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하승균의 '그놈' 이춘재…"'히키코모리'로 수사선상에 없었을 것"

하승균, 인터뷰 내내 범인 '그놈' 으로 표현
"당시 주민증 사진확인 작업에서 지나쳤던지, 주민증 없었을수도"
"그놈은 악마·죽은 14살 여중생 몸에 38번 바둑판 무늬로 칼자욱 낸 살인마"
"몽타주와 맞는지 만나볼 것·자백은 안할 것·6차도 이춘재의 짓일 것"
하 前 서장이 직접 수거한 증거물들, 용의자 특정에 기여·과학수사의 효시

죽인 '놈' 보다 죽은 사람들만 남아있던 최악의 미제사건.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33년만에 특정됐다.

10차례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기간,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는 경기도 화성에 거주했다. 6차 사건은 이씨의 거주지 인근에서 발생했다.

이씨는 1963년생이다. 화성 출생으로 1993년 충북 이사 전까지 고등학교 재학 시점을 제외하고는 화성에서 계속 살았다.

10차례의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이씨가 23살이던 1986년 9월 15일 시작돼 28살이던 1991년 4월3일까지 5년간 지속됐다.

이같은 정황을 감안, 당시 경찰이 왜 수사선상에 이씨를 포함하지 않았던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수감 중인 이춘재(56)를 특정했다. 사진은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사진=연합뉴스 제공)
◇ "동네에서 얌전한 청년으로 행세하다 밤에만 나와 끔찍한 살인 했다고 본다"

지난 20일 CBS 취재팀과 만난 하승균(73‧前 전북 임실경찰서장) 당시 이 사건의 수사팀장(3~10차까지 수사참여)은 이씨가 범인으로 부각되지 않았던 이유를 지금 이씨의 행동패턴과 연관해 설명했다.

그는 가장 주목받는 7차 사건을 사례로 이씨를 특정하지 못한 이유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1987년 9월 7일 발생한 7차 사건은 유일하게 목격자가 있었다. 또 이씨의 체액에서 DNA가 검출된 사건 중 하나다.

'7차 사건 당시 수 많은 주민등록사진을 목격자와 함께 확인 했음에도 (주민증 사진에서) 범인을 특정하지 못한 이유'를 묻자, 하 전 서장은 "그러기를 바랬는데... 결론적으로 화성 진안리에 살았던 이춘재가 당시에는 범인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나도 이춘재란 이름을 들어본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놈(이춘재)이 1994년 교도소에 들어간 모범수 아니냐. 사건 당시에도 그 동네(진안리)에서 얘가 모범청년으로 알려졌을 것이다. 의외로 동네 사람들에게 그럴 리가 없는 얌전한 사람으로 인식됐을 수 있다. 일본어로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 引きこもり, ひきこもり)', 즉 혼자 방안에 있는 외톨이를 말한다. 이놈은 동네에서는 얌전한 청년으로 행세하고 방안에 있다가 밤에만 나와 여자들에게 끔찍한 살인을 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수사본부 운영상황 역시 이씨를 용의자로 부각시키는데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당시 수사본부 운영상황을 잠깐 얘기할 필요가 있다. 화성 진안리, 그 동네는 일정한 형사들이 지역담담이 있었다. 그 지역담담에 의해서 그 동네의 거주민, 거주했던 사람, 또 그 동네에서 소문나고 있는 수상한 얘기거리 이런 것들을 수사 했기 때문에 이놈이 집안에서 나오지 않고 얌전한 청년으로 행세 했다면 용의자로 부각되지 않을 수 있다. 난 그렇게 본다."

확인한 수 많은 주민등록사진에는 이춘재가 없었다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있었다 하더라도 무시하고 지나갈 수가 있다"고 언급했다.

하 전 서장은 8년전(2011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7차 사건에 대해 상세히 밝힌바 있다.

8년전 그는 '7차 사건은 목격자가 있어 범인 검거를 확신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화성 발안에서 범인을 태운 목격자인 버스운전사인 강씨와 안내양과 함께 한달 간 수사를 했다. 딱 한명 살아있는 목격자와 강씨의 목격담이 동일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원 거주 남자 중 25~30세 15만여 명의 주민증록 사진을 금성 비디오카메라에 촬영해 모두 확인했다. 여관 잡아놓고 확인 했는데 운전사(강씨)가 조느라 지나친 것도 있었을 테고, 범인이 주민증이 없을 수도 있었을테고, 그런 것들이 범인이 빠져 나간 허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특정된 것과 관련해 하승균 당시 수사팀장(전 임실경찰서장)이 CBS취재팀에 관련 견해를 밝히고 있다.(사진=김봉근기자)
◇ "범인 확정 됐는데 공소시효가 넘어 처벌을 못하는 것에 화나 잠 못자”

화성연쇄살인사건은 2003년 개봉된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10차 사건 후 12년만에 세상에 등장 했다.

영화가 히트하자, 배우 송강호가 주인공역을 맡은 박두만 형사의 실제 모델인 하 전 서장은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됐다.

그는 경찰 복무 중 292건의 살인을 다뤘다. 시체만 292구 만져본 셈이다. 화성 사건만 유일하게 검거에 실패했다. 87%의 살인사건을 해결했다. 야구로 치면 8할 타자 이지만 아웃된 2할 때문에 유명세를 타게된 셈이다.

하 전 서장은 훗날 "영화가 마음에 안든다"고 했다. 이유는 "형사들이 해결 못해 조소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고 '추억'이 아니기 때문" 이라고 했다.

지난 18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특정된 것이 알려진 후 그는 다시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하 전 서장은 사실상 당시의 생생한 수사상황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경찰이다.

