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현대사 관통한 화가 '이중섭', 그가 지킨 예술의 혼

[인터뷰] 창작 오페라 '이중섭' 김숙영 연출, 현석주 작곡가
창작 오페라 '이중섭'…서울 오페라 페스티벌 초청작으로 공연

창작 오페라 '이중섭' 공연 모습
'노을 앞에서 울부짖는 소', '싸우는 소', '흰 소' 등의 작품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화가 이중섭. 그는 근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의 반만년 역사 중 너무나 아픈 격동기였던 일제강점기와 분단의 시기를 살아왔던 그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착하고 근성 있는 한국인을 묘사했던 천재 화가였다.

다소 투박하지만 강렬한 그림체로 그려진 그의 작품은 당시의 역사를 관통하며 아픔 속에서도 우직하고 묵묵하게 살아간 한국인을 표현했다. 고통 속에 울부짖는 것이 아닌 힘들고 슬프지만 맑은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작품 속 소의 모습은 당시의 한국인의 모습을 투영하며 영원히 살아간다.

하지만 '불행한 천재 화가'라는 수식어 처럼 화가 이중섭의 일생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많은 예술가들의 말로(末路) 처럼 자신의 예술 세계를 알아주지 못한 시대에서 그는 외롭고 쓸쓸하게 저물었다.

이러한 이중섭의 일대기가 창작 오페라로 펼쳐진다. 그간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며 많이 알려진 이중섭과 부인인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그의 쓸쓸했던 삶과 동료 예술가와의 관계를 통해 예술가 이중섭의 일생을 조망한다.

김숙영 연출 (사진=김숙영 연출 제공)
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창작 오페라 '이중섭'의 김숙영(49) 연출은 "이중섭의 오페라를 연출하려 그를 찾아보니 아내와의 결혼 등 삶보다 드라마틱 했던 것이 일제강점기와 6.25 등 분단의 아픔을 겪었던 삶이었다"며 "전쟁 등으로 힘든 시기였지만 이중섭과 주변 친구들이었던 문필가, 화가, 시인들이 모여서 세상과 정치를 논하고 예술을 논했던 사실 자체를 조망해보고자 했다"고 작품 연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출생한 이중섭은 격동의 역사 속을 살아온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경계인으로서 삶을 살았다.

이중섭은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수학하며 다양한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1943년 원산으로 돌아와 작품 활동에 매진한다. 이 당시 자신을 찾아 원산으로 온 마사코와 결혼해 가정을 이루지만,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북한 땅이 공산당의 치하에 물들게 되자 그의 고난은 시작된다.

김 연출은 "이중섭이 지주의 아들이고 부자다 보니 공산당으로부터 억울함을 당하게 됐다"면서 "그 이후 남한으로 내려왔지만 붉은색을 사용한 작품 등 사상 문제로 인해 괴로워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어려웠던 이중섭의 삶 속에서 예술가 친구들이 그를 보호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고, 많은 사람들이 몰랐던 이중섭에 대한 내용을 오페라에 담았다"며 "또 성악가들이 이중섭의 그림을 설명하는 아리아 등을 담아 그의 작품을 관객들에게 전한다"고 밝혔다.


창작 오페라 '이중섭'은 일반적인 오페라와는 약간 다르다. 작품이 관통하는 주제도 역사적 정신이 담겨있거니와 레치타티보(recitativo·창법 중 하나로 아리아에 대하여 대사 내용에 중점을 둔다) 역시 이러한 묵직한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도록 변주됐다.

또 당시 실제 이중섭과 친한 예술가들을 작품에 등장시키고 이들이 나눴던 대화를 차용해 극을 완성시켰다.

김 연출은 "오페라가 역사성, 정신 등을 담아 진지하다고 재미없고 슬프다고 재미없는 건 아니다"며 "슬픔이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고 관객들에 와닿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재미있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막을 이중섭 작품의 전시를 하는 영상을 보면서 설명하도록 꾸몄다"면서 "자유롭고 싶었지만 항상 작품안에서만 살아가셨던 이중섭을 그려내어 그 분은 사라졌지만 작품들은 계속 파동 치듯이 남아있는 듯한 연출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현석주 작곡가
이날 인터뷰에 함께한 창작 오페라 '이중섭'의 현석주 작곡가는 "오페라에서 작곡하면서 하기 쉬운 실수가 아리아 따로 대사 따로 구성하는 것이다"며 "대사를 처리하는 레치타티보 역시 하나의 음악과 같은 흐름으로 대사를 통해서 극적인 스토리와 메시지에 몰입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고 전했다.

