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 개봉한 영화 '우리집'(감독 윤가은)과 8월 29일 개봉한 영화 '벌새'(감독 김보라)의 크로스 GV(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된다는 소식이 이달 초 전해졌다. '우리집'을 보고 나서는 김보라 감독 사회 아래 윤가은 감독의 이야기를 듣는 것, '벌새'를 보고 나서는 윤가은 감독 사회 아래 김보라 감독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골자였다.
지난 6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우리집'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그로부터 닷새 후인 지난 11일에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CGV 압구정에서 '벌새'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CBS노컷뉴스는 두 현장을 모두 찾아, 그날 나온 흥미로운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다.
◇ '우리집' GV
▶ 아이들 싸우는 장면이 그렇게 좋더라. 아이들 싸우는 장면의 대가인 것 같다. (일동 웃음) 애들은 힘들어하는데 저는 '그렇지!' 하면서 보게 되더라.
윤가은 감독 : 그게 아마 특히 애들이 이렇다 할 감정 표현을 잘 안 했고 서로 간의 갈등이 거의 없었다가 그 모든 스트레스, 각각의 집에 대한 스트레스를 싸우면서 풀었다. 그래서 어떤 시원함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배우들이 그 장면을 찍을 때 되게 신나 하더라. 영화 전체 중에 제일 신나서 했다. 주로 참는 걸 하다가 (감정을) 드러내는 걸 해서 그런지 그런 에너지가 전달됐나 싶다. 이번 영화에서는 (아이들을) 안 싸우게 하려고 했는데 또 싸웠다. (웃음)
▶ 하나(김나연 분)의 한숨 소리가 계속 나온다. 이렇게 한숨을 빠르게 계속해서 쉬는 캐릭터를 본 적이 있는지 잘 기억이 안 나더라. 연기 지도를 그렇게 한 건가. 원래 김나연 배우의 습관인가.
윤가은 감독 : 디렉션이 전혀 아니다. 저도 현장에서는 몰랐다. 나연 배우가 저걸 찍을 때 6학년이었는데 사실 그 정도 되면 거의 성인들이랑 비슷하게 대화하는 나이다. 기술적인 디렉션보다는 감정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눴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편집할 때 사실 한숨을 덜어낸 거긴 하다. 편집감독님이 생각보다 한숨이 너무 많다고 말해서. 하나가 어떤 포인트에서 이 영화의 전면으로 드러났으면 좋겠는데, 하나로 시작해서 하나로 닫히는 결말을 위해서 믹싱 때 정확하게 들릴 수 있는 한숨을 주자고 했다. 그래서 후반에서 디자인해 만들어진 게 있다. 나연 배우가 하루는 한숨만 쉬다 간 적도 있다. (웃음) 현장에서 아이들이 생각보다 한숨을 많이 쉬더라. 저도 잊어먹었던 어떤 버릇인 것 같다. 연기할 때도 그렇지만 너무 지치고 덥고 그러면 한숨이 나오더라. 그 한숨이 너무 다양한 거다. 그런 생각도 나중에 한 거고, (한숨을) 계획한 건 아니다. (웃음)
▶ 영화 안에서 절대로 바꿀 수 없었던 대사는 무엇인가.