그는 이날 만남에서 용의자가 특정된데 대한 감회 보다 당시 사건에 대한 여러 의문점을 설명하고 반박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10차례 사건의 발생날짜, 피해자 이름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8년전 인터뷰에서 범인에 대해 "나약한 자신의 존재를 살인을 통해 벗어나고 죽은 사람 앞에서 과시하는 변태" 라며 "자살할 놈은 아니고, 술을 많이 마셔 죽었다. 살아 있다면 절대 범행을 멈추지 않았을 놈" 이라고 전했던 하 전 서장.

이번에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56)가 범인으로 최종 확정되면, 그의 8년전 예언은 절반이 적중한 셈이된다. 예상과 달리 범인이 살아 있긴 하지만 또 다른 살인건으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기 때문이다.

하 전 서장은 "범인 특정된 것을 안 후부터 밤잠을 설치고 있다"며, 그 이유는 "너무 좋아 흥분되서" 라고 했다. 또 "함께 수사하다 반신불수가 된 부하직원과 그만둔 후배가 생각나서" 라고도 했다.

잠을 못자는 이유가 한가지 더 있다며 "화가 나는 것은 범인이 지금 확정 됐는데 공소시효가 넘어서 처벌을 못하는 것" 이라 전했다.


화성 연쇄살인 용의자 행적과 DNA 비교 분석.(그래픽=연합뉴스 제공)
◇ "명백한 수사로 '놈'과의 질긴 인연 마치고 싶다"

수 십년간 하 전 서장의 뇌리속에 머물렀던 범인은 '악마'였다.

그는 "현장에서 잡혔으면 내손에 죽었을 것" 이란 과거 발언을 복기 하면서 "그놈에 대한 '악마'란 내 평가가 정확했다고 본다. 38번을 격자무늬, 바둑판 무늬로 그것도 죽은 사람에게 상처를 냈다. 당시 사후반응을 보고 이를 알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증거물에서 이춘재의 DNA가 확인된 7차 사건의 피해자가 14살 중학생이다. 그 아이를 성폭행 하고 뒤로 손과 발을 함께 묶어 놓고 다시 가슴을 풀어 헤치고 필통에 있는 면도날을 이용해 격자무늬로 38번을 그었다. 이건 악마, 살인마지 사람의 행동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

이어 "살인사건을 수많이 해 봤지만 대개의 사람을 죽이면 바로 매장을 해서 은폐하거나 빨리 도망간다. 이놈은 성폭행과 죽인 이후에 숨이 끊어진 어린아이의 몸에 상처를 냈다. 정말 상식을 초월하는 악마" 라고 격분했다.

하 전 서장은 "악마로 표현했던 범인을 직접 만나 봐야겠다"고도 했다.

"DNA 자체만 가지고도 범인임에 틀림 없다. 7차 사건을 통해서 목격자 진술과 종합적인 것으로 몽타주를 내가 만들었다. 때문에 정확하게 몽타주를 그려냈다는 자부심도 있다. 몽타주와 비슷한지 확신을 위해서라도 만나봐야겠다."

그는 이춘재가 자백을 하지 않을 것이며, 받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면서 그 이유로 "20년을 치밀하게 오로지 한 목적, 모범수로 가석방만 염두에 두고 교도관들에게 잘보이기 위해 살아 온 놈이기에 자백을 안할 것" 이라고 밝혔다.

하 전 서장은 이춘재의 DNA가 확인된 것이 5‧7‧9차 사건이지만, 6차 사건도 이씨의 범행으로 봤다.

"이춘재는 화성 진안리 살았다. 진안리에서 발생한 6차 사건에서 박모 가정주부가 죽었다. 전체 사건 중 비가 온 것은 그 사건 하나다. 비가 장대같이 오는데 범인은 저녁 11시쯤에 남편을 기다리기 위해서 우산을 가지고 나온 박씨를 죽였을 것이다."

33년만에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특정하게 되자, 좋아서 잠을 못 이뤘다는 하 전 서장.

그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좋았던 것은 수사에 쏟아부은 열정이 통했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과거 수사 과정에 대한 여러 논란을 떠나, 하 전 서장이 직접 수집해 국과수에 보낸 5차와 7차의 증거물들이 지금의 과학수사와 연결돼 결정적 역할을 하게된 것은 분명하다.

또 8‧9차 사건당시 직접 범인의 음모를 수거해 일본에 분석을 의뢰한 것이 지금의 DNA 과학 수사의 효시가 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범인을 못잡은 형사' 라는 굴레에 갖혀 수 십년을 살아온 하 전 서장의 이같은 기여만 감안해도 굴레를 벗어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경찰 등의 여론이다.

그러나 하 전 서장은 "후배 수사진들이 잘했다. 자랑스럽다. DNA는 과학이다. 만국의 공통된 증거능력이다. 잊지 않고 미제 사건수사팀을 두고 운영하고 있는 후배들과 국과수 요원들에게도 고맙다"고 밝히는 등 모든 공을 후배들에게 돌렸다.

그는 특히 "만약 이춘재가 모범수로 가석방된 후에야 DNA가 확인됐다면 본인이 범인이 맞다고 시인해도 처벌할 방법이 없어 집으로 돌려 보내야 한다"며 "이는 피의자 인권만 보호하고 피해자 인권은 보호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전하는 등 현 공소시효가 지닌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하 전 서장은 인터뷰 내내 특정된 용의자를 '놈' 으로 표현했다. 그는 "후배들이 남은 수사를 잘해 '놈'과의 질긴 인연을 마치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퇴직 후 한순간도 화성연쇄살인사건에서 자유로워진 적이 없다는 그.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이 증명됐다"는 하 전 서장은 '유튜버'로의 또 다른 변신을 준비 중이다.

국민들에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강력 사건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싶다는게 '고희'를 넘긴 그의 소박한 바람이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