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 공표' 문제지만…왜 하필 지금 수술하나

민주, "피의사실 유포 책임자 처벌" 촉구해도 윤석열 반응 없자 직접 '훈령' 손보기
'적폐청산' 수사할 때만 해도 가만히 있더니…이중잣대 지적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정부여당이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한 훈령 변경을 추진하면서 또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피의사실 공표 문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닌 해묵은 문제이긴 하지만, 조국 법무장관 가족에 대한 수사가 한창 진행중인 때에 전격적으로 추진되고 있어서다.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된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는 크게 문제 되지 않은 점도 '이중 잣대'라는 지적을 낳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법무부는 오는 18일 당정 협의를 열고 피의사실 공표 제한 등에 관한 논의를 한다.

이번 당정은 조국 장관 취임 이후 처음 열리는 민주당과 법무부 간 당정이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까지 참석한다. 그만큼 당정이 힘을 싣는다는 얘기다.

법무부는 2010년 4월부터 시행 중인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을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칙'으로 이름을 바꾸고, 피의사실 공개 범위를 전방위적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으로 기소 전에는 수사 내용 유출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법무부 장관은 수사 내용을 유포한 검사에 대한 감찰 지시를 할 수 있는 규정 등이 신설된다.

앞서 민주당은 조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윤석열 검찰총장에 피의사실을 유포한 책임자를 찾아 징계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한 바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하지만 윤 총장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민주당이 직접 나서서 공보준칙을 손보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피의사실 공표 부분과 관련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논두렁 시계 보도'란 트라우마와 연관이 있다.

2009년 5월 한 언론에서 검찰 당국을 인용해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건네 받은 1억원 상당의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취지로 보도하면서 당시 증거인멸 등 여론이 달아올랐지만, 이후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국정원의 기획"이라고 해명했다.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이 검찰조사에서 '권 여사가 밖에 내다 버렸다'고 말했을 뿐 '논두렁'이란 표현은 없었고, 국정원의 '망신주기 언론플레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달 28일 조 장관 주변에 대한 압수수색이 단행된 사실이 보도되자 "피의사실을 유포해서 인격 살인을 하고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 때는 있지도 않은 '논두렁 시계'를 가지고 얼마나 모욕을 주고 결국은 서거하게 만들지 않았느냐"고 분개하기도 했다.

사실 언론학계에서는 피의사실 공표에 관한 문제는 정교한 논의를 통해 관련 기준과 원칙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있어 왔다.

(사진=자료사진)
문제는 시기다. 정부여당이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제기한 것은 검찰이 조 장관 주변을 수사하면서 언론 보도가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다.

정부여당이 훈령까지 바꿔가면서 검찰을 압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대목이다. 또 피의사실 공표 제한은 '국민의 알권리'와 상충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중앙대 이민규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피의사실 공표와 국민의 알권리가 상충하는 부분은 상당히 애매하면서도 복잡한 문제"라며 "당국자들과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꼭 지금 시점에 해야하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 장관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정치권이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자칫 오해만 불러일으킬 수 있고, 개선은 개선대로 흐지부지 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적폐청산'이란 명목으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 주변을 둘러싼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관련 언론보도가 나갈 때만 해도 아무런 비판을 하지 않았다.

지난 4월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의 딸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해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딸 채용 사건은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철저한 수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제기했던 한국당 측의 주장에 반박하기도 했다.

지난 3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출국을 시도하다 체포됐던 사실이 알려졌을 때도 민주당은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오히려 신속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우리당도 '당파성'을 갖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한 문제는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검토해왔던 문제이고, 조 장관 관련 수사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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