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서는 5개 공기업의 정규직 전환자 총 3048명 가운데 333명(10.9%)이 재직자와 친인척 관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는 공기업 일자리가 대물림된다는 비난여론이 봇물 처럼 터져나왔다.
공기업을 비롯해 바늘 구멍뚫기나 다름없는 일자리 구직자들의 허탈감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감사결과를 전하는 기사에는 알음알음 일자리를 대물림하는데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할 정도로 수많은 댓글들이 달렸다.
피감기관의 한 곳이었던 서울시에서는 당사자인 서울교통공사는 물론이려니와 공사를 지휘하는 서울시 일부 간부에다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나서서 감사원 감사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는 의외의 반응을 보여 서울시의 반응에 무슨 맥락이 있는 건 아닌 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보통은 감사원 감사결과가 발표되면 자진납세 차원에서라도 납작 엎드리기 마련인데 서울시에서는 '무기계약직의 일반직 전환정책 지적에 동의할 수 없음' '수용할 수 없는 감사결과에 대해서는 재심의를 청구할 계획' 등 입장을 내놓으며 감사원에 정면대응하는 초유의 대응양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이 감사결과에 대해 tbs에 출연해 행한 발언을 접하면 서울시가 왜 저러는 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증폭된다.
박 시장은 방송에서 "지금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적어도 이른바 고용 세습이나 친인척 비리는 없다라는 게 오히려 확인이 됐습니다. 친인척의 숫자는 80명인가요? 더 늘어났지만, 거기에 따른 비리가 특별히 지적당하거나 그런 건 없었습니다"라고 대응했다.
여론과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직장의 대물림이라는 측면을 가장 큰 문제사안으로 바라봤지만, 서울시에서는 '그럼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난게 뭐가 있느냐'라는 대응이 주를 이뤘다.
박 시장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난게 뭐가 있나라고 반문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서울시 입장에서도 직장이 대물림되는데 대한 국민적 정서를 이미 간파하고 있기 때문에 숫자가 늘어났다는데, 사실 대놓고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나서기는 부담이 너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원에 대립각을 세우고 나선 건 그들이 어떤 부정을 써서 입직했는가 라는 각론부분이 명확치 않은데 무더기로 죄악시하기는 어렵다는 내부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계약직과 무기계약직, 정규직으로 이어지는 지위변경 과정에서 계약직과 무기계약직 채용과정에 누가 봐도 부인할 수 없는 비리증거가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서울시 A 고위관계자는 "교통공사에서 직원 일부가 오래 전에 외주회사에 어떤 경로로 비정규직에 들어갔는지 어떻게 일일이 확인할 수 있느냐"며 "두 건의 일탈을 가지고 고용세습이 사실로 드러났다는 단정적인 표현을 쓴 부분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직장의 대물림'이란 비판을 일반화하기에 충분한 감사결과라면 수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내부 기류를 반영하듯 시에서는 ▲감사 결과에 대한 재심의 청구를 서두르고 ▲언론중재위를 통해 몇몇보도에 대해서는 반론을 펴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사실 서울시에서는 구의역과 화력발전소에서 희생된 두 김군 사태 이후 재발방지에 팔을 걷고 나서면서 문재인정부 보다 진일보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시책을 선도적으로 실천해왔기 때문에 감사원 감사결과로 마치 인사비리 온상 처럼 비쳐지는 걸 못견뎌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가 추진해온 정규직화 정책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가치 실현에 기반을 두고 있어 정부안에 비해 더욱 '비정규직 친화적인 정책'으로 평가받는게 사실이다.
이 기저에는 시대적 사건으로 기억되는 두 김군 사건을 거치면서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 다시는 일터에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는 김군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배려가 깔려 있다.
박원순 시장 주변에서는 시가 차별철폐와 완화를 위해 대한민국 어느 기관보다 깊은 고민을 하고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친인척 이슈'로 마치 큰 비리를 저지른 것 처럼 비쳐지는 걸 방관해서는 안된다는 강경론이 주류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어느 기관에서도 보기 힘든 감사원 감사결과에 대한 '정면대응'이란 강수를 둔데는 대권도전을 검토중인 박시장의 친서민, 시민운동가, 민주화 투쟁 이미지가 훼손된다는 우려와 '사안에 대한 시의 의견은 명확히 전달하자'는 측근들의 정무적 판단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