윤가은 감독 : 되게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영화 전체에서 중요한지는 모르겠는데 너무 하고 싶은 대사가 있었다. 그건 찬이(안지호 분) 대사다. 엄마 아빠가 싸울 때 중간에 나와서 울면서 감정표현을 처음 하지 않나. "이럴 거면 왜 낳았어!" 그 대사가 있는데 그 대사가 너무 하고 싶었다. (웃음) 그래서 찬이한테 줬던 것 같다. 편집할 때 어떤 다른 이유에서라도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윤가은 감독 : 제가 막 뭔가 어떤 의도를 갖고 캐릭터를 만든 적은 없었던 거 같다. 제가 아마 그런 상황에서 자랐기 때문에, 정말 이기적으로 생각할 때 저는 '저를 위로하려고 영화를 만드나?' 이런 생각도 가끔 한다. 특히 아이들 영화를 왜 좋아하지? 내가 왜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하는데 그런 시절을 보냈던 나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되게 위로가 될 때가 있지 않나. 저는 '벌새' 보면서 위로를 받았는데, 누군가 내 얘기를 해 준다는 게 위로를 나눌 수 있는 것 같더라. 혹시 제 영화를 보시고 자기 얘기라고 느끼시는 분이 있다면 그걸 소리 내서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우리 행복하게 잘 살아야 될 거 같다. 저도 사실 장녀다. ('우리집'의) 하나는 장녀는 아닌데 일종의 장녀 콤플렉스를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랐고, 대부분의 많은 여성은, 딸들은 엄마의 삶을 고스란히 흡수하면서 자란다고 생각한다. 엄마들이 이 사회에서 겪는 굉장히 많은 고통과 아픔을 딸이 같이 흡수한달까. 이런 시기를 관통한 다음에, 다음 한 스텝 두 스텝 밟아나갈 수 있는 시기가 오는 것 같다. 제가 일단 할 수 있는 말은 없고, '나만 그런 게 아니다'라는 위로를 나누면 좋겠다.
▶ [관객 질문] 아이들이 모여서 상자로 집 만드는 장면에서 빛이 굉장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의도적으로 찍은 것인지.
윤가은 감독 : 집에 지붕을 올리는 순간이 좀 더 영화적으로 포인트가 됐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 영화 안에서 가장 핵심 장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계속 집이 나오는데 집을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 옥탑 마당으로 아이들을 뺐는데, 해 질 녘에 찍을 시간이 30분밖에 없다. 그날은 오후 시간 내내 연습했다. 특정한 액션이 있는 게 아니라 수다 떨다가 지붕 올리는 거라서 간단한 연습만 3~4번 했다. 우리가 30분밖에 없어서 '진짜 빨리 찍어야 돼!', '이 안에서 우리가 해야 될 것들을 알고 있어야 돼' 하면서 연습하고 진짜 30분 만에 미친 듯이 찍었던 기억이 난다. 단편 때 한 번 매직아워를 찍어보고 다시는 어떤 것도 찍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웃음) (촬영) 앞뒤로 태풍이 오고 그랬는데 그날만 해가 떴다. 해가 안 뜨면 못 찍을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저희가 찍었다.
▶ 하나를 좋아하게 된 아주 많은 순간이 있었는데 선행상 받았을 때 그 기쁨과 절망 어린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하나가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하는 것도 되게 좋았던 것 같다.
윤가은 감독 : 그걸 좋아해 주셨다고 하니까 너무 기쁘다. 하나라는 인물을 만들 때, 뭔가 돕고 싶어 하고 책임지고 싶어 하는 그런 의지가 일종의 오지랖일 수도 있다. 어떤 불우한 환경 때문에 만들어진 걸 수도 있지만 동시에 저는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성정은. 현대 사회에는 각자 잘 살아야 한다고 자꾸 이야기하고, 저도 그랬다. 주위에서도 이런 친구들을 볼 때 '너무 그러지 마. 너를 챙겨'라고 하는데, 그 친구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일을 할 때 그걸 온전히 바라봐주고 칭찬해주는 게 사실 저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요리보다도 하나의 더 특출난 재능이길 바랐던 것 같다. (가족에게) 여행 가자든가, 너네(유미-유진) 엄마 아빠를 찾으러 가자거나, 혼자 있는 유진(주예림 분)이한테는 '아까 언니랑 오지 않았어?'라고 한다든가. 하나가 오지랖 재능을 펼치지 않았다면, 유진이가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나. 어떻게 보면 되게 좋은 능력이 아닐까. 이게 맞는 대답일지 모르겠는데 그런 것이 좀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좀 그런 성향이 있었는데 그런 성향 가진 저를 한동안 되게 미워한 적이 있었다. 이게 되게 좋은 건 줄 알았는데 내가 손해 보는 느낌? 너 그렇게 살지 말라는 얘기 되게 많이 들었고. (웃음) 하지만 누군가를 향해서 손을 뻗는 게 되게 중요하다. 되게 복합적인 마음에서 이 인물이 탄생했다.
