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메기, 상상 못 한 유머로 허를 찌르다

[노컷 리뷰]

26일 개봉한 영화 '메기' (사진=2X9HD 제공)
'메기'는 마리아 사랑병원에 사는 물고기다. 매장용으로 만들어진 큰 수족관에서 살아야 할 것 같지만 아담한 어항 속에서 그 자리를 지킨다. 우리가 익숙한 어항 속 물고기는 금붕어 정도인데, 뜬금없이 메기라니. 게다가 메기는 화자다. 주인공들을 두루 보며 관객들에게 말을 건넨다.

'메기'(감독 이옥섭)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어느 날 마리아 사랑병원 엑스레이실에서 연인인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눈다. 그런데 밖에서 누군가 눌러버린 버튼 때문에 성관계하던 순간이 엑스레이 사진으로 남는다. 예상치 못하게 찍힌 이 '망측한' 사진은 금세 병원의 화젯거리가 된다.

우연히 병원에서 발견된 사적이고 내밀한 행위의 흔적. 짓궂은 건지 악의까지 담긴 건지 엑스레이실 문에 붙은 푯말 앞에는 성관계를 의미하는 'SE'가 덧붙여진다. 병원 사람들은 사진 주인공이 누구인지에만 관심을 보인다. 마리아 사랑병원의 간호사 윤영(이주영 분)마저도.

하지만 메기는 다르다. 메기는 우연히 사진으로 공개된 누군가의 '속'을 보고 그저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누가 찍었는지가 아니라 찍힌 게 누구인가'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짚는다. 우주선을 타지 않고도 우주에 갈 방법은, 하나의 우주라고 볼 수 있는 인간의 몸을 엑스레이로 찍는 것이라는 발랄한 상상으로 운을 떼더니, 엑스레이 사진을 통해 촬영 당한 쪽을 더 탓하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허를 찌르는 노련한 솜씨다.

'메기'는 재미있는 영화다. 발기된 남성의 생식기가 적나라하게 찍힌 사진 한 장을 가지고 다채롭게도 웃긴다. 사진의 주인공이 자신인 것 같다고 의심하는 윤영은 문제의 사진을 집으로 가져오고, 남자친구 성원(구교환 분)은 아주 꼼꼼하게 사진을 뜯어 보더니 "내 거 맞는 것 같다"라고 태연히 말한다. 화자인 메기가 '그건 너희 것이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애석하게도 두 사람은 들을 수 없다. 이것마저 웃기다.

"그러니까 병원에서 하지 말자고 했잖아"라는 중얼거림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획 한 획 공들여 한자를 쓰는 성원이 나온다. "사직서는 쓰지 말라고 획이 많은가 봐." 성원이 내뱉는 단어와 단어 사이 짧은 틈엔 아무 웃음기가 묻어있지 않았지만, 관객들은 폭소가 나올 수밖에 없다.


뼈다귀 모형으로 점심시간임을 알리고, 도움닫기를 딛고 높이 점프해야만 하는 출근 카드시스템으로 직원들의 에너지를 강제로 쓰게 하고, 메기가 갑자기 튀어 오르는 걸 보고 지진이 일어난다고 호기롭게 예언했다가 지진이 안 일어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고. 발칙한 상상력으로 일상을 비틀어 유쾌함을 담아낸 장면들이 계속된다.

그러면서도 그냥 깔깔 웃어넘길 수 없는 순간을 제공한다. 봉고차만 한 싱크홀이 생기는 재난 앞에서야 임시직으로나마 청년 일자리가 생기는 상황, 이렇게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생길 줄 알았으면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안 했을 거라는 웃픈 대사는 상징적이다.

또한 '메기'는 믿음에 관한 영화다. 등장인물들은 때로 터무니없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믿고, 우연이라고 하기엔 미심쩍은 정황 앞에 불신하다가 사실이었던 사례 하나를 겪고 '믿기로' 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한 조각의 이야기를 듣고 의심이 피어나기도 하고, '당연히 이럴 거야' 하는 식으로 흘러가다가 뒤통수를 때린다.

'이러이러하다'고 단정하지도 않고 '이러이러해야 해'라고 당위를 강조하거나 교훈을 주는 데 별 관심 없어 보이는 적당한 무심함과, 상상해 본 적 없는 웃음이 어우러졌다.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지금 청년의 삶을 경쾌하게 담아낸 '메기'는 이옥섭 감독의 첫 장편영화. 경험해 본 적 없는 이 '미스터리 펑키 코미디'는 마침내 이옥섭 월드의 문이 열렸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듯하다.

26일 개봉, 상영시간 88분 43초, 15세 이상 관람가, 한국, 미스터리·코미디.

'메기'는 병원을 발칵 뒤집은 29금 엑스레이 사진, 도심 한복판에 등장한 싱크홀과 위험을 감지하는 특별한 메기까지 믿음에 관한 가장 엉뚱하고 발칙한 상상을 담은 미스터리 펑키 코미디다. (사진=2X9HD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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