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자백 번복할 수도"…경찰의 남은 과제는?

영화 '암수살인'의 한 장면처럼 범행 장소 그림 그리기도
"이춘재 생각과 다른 상황 전개되면 자백 번복 위험도"
경찰, 이춘재 자백 신빙성 확인 위해 당시 수사기록 검토
이춘재 자백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와 피해자 진술 확보해야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인 이춘재(56)가 살인 14건과 성범죄 30여건을 자백한 가운데 향후 경찰 수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는 경찰이 대면조사를 시작한 지난달 18일부터 한동안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들을 보내 정서적 친밀감과 신뢰를 뜻하는 '라포' 형성에 공을 들였다. 지난주 중 신뢰 관계가 구축됐다고 판단되자 이춘재에게 5차, 7차, 9차 사건의 DNA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이춘재는 "DNA 증거가 나왔다니 할 수 없네요"라며 "언젠가 이런 날이 와 내가 한 일이 드러날 줄 알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후 지난 1일 이뤄진 9차 대면조사까지 자신의 범행을 자발적으로 술술 불기 시작했다. 경찰은 이춘재에게 확보한 증거나 당시 수사기록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이춘재는 그럼에도 화성연쇄살인 9건 모두와 추가로 5건의 살인까지 저질렀다고 자백한 것이다. 살인사건 외에도 30여건의 성폭행과 성폭행 미수 범행도 저질렀다고 경찰에 털어놨다.

특히, 이춘재는 영화 '암수살인'의 한 장면처럼 일부 범행에 대해 장소를 직접 그림으로 그려가며 설명하기도 했다.

영화 '암수살인'에서는 연쇄살인범이 자백했다가 다시 번복하고 거짓과 진실을 교묘히 뒤섞어가며 형사와 고도의 심리전을 펼친다.

범죄심리 분석가도 이춘재의 진술 번복을 우려하며 증거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춘재가 추가 범행을 얘기했는데 사실 관계가 좀 더 필요해 보인다"며 "나중에 이춘재가 생각했던 것과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면 번복할 수도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신이 다 했노라고 하는 그 지점까지 갔는데 이런 연쇄살인범들은 게임처럼 자백을 했다가 번복했다 한다"며 "물적으로 입증이 되면 이춘재의 범행이 맞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확인하는 과정이 남았다"고 덧붙였다.

경찰도 이춘재 자백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 당시 수사기록과 관련 증거 검토, 사건 관계자들을 상대로 면밀하게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자백의 내용이 초기 단계이고, 구체적 사건의 기억이 단편적이거나 사건에 따라 범행 일시와 장소, 행위태양(행위의 여러가지 형태나 범주) 등의 편차도 있기 때문이다.

또 이춘재가 자백한 모든 사건의 공소시효는 만료됐지만, 경찰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헌법상 천명된 '자백의 보강법칙'은 충족시켜야 해서다. 이는 '피고인의 자백이 그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의 증거인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 한다'는 원칙이다.

경찰은 우리나라 역대 최악의 미제 사건인 화성연쇄살인사건 중 4건을 DNA 분석 결과를 통해 밝혀내고, 이춘재의 자백을 이끌어 낸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이춘재가 언제든 자백을 번복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할 나머지 살인 10건과 성범죄 30여건의 객관적인 증거와 피해자의 진술 등을 통해 밝혀내야 할 과제가 남은 상황이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