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하고 싶어요”…화마가 삼킨 장애인 공동체의 꿈

발달장애인시설 '우리마을' 화재로 생활기반 잃은 장애인들
복구까지 최소 6개월 소요

지난 7일 인천 강화군의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우리마을' 내 콩나물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생활이 곤란해진 발달장애인 김성태(36)씨. (사진=주영민 기자)

인천의 한 장애인 시설에 불이 나 이곳에서 일하던 발달장애인 50명이 일터를 잃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인천 강화군의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우리마을 내에 위치한 콩나물공장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 김성태(36)씨는 지난 8일 일터를 잃었다. 전날 공장에서 불이 나 모든 시설물이 잿더미로 변했기 때문이다.


충남의 한 농장에서 지내던 김씨는 2009년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해 어려움을 겪다 그의 사연을 전해들은 지인의 추천으로 이 공장에 입사했다.

발달장애를 앓는 김씨는 학습능력이 일반인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특히 숫자를 잘 외우지 못해 지금도 번호키로 잠긴 문을 여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상황을 악용한 농장 주인은 김씨 몰래 농장 사업자등록을 김씨 명의로 냈다. 몇 년이 흘러 김씨에게는 수백만원의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연체가 발생했다. 보육원에서 자라 연고가 없어 농장에 숙식하던 김씨의 정보를 빼낸 것이다. 김씨의 임금을 가로채 해외여행을 간 사람이 있는 등 모두 그의 불행을 악용했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김씨의 인생은 콩나물공장으로 일터를 옮기면서 180도 바뀌었다. 평생 못 갚을 줄 알았던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연체금도 수년에 걸쳐 갚았고 주거지도 공장 인근의 장애인 자립시설인 ‘그룹홈’으로 옮겼다.

보통 발달장애인이 취업하는 곳은 단순 노동을 요구하는 전자부품 조립 공장이나 농장 등이다. 이곳에서 그들이 받을 수 있는 임금은 한 달 내내 일해도 20만원 내외다.

김씨를 비롯한 발달장애인들이 일하는 이 공장은 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가 2000년 고향을 내려와 문을 연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이다. 김 전 대주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기부해 이 시설을 만들었다. 세상의 장애와 비장애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였다.

김 전 대주교의 바람처럼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발달 장애인들이 최저시급 이상의 임금을 받으며 이 공장에서 자립의 꿈을 키웠다. 이 곳에 근무하는 발달장애인들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동료들을 위해 자신의 월급을 나누며 서로를 도왔다.

생활이 안정을 찾으면서 김씨는 강화도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여행을 하겠다는 꿈이 생겼다. 여행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저축도 했다. 김씨의 동료들도 저마다 공장에서 꿈을 키웠다.

지난 7일 화재로 내부시설이 모두 불에 탄 '우리마을' 내 콩나물 공장. (사진=독자 제공)

하지만 지난 7일 오전 3시쯤 김씨가 일하던 콩나물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공장 내부 시설이 모두 불에 타 공장 추산 15억여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다행히 근무자가 없는 시간대에 발생한 화재여서 인명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공장 가동이 어렵게 되면서 김씨를 비롯한 50명의 발달장애인의 생활은 어렵게 됐다. 공장은 이번 화재 피해를 복구하는 데 최소 6개월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공장이 빨리 복원됐으면 좋겠다”며 “다시 일을 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우리마을 원장인 이대성 신부는 “이번 화재로 50명의 발달장애인들의 삶의 기반이 무너지게 됐다”며 “복구에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여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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