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법관 선발에 '국민참여'?…요식행위 수준

국민 의견제출 창구·반영 여부 등 불분명

"변호사로 활동 중인 A씨는 최근 뉴스를 검색하다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자신이 수임한 사건의 상대 측 법조인이었던 B씨가 신임 법관 임용 대상자로 선발된 것이다. A씨는 해당 재판에서 경험한 B씨의 업무행태와 관련해 법관으로서의 자질 등 의견을 대법원에 제출하려 했다. 그러나 접수 방식이나 반영 여부, 차후 불이익 위험 등을 단시간 내 파악하기 쉽지 않아 곤란을 겪었다."

대법원 (자료사진=노컷뉴스)
법조 경력자를 신임 법관으로 선발하는 과정에서 국민 의견을 참고하겠다며 마련한 절차가 사실상 요식행위에 그친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러 분야에서 인정된 법조인을 법관으로 뽑겠다는 제도의 취지를 고려한다면 정보공개와 반영 수준이 높아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11일 공개한 예비 신임 법관(대법관회의 임명동의 대상자) 80명에 대한 국민 의견 수렴 기간을 전날(25)일 마감했다. 이들에 대해 임명을 확정하는 대법관회의는 이달 말 열릴 예정이다.

대법원은 2015년부터 신임 경력 법관 선발 단계 중 최종 임명 직전에 예정자 명단을 공개하고 약 2주간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마련했다. 법관 임용 절차의 투명성을 높여 신규임용 법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겠다는 목적에서다. 의견 수렴 기간이 끝나면 대법관회의에서 최종적으로 임명 동의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대법원 법관 임용 사이트와 보도자료 등에는 의견 제출 창구나 방법에 대한 안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이 "구체적 사실이나 자료에 근거하지 않은 투서나 진정 형태의 의견을 제출하거나 의도적으로 이를 공개해 법관 임용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려 하면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한 점도 자유로운 참여를 막고 의견 제출을 소극적으로 만든다는 지적이다.


이번 법관 임용에 의견을 제출한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제출 방식이 애매하고 사실상 선발이 끝난 단계에서 의견을 제출하게 된다"며 "(결과에 반영은 되지 않고) 추후 제보자에게만 불이익이 있진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임 법관 임용 절차는 매년 초부터 약 9~10개월에 걸쳐 진행된다. 임용 예정자 명단이 공개되는 것은 서류평가와 인성검사, 중간심사, 3번에 걸친 면접과 대법관회의 1차 심의까지 마무리 된 후다.

사실상 선발을 끝내놓고 '국민 의견 수렴'을 하게 되고 2주 후 대법관회의에서 최종 임명을 하는 구조여서 해당 절차가 '생색내기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임용 예정자라고 공지된 인원은 △18명(2015년) △8명(2016년) △27명(2017) △36명(2018년)이었는데 이 중 국민 의견 제출을 거쳐 탈락된 사례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기본적으로 앞선 검증 과정이 치밀하기 때문에 명단공개 후 탈락될 만한 문제 소지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서도 "제도 취지를 고려한다면 국민 의견 제출 시기를 앞당겨 면접 때 반영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조치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름과 연수원·변호사시험 기수, 현 직업 정도만 공개되는 임명 예정자 명단과 관련해서도 주요 경력 정보를 더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신임 법관들의 주요 경력이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 포진해 있고 해당 분야에서 어떤 평판이 있는지 사전에 검토될 수 있어서다.

대법원 관계자는 "아직 경력법관 선발과 국민 의견 제출 제도 모두 정착 중인만큼 취지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여러 건의사항들을 검토하고 반영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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