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를 '발견'한 것은 자영의 일상을 조금 바꿔놓는다. 뛰기 편한 신발을 찾아, 달리러 밖으로 나서는 자영. 그러나 시험공부에만 매달렸던 자영이 하루아침에 능숙하게 달릴 순 없는 법. 현주를 좇아 숨차게 달린 자영은 그동안의 지침과 피로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듯 무너지고, 이를 계기로 현주와 친구가 된다.
한가람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아워 바디'는 몸에 관한 이야기다. 몸에 새겨진 근육과 솟아난 솜털을 감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과감하게 촬영했다. 숱한 영화에서 여성의 몸이 섹스어필의 수단처럼 '찍혀온' 것과는 다르게, 정직하게 몸에 집중한다. 꾸준한 달리기와 운동으로 잡힌 자영의 복근, 자영보다 먼저 시작해 운동이 생활화가 된 현주의 등 근육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낯설지만 신선하다.
뛰면서 심장 박동을 느끼고 새삼 살아있음을 깨닫는 상쾌하고 기운찬 경험을 '한번 해 볼까?' 하고 바람을 넣는 건 분명히 이 영화의 강력한 매력이다. 그렇다고 달리기를 비롯한 운동이나 몸에 관한 이야기로만 한정 짓기에 '아워 바디'는 그 이상을 담고 있다.
미인이거나, 선망의 대상이거나, 악녀이거나, 헌신적인 엄마이거나, 피해자이거나,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거나, 그저 순수하고 순진하기만 하거나, 천재이거나. 하나의 특징이 너무나 두드러져 오히려 단조롭게 느껴지는 많은 캐릭터와 다르다. 공감할 수 있다가도 이해 못 할 이상한 고집 또한 갖고 있고,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약간씩 달라지는 모습을 두루 가졌다. 사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한 명 한 명이 입체적이듯.
도구나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기에, 극중 인물이 하는 대사는 그냥 '말' 같다. 언젠가 내가 했던, 혹은 내가 직접 듣거나 전해 들었던. 일상적인 언어로 공감대를 자아내는 대사가 귀에 박힌다.
등장인물들이 불안을 걷어내고 평탄해지길 바라는 관객들의 기대를 배반하듯, 자영과 지혜는 예상 밖의 선택을 한다. '왜 저럴까?' 싶을 때도 있다. 달리기 시작한 후 긍정적인 변화를 맞은 자영의 모습이 나타나지만, 운동에 능숙해졌다고 모든 것이 탁탁 잘 풀리는 판타지로 흐르지 않는다. 타인에게 드러내지 못한 그늘이 있을 수도, 가장 가깝고 보듬어줘야 할 관계로 권장되는 가족끼리 끝내 평행선을 달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저 보여줄 뿐이다. 엔딩 역시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안지혜도 매일같이 달리는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건강함과 자신감이 매력인 현주를 잘 표현했다. 극중 자영이 우연히 발견한 어두운 얼굴과, 집에 있을 때 나타나는 나른하면서 신비로운 분위기 덕분에 전사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진다.
딸을 염려하면서도 조금은 답답하고 한심하게 여기는 엄마 역 김정영, 엄마와 언니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이 되어주는 화영 역 이재인, 자영에게 서 있는 자리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게 하는 친구 민지 역 노수산나, 자영을 향해 미묘하면서도 복합적인 감정을 가진 동료 인턴 희정 역 금새록까지. 다양한 얼굴의 여성 캐릭터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달리기 권장 영화'의 외피로 저마다 고민과 우울과 불안과 결핍을 가진 청춘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작품. 도심 밤거리의 아름다움은 덤이다.
26일 개봉, 상영시간 95분 2초, 15세 이상 관람가, 한국,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