윤가은 감독 : 이것도 제가 준비한 저의 마지막 질문이었는데. (일동 웃음) 감독님(김보라)도 정말 오랜 시간을 들여서 첫 번째 영화를 만드시지 않았나. 되게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는 영화를 내놓고 나서 뭔가 상황정리가 안 되는 기간이 되게 길었고, 이게 내 마지막, 이게 내 유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일동 웃음) 그냥 이거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 이게 지속가능한 일이 될 거라고 생각을 못 했다. 여성 감독으로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이걸 시장에서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한 번도 증명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두 번째 영화를 만들었고 매번 이게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만들고 있다. 요새 두 다리 뻗고 잔다는 게, (영화를) 개봉할 수 있어서 기쁜 게 진짜 크다. 영화를 만드는 것까지는 영화의 반 정도고, 영화 개봉해서 관객 만나는 게 반인 것 같다. 그게 완성되는 거란 느낌이다. 사실 너무 무서웠고 되게 외롭기도 했는데 만들어서 관객분들 앞에 선보일 수 있고, 이런저런 영화평을 듣고 제가 배우기도 하고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게 많아서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다. (…) 다른 것보다 그런 게 되게 좋다. 3년 전에 개봉할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인제) 같이 개봉을 하는 여성 감독님의 영화가 있다는 것, 그게 되게 되게 이상한 힘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외롭지 않은 기분? 처음 느껴보는 기묘한 느낌이랄까.
◇ '벌새' GV
▶ 6년 가까운 시간 동안 오롯이 하나의 이야기를 붙잡고 간다는 게 같은 감독으로서 굉장히 놀라운 사건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단 생각이 든다. 그 제작 과정 동안 감독님이 생각하시기에 가장 큰 위기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나.
김보라 감독 : 조수아 프로듀서가 한국에 오지 못해서 일정과 스태핑 변화가 있었다. 그때 이 영화를 나만큼 사랑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그 친구처럼 사랑해 줄 사람을 찾는 게 힘들었고 결국 이 영화 만들어 냈는데 그때가 힘들었던 것 같다. 그거 말곤 제작 지원을 계속 받아야 하는 순간이 그랬다. 저희 영화가 내용이 굉장히 길다. 시나리오 자체가 굉장히 길고 예산이 많이 필요했고 회차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25회차 언더로 찍고 시대극을 현재로 바꿔라' 하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지금이야 어느 누구도 그런 얘길 하지 않지만 제작 단계에선 모두가 그 얘길 했고, (94년 시대극을) 강행하려는 저에게 많은 조언을 줬다. 그게 되게 일리 있는 말이지만, 저는 94년을 가지고 갔어야 했는데, 지금의 완성된 걸 미리 볼 수 없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불안했던 시기다. 주변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헤쳐갔던 것 같다. 한 번은 제가 정말 엎어버리고 싶었다. 사실 너무 힘들었고 또 이걸 내가 엎는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 안 쓸 것 같았다. 내가 엎었다고 한들 어차피 뉴스에 안 나올 거고 중간에 안 하고 은퇴한들 아무도 모를 테니. 엎고 싶어서 친구한테 얘길 했다, 울면서. 진짜 이걸 그만하고 싶다고. 아무도 신경 안 쓸 거라고. 그랬더니 그 친구가 자기가 신경 쓸 거라고. 