민영방송으로서 역사의 현장마다 항상 올곧은 소리로 언론의 역할을 담당했던 CBS는, 3·1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무엇을 할까 깊이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례적으로 지나가는 3·1운동 100주년이 아니라, 3·1운동에 앞장섰던 북간도 믿음의 선배들, 신앙 하나로 외진 곳에 가서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의 기틀을 세웠던 그 귀한 흔적들을 담기 위해 CBS 구성원들이 많은 수고를 했다"고 부연했다.
한 사장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널리 알려주시기를 바란다"며 "CBS는 항상 기독교가 종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민족의 희망이 되고, 빛과 소금이 되는 데 앞장서도록 노력하겠다"고 역설했다.
'북간도의 십자가'를 연출한 CBS 반태경 PD는 제작진을 대표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편 126장 5절)라는 말씀을 어떻게 하면 이 시기에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을지 많이 노력했다"며 "부족한 영화이지만 든든한 지원자·조력자가 돼 달라"고 호소했다.
'북간도의 십자가'에 출연해 이야기 흐름을 이끈 역사학자 심용환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반태경 PD와는 1977년생 동갑내기다. 우리는 어린 나이에 6월항쟁을 겪은 민주화 세대"라며 "한국 교회를 향한 많은 비난과 비판이 있지만, 독립·민주화 운동 선배 세대들이 남긴 업적을 감당해야 하는 세대로서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신호탄으로 봐 달라"고 전했다.
이날 시사회 뒤 만난 심용환 교수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오늘로 이 영화를 세 번째 봤는데 볼 때마다 울게 된다. (이 영화를 통해 인사드린) 문동환 목사께서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며 "한 시대가 끝났지만, 소수일지라도 우리 같은 젊은이들이 새로운 기독교 역사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반태경 PD 역시 "많은 분들이 잘 봤다고 박수쳐 주셔서 1년 10개월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개봉까지 남은 기간 더 많이 알려서 더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한국 교회에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지금, 교회를 다니지만 교회 역사를 잘 몰랐던 기독교인들에게, 이 영화가 실천하는 신앙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일제 강점기, 나라를 잃고 만주 북간도로 이주했던 조선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황무지를 삶의 터전으로 일구면서 민족운동과 기독교를 결합시킨 남다른 문화를 뿌리내리죠. 이는 당대 항일 독립운동은 물론 해방 뒤 한국 사회 민주화운동에도 뚜렷한 영향을 미칩니다. 10월 17일 개봉을 앞둔 다큐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를 바탕으로 북간도와 그곳 사람들의 숨겨진 가치를 조명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
① 나라 잃은 그들에게 '북간도'는 약속의 땅이었다 ② 1백년 전 만주서 '간도 대통령'으로 불리운 한국인 ③ 인삼밭 들어서 잊힌 '청산리대첩' 최대 격전지 ④ 윤동주는 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나 ⑤ 북간도 넘어간 카메라…조선족 너머 겨레를 담다 ⑥ 딸 그만 낳으라고 '고만녜'가 북간도서 되찾은 꿈 ⑦ 만주 15만원 탈취사건…'무장투쟁' 신호탄을 쏘다 ⑧ 야만에 맞설 북간도 정신 깨우는 '분노의 추모' ⑨ 생애 마지막 18년 중 12년 옥살이…투사 '늦봄'의 길 ⑩ 민주화 불꽃으로 타오른 '북간도 후예들' ⑪ 항일부터 통일까지…1백년 '북간도 꿈'에 객석 왈칵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