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과잉되는 광장 정치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행보로도 해석된다. 총동원령을 내렸던 지난 3일 대규모 집회에 성공한만큼 이제는 범보수와 중도층이 주도할 공간을 마련해놔야 한다는 판단도 엿보인다.
한글날인 이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운동본부' 등 보수단체 주도로 조국 퇴진 집회가 개최됐다. 한국당에선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지도부를 포함해 여러 의원이 '개별적'으로 참석했다.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는 연단에 오르지도 않고 별도의 발언도 최대한 자제했다. 황 대표는 집회를 마치고 차에 타기 전에 기자들과 만나 "국민들의 분노가 문재인 정권을 향하고 있다"며 "국민의 분노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망국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짤막하게 언급했다.
나 원내대표 역시 집회 장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늘은 대한민국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왔다"며 "국민의 분노가 임계점에 달했고 이젠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는데 그쳤다.
한국당 지도부의 이러한 모습은 당이 동원하는 집회라는 색깔을 누그러뜨리고, 시민 중심의 집회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한국당 한 핵심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집회에서 당이 공식적으로 한 것은 전혀 없다. 개입도 없고, 동원령도 없었다"며 "순수 시민단체, 자유시민, 지역에서 분노하는 시민들이 모두 모인 집회"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집회에선 보수 단체 외에도 '서울대 광화문집회 추진위원회' 등 서울대 학생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한국당은 이중 20대 청년층과 범보수층, 중도층 등의 참여를 특히 주시하는 모습이다.
또 다른 한국당 한 관계자는 "지난주 개천절 집회의 의미는 건국 이래 최대 인파가 몰려든 시위였다"며 "오늘 한글날 집회의 의미는 한국당, 우리공화당의 집회개최와 동원령 없이도 이만큼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주최 측은 이번 집회 참가 인원을 약 100만명으로 추산했다.
한국당은 오는 12일 예정된 장외집회도 취소했다. 만일 이날도 보수단체 등 자발적인 집회가 개최되면 지도부가 시민 자격으로 참석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편 집회 불씨를 살리면서도 일정 부분 거리를 두는 모습은 정치권이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광장 정치에 의존한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여야는 지난 3일 '조국 규탄' 광화문 집회와 5일 '검찰 개혁' 서초동 집회를 두고 세 대결에 주력했다. 일각에서는 참여 숫자 싸움에 몰두한다는 비판도 샀다.
이밖에 20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당내 피로감이 쌓인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간 장외투쟁을 지속해왔고, 그때마다 지역별로 '인원 할당량'을 내려 당내 불만 기류가 흐른 바 있다. '총동원령'을 내린 지난 3일 집회에서 자발적 인원 참석을 상당 부분 확인한 만큼, 당력을 효율적으로 보충해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한국당의 이러한 행보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당내에선 9일 웅동학원 관련 수사를 받는 조 장관 동생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부글부글 끓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국민을 이렇게 농락해도 되겠느냐"며 "앞으로 상황을 봐서 총동원령을 또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