이 '벌새'가 완성되는 걸 보고야 말 거라는 친구의 말이 되게 위로가 됐다.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부산영화제 프리미어 때도 제가 옷도 없는 것 같으니 뭐라도 사고, 스태프들 뭐 먹이라면서 제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돈을 보내주는) 그런 일이 있었다. 한 영화를 만들기까지 저는 너무 많은 빚을 졌다. 현장 스태프,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사람들까지. 근데 제가 이것만 한 건 아니고 강의도 했다, 6년 동안. 요즘 '벌새'에 저의 30대를 다 바쳤다 이런 헤드라인이 나오는데 (일동 웃음) 저는 계속 강의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웃음)
김보라 감독 : 저는 '벌새'가 굉장히 원형적이고 굉장히 전형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신선하게 받아주시는 게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너무나 일상을 다루고 있고 너무나 흔히 일어나는 그 시대의 공기를 그렸기 때문에 어떻게 덜 전형적으로 그릴까 했다. 연출이나 음악, 촬영, 편집의 리듬, 스타일, 시퀀스를 만드는 형태에서도 좀 다르게 가져가려고 했다. (이게) 엄청 새로운 얘기라고 접근하진 않았다. 굉장히 보편적인 얘기를 나의 방식으로 어떻게 다르게 할까, 고민은 했지만. 어쨌든 시나리오 단계에서 배우분들한테는 보여드렸을 때 다들 이해를 잘하셨던 것 같다. 가장 많이 들었던 피드백은 소설 같다는 것. 90년대에 있었던 소설 같다는 피드백을 많이 들었다. 문학작품 같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배우분들도 좋아했다. 시나리오 보여드렸을 때 그냥 영화 얘기만 하는 경우는 없었다. 시나리오 보여드리고 미팅하면 많이들 우셨다. 저도 많이 울고. 영화 얘기가 아니라 삶에 대한 얘기를 항상 하게 됐다.
투자사 미팅할 때 투자사 직원분이 자기 삶에 대한 얘기를 하기도 했다. 결국 투자는 못 받았는데. (일동 웃음) 전 그날이 되게 소중했다. 명동 어드메에서 얘기했는데 (투자사 직원이) 자기 유년을 나눠줬다. 이 회사에서 투자를 성공시킬 자신은 없지만 이 영화가 정말로 잘되길 바란다고 얘기했다. 자기 삶의 조각이 주는 온기가 그날 하루종일 저한테 있었다. 그래서 이 시나리오 단계에서도 이게 엄청나고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많은 사람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개인적인 경험을 건드린달까? 아예 못 받아들이는 분도 있었다. '아, 그래. 그냥 여중생 얘기'… '얘는 부모님도 있고 남자친구도 있고 좋다고 따라다니는 후배도 있고 친구도 있는데 왜 힘들어?' 이러시는 분도 있었다. 다 다르니까, 취향이. 근데 이걸 좋아하는 분들은 그냥 좋아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일동 웃음) 스태프들도 이걸 일로 한 게 아니라 완전히 영혼을 바쳐서 한 느낌이었다. 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걸 같이할 때 그냥 영혼으로 일했다. 너무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물론 영화를 이해 못 한 분도 있었는데, 만약 (이야기에) 접속이 됐다면 그냥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 [관객 질문] 의상과 미술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은희(박지후 분)와 지숙(박서윤 분)의 교복 디테일도 다르더라.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김보라 감독 : 교복은 (웃음) 교복 물려 입기라는 공간이 있다. 교복을 맞출 순 없었다, 너무 비싸서. 거기 가서 가장 수량이 많고 가장 구하기 쉬운 것 중에 90년대 느낌이 나는 것, 근데 (사이즈는) 미디움이나 라지로 했다. 타이트한 게 아니어야 하니까. 그걸 다 골라서 그렇게 된 거였고. 둘(은희와 지숙)이 다른 학교니까 그 와중에도 디테일을 다르게 하려고 했다.