아울러 "작곡가 자신만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고 친근하게 생각하는 상황적 요소를 가지고 현대적인 것들과 결합을 시켜서 음악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뒀다"고 덧붙였다.

또 현 작곡가는 "일반 오페라를 보면 연출을 할때 음악이 진행되면 사람들이 정지되는 구성이 많아서 극과 음악이 분리된다"며 "하지만 이 작품은 음악이 흘러가는 순간순간들을 장면화 하는 연출로 만들어져 절대 극의 흐름이 정지되지 않고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오페라다"고 강조했다.

오페라 '이중섭'은 총 4막으로 구성됐다.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말처럼 결말은 비극적이고 쓸쓸하게 끝나지만, 작품은 이를 끝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위대했던 화가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앞으로도 영원히 남아있을 그의 걸작들과 엄혹했던 시대에서 그가 오롯이 지켜왔던 예술과 정신 세계를 앞으로를 살아가는 우리가 다시금 새롭게 지켜나가야 한다는 책임에 대한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김 연출은 "이중섭이 마흔 살에 돌아가셨는데 당시 죽어갈때 아내도 귀신이라 그러고 친구들도 못알아 보고 신문에 마약쟁이로 죽었다해서 친구인 시인 구상이 너무 속상해했다"며 "'예술가를 예술가로 먹여주지 않는 세상을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라는 구상의 말처럼 저분의 삶을 진실되게 알리고 얼마나 투철하게 예술과 정신을 지키려고 노력했는지 전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창작 오페라 '이중섭'은 2016년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서귀포시에서 제작된 창작 오페레타의 오페라 버전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서귀포시는 이중섭이 1년도 채 살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가난했지만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서귀포시는 이러한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오페라 '이중섭' 지역 대표 문화 콘텐츠로 성장시키려 지원을 이어갔고, 그 결과 2016년도부터 매해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김 연출 역시 이러한 시의 도움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김 연출은 "창작 오페라 같은 경우 자치 단체마다 지역 특색이 드러난 소재로 연출을 해달라는 제의가 오는데 거기에는 지역 단체가 들어가야 하고 이 얘기가 들어가야 하는 등의 조건이 달린다"면서 "그런데 서귀포시는 해를 거듭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브랜드로 오페라를 만들어보자며 시를 강조하는 부담감을 줄이라고 결정을 해줘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어 "오페라계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이번에는 작품 올리기 전에 시에서 먼저 젊은 성악가들한테 기회를 주자며 전국 공모를 실시했다"면서 "지역 사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젊은 성악가를 발굴하고자 이동호 지휘자와 시 공무원들이 서울 와서 오디션 하느라 많은 고생을 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캐스팅 한 상태에서도 전화가 와 바꾸라고 하는 것이 고질적인 문제인데 이번에는 다 털어내고 처음부터 오디션을 통해 성악가를 채용했다"며 "그래서 데뷔를 한 젊은 성악가가 두명이다"고 강조했다.

전국 공모 오디션 통과로 주역 배우 자리를 꿰찬 마사코 역에 소프라노 김유미(왼쪽), 김광림 역에 바리톤 김원
이번 작품의 전국 공모 오디션을 통과해 주역 배우 자리를 꿰찬 두명은 마사코 역에 소프라노 김유미와 김광림 역에 바리톤 김원이다.

창작 오페라 '이중섭'은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서울오페라 페스티벌 2019'의 초청작으로 공연되는 작품이다.

서울오페라페스티벌과 창작 오페라 이중섭 포스터
'서울오페라 페스티벌'은 오는 12일까지 강동아트센터에서 열리며 다양한 오페라 작품과 함께 10월의 서울을 오페라의 감동으로 물들인다.

창작 오페라 '이중섭'은 이동호 지휘자가 이끄는 제주도립 서귀포관악단과 최상윤 지휘자가 이끄는 제주도립서귀포 합창단 등 국내 정상급 성악가들의 무대로 11일과 12일 양일간 강동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그의 그림 전시와 함께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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