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구비가 뚜렷한 외모에, '독전', '악질경찰' 등 최근 개봉한 작품에서 강렬한 배역을 많이 해서 그런지 박해준을 악역을 주로 하는 배우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힘을 내요, 미스터 리'뿐 아니라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감독 정지우)에서도 주변에 있을 법한 일상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무엇보다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박해준이 거의 처음 경험하는 코미디 장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힘을 내요, 미스터 리' 개봉 하루 전인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박해준을 만났다. 박해준은 "사람 마음을 흐뭇하게 만드는 것도 코미디의 일종인 것 같다"라며 "보기에 편안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영화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저도 제 영화를 보게 되면 '이 영화가 왜 필요할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뭐 이렇게 보는데 저는 이 영화의 되게 예쁘고 아름다운 마음씨가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관에 와 있는 한 두 시간 동안은 정말 이렇게 좋은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영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족도는 굉장히 좋다. 이계벽 감독님이 가진 좋은 마음씨가 고스란히 표현이 되어 있어서 아주 잘 봤다. 제 영화라서 잘 봤기도 했겠지만. (웃음)
▶ 영수는 철수(차승원 분)의 동생으로 그동안 맡았던 것과는 달리 조금 더 편안하고 헐렁한 캐릭터다. 캐릭터 때문에 선택한 것인가.
캐릭터 면에서도 다른 걸 보여드릴 수도 있고, 되게 좀… 보기에 편안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했다. 불편한 부분이 없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했다. 나름 영화를 선택할 때는 어떤 분들이랑 같이 하는지를 본다. 좋은 만남이 있는 것도 (작품 선택에) 많이 영향을 끼친다. 사실 웬만하면 다 좋다, 영화 하시는 분들이. (웃음) 승원 선배님, 감독님… 특히 즐겁게 촬영할 수 있는 분위기가 돼서 좋았던 것 같다.
캐릭터를 살리기 위한 노력한 지점보다는 대본상으로 그 상황들이 되게 많다. 예를 들어 돈을 안 갖고 나오고, (차에) 딸이 타 있고, 형은 또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르고… 그런 것들이 툭툭 나와서 그 상황에 되게 집중하려고 했던 것 같다. 제가 뭐, 캐릭터는 음, 그냥 어떤 캐릭터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영수는) 철이 없을 수도 있다. 영수랑 철수랑 어쨌든 형제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피는 못 속이는 그런 느낌도 있다. 의상을 많이 얘기하시는데 약간 와이프한테 쥐여살면서도 자기표현을 하려는… (웃음) 자기 욕망을 가지는 거다. 명품 티, 짝퉁이라도 한두 개 정도는 가져보고 싶은 기혼 남자 그런 느낌. (웃음)
▶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반전이 있다. 앞부분에는 잊고 지낸 딸 샛별(엄채영 분)을 우연히 다시 만난 철수의 이야기가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뒷부분에는 감동 코드가 짙다. 그래서 이 영화를 코미디라고만 할 수 있냐는 반응도 있는데.
근데 그게, 엄청나게 웃긴 건 아니지만 사람 마음을 흐뭇하게 만드는 것도 코미디의 일종인 것 같다. 그 상황에서 박장대소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단 드라마적으로 '허허허허' 웃는 것도 되게 좋은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저도 사실 많이 슬펐다. (웃음) 너무 슬퍼서 깜짝 놀랐다. '이거 뭐 하자는 거야? 왜 이렇게 슬픈 거야?' 했다. 슬픈 와중에 웃게 만드는 정말 희한한 영화가 나왔다. 미워할 수 있는 캐릭터가 없는데, (관객들이) 미움을 가지지 않게 만드는 영화를 만드는 게 쉬운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보는 내내, 그렇게 흐뭇하게 볼 수 있는 영화, 아름다운 생각, 좋은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영화,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좋은 생각은 충분히 많이 할 수 있는 영화.
▶ 아름답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흐뭇한 장면을 하나만 꼽는다면.
어떤 오해가 있었고 그 오해가 풀리는 과정이 있다. 난 이상하게 그 장면이 좋더라. 깡패들이 길 열어주는 게 그렇게 후련하더라. 다른 훈훈한 장면들도 너무너무 많은데, 그냥 이렇게 조마조마하고 있다가 뭐가 확 열렸을 때, 이상하게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나더라. 왜 그런진 모르겠는데, 인간이 가진 착한 본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라서 그런 것 같다. 감독님하고 되게 많이 닮았다, 그런 마음이. 되게 말도 안 되는 일처럼 보이지만 그런 일이 좀 벌어졌으면 하는 기대가 있지 않나. 우리 사회에 되게 훈훈한 일들이 일어나서 그런 기사를 읽었을 때 사실 기분이 좋지 않나. 그 기분 좋음을 좀 잊고 살지 않았나. 그러니까 그런 기분 좋은 일이 (영화 안에서) 계속 보인다고 하면, 되게 좋아지지 않을까. 좋은 영향이 있지 않을까. 그런 부분이 훈훈하고, (소아병동) 애들끼리 부둥켜안는 것만 해도 너무너무 이쁘고, 좋았다.
▶ 철수 역 차승원도 이계벽 감독이 무척 좋은 사람이라고 여러 번 말하더라. 현장에서 어땠는지 궁금하다.
그건 타고난 것 같다. (착한 마음?) 음… 실제 모습일 거다. 일할 때 보면 너무 착하고 사람 얘기를 잘 들어주신다. 영화에도 표현되지만, 되게 이쁜 마음들이 거기에 속속 들어 있다. 영화가 이쁘고 아름다웠다면 감독님의 시선에는 사람과 이 세상이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닐까.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이 감독이)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이런 말. 슬프면 슬픈 대로 울기도 하고, 이런 걸 보면 '와, 어디서 저런 사람이 나왔을까?' 할 정도로 좋으시다. 저보다 형이지만 권위적인 게 1도 없으시다. 어떤 부분에서는 기분이 좋지 않다는 티도 내는데, 그게 다 보이니까 그게 다 착한 것 아닐까. 사람 좋은 거로만 보면 이계벽 감독님처럼 사람 좋은 분이 없다. (웃음)
두 번째 만나게 되면… 직접적으로 '야~ 좋다!' 이런 표현은 안 하시지만 은근히 마음을 써주는 부분이 있다. 직접 들은 말은 아니지만 제가 캐스팅되고 나서 되게 좋아하고 만족하셨다고 들었다. 그만큼 더 좋은 게 어딨나. 저도 이제 마음이 가는 거다. (웃음) '독전' 때 잘 보셨나 보다. 잘 봐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 그리고 적당~한 지적도 해 주시고. 연기에 대한 게 아니라 (웃음) 사는 것에 대해서. 내가 조금 모자라는 부분을 정확하게 얘기해주신다. 그게 관심이니까, 따뜻하다. (웃음)
▶ 이번엔 형제 역할이어서 오랫동안 알고 같이 산 친밀한 사이를 연기해야 했는데.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찍으면서 좀 더 친해졌나.
아무래도 제가 친해졌다고 말하기는… (웃음) 형이 '난 아닌데~' 하면 별수 없지만 (웃음) 저는 친해졌다고 생각한다. 되게 좋다. 어쨌든 이 영화가 주는 형제애라고 해야 하나, 그건 서로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작품이지 않나. 감독님하고도 얘기했지만 형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야 하겠다는 마음을 많이 가졌다. 그런 마음을 더 담았던 것 같다, 형을 믿는 마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