의상과 미술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겼던 건 집이었다. 미술에서 가장 주안점 뒀던 공간은 은희네 집이다. 왜냐하면 90년대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은마아파트 빈집을 빌렸고, 베란다가 다 터 있어서 (제작진이) 베란다를 만들었다. 은희 집에는 원목을 많이 썼다. 나무 질감으로 따뜻하게 갔다. 또 집에 레이스 커버가 있지 않나, 이발소 그림도 하나씩 있고, 세계문학전집은 항상 쟁여놓는 분위기고. 자개장은 안방에 있고. 여러 가지 자료사진과 제 유년 사진 모으다 보면 하나로 모이는 데이터들이 있었다. 미술감독님과 그런 걸 공유했고, 모든 디테일을 다 할 순 없어서 살릴 수 있는 부분을 살리자고 했다. 의상감독님이 빈티지 좋아하셔서 은희 옷에 빈티지스러움을 많이 넣었다. (가방 포함) 노란색을 많이 썼던 이유가 그 색깔이 은희하고 되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김보라 감독 : N차 관람하신 분의 내공이 쌓인 질문인 것 같다. 똑같은 질문을 지후에게 했다. 그때 지후 대답을 듣고 정말 이 시나리오 이해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후는 자기가 버려진다는 느낌을 받는데 혹도 버려진다는 생각을 했고, 버려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으니까 그 혹에 대해 물어본 거 같다는 맥락의 얘기를 했다. 이 아이(은희)는 상실에 대한 감각이 되게 예민한 아이다. 혹이 나쁜 거라고 해서 떼는 건데도, 자기 일부였으니까 아쉬운 거다. 사람들한테 그런 욕망이 있나 보다, 분리되는 것에 대한 상실감? 참고로 그 장면에서 간호사의 목소리는 저다. (일동 웃음) 두 번 출연했다. 새로 온 (한문) 선생님도.
▶ [관객 질문] '벌새'에서도 '리코더 시험'에서도 엄마가 되게 작고 단단하지만 어딘가 떠나버릴 것 같은 분위기다. 이런 이미지는 어디서 얻었나.
김보라 감독 : 저는 모성 신화에 굉장히 동의하지 않는다. 모든 엄마와 딸의 관계는 아름다울 거 같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저도 TV에 나오는 엄마 역할을 (저희 엄마가) 하길 바랐고, 지금 굉장히 반성하고 있다. 그래서 (그 시절 엄마와의 관계에서) 미끄러진다고 생각했다, 있지도 않은 이미지를 찾으니까. 엄마(이승연 분)는 너무나 일이 많다. 방앗간도 해야 하고 아이들을 다 챙겨야 한다. 아빠(정인기 분)는 춤을 출 수 있지만 이 사람에겐 아무것도 없다. (은희가 불렀을 때 대답 안 했던 장면에선) 자기 안에 소용돌이를 만나고 있던 거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허무와 괴로움, 고독이 있다고 봤다. 그런 자신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은희는 엄마가 집에서 하는 얼굴과 너무 다르니까 계속 부르고, 엄마는 못 듣는다. 둘의 평행되는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면 나중에 은희가 엄마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오프닝도 그렇게 시작했고 두 번째 공원씬도 그렇게 했다. 감자전 씬에서는 엄마가 은희를 본다. 자신 안의 소용돌이가 있어도 이 아이를 놓지 않을 거라는 희망으로 끝내고 싶었다. '벌새' 프리퀄 같은 단편에서는 아무래도 시간이 짧다 보니 엄마가 더 추상적으로 그려졌다. '리코더 시험' 때 제가 하지 못했던, 비겁하게 좀 안 보여줬던, 내가 무서워서 가닿지 못했던 부분들을 '벌새'에서 도전해 보고 싶었다. 인간이 갖는 공포나 우울, 불안, 내가 통과해야 하는 감정들을 '벌새'에서 되게 탐험해보고 싶었다. '리코더 시험'이 굉장히 따뜻했다면 '벌새'는 좀 서늘한 영화가 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