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웃음도 눈물도 예상 가능

[노컷 리뷰]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아이 같은 아빠 철수와 어른 같은 딸 샛별이 만드는 좌충우돌 코미디다. 왼쪽부터 샛별 역 엄채영, 철수 역 차승원 (사진=용필름 제공)
※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 내용이 나옵니다.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감독 이계벽)는 철수가 우연히 장모 희자(김혜옥 분)의 차에 태워져 병원에서 잊고 지낸 딸 샛별(엄채영 분)을 우연히 만나며 겪는 일을 그린다. 개봉 전부터 '차승원표 코미디', '원조 코미디 맛집', '믿고 웃는' 등의 문구로 소개할 만큼, 앞부분에서는 웃으라고 판을 깔아준다.

그 방식은 '반전'이다. 손칼국수집에서 밀가루를 반죽하는 근육질의 남자 철수(차승원 분)가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그렇다. 열정적으로 반죽에 임하는 그를 창밖 손님들은 선망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내 철수가 보통 사람들보다 말투와 행동이 어눌하다는 걸 관객들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잊고 지냈던 딸 샛별을 병원에서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철수는 '내게 숨겨진 딸이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으로 샛별에게 다가서고, 때맞춰 진지한 음악도 흐른다. 그러나 철수가 노린 것은 맛있어 보이는 과자 벌집핏자였다.

다른 등장인물도 마찬가지다.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늘 철수의 길동무가 되어주는 김씨(안길강 분)가 사실은 어둠의 세계에 있었고, 살벌한 통화를 하느라 곁에 있는 은희(전혜빈 분)가 놀라는 장면, 그의 수하였던 대구 조직폭력배 보스가 부하들 앞에서는 일부러 목소리를 더 낮고 굵게 까느라 안간힘을 쓰는 것, 철수-영수(박해준 분) 형제에게 누구보다 매몰찰 것 같지만 영수 딸 민정(류한비 분)이 배고프다고 하면 척척 현금을 내놓는 모습 등.

문제는 이게 전혀 반전으로 느껴지지 않는 데 있다. 대부분 예상 가능한 선에서 개그가 시도된다. 분명히 지금 웃어야 할 것 같은데 허를 찔리는 맛이 없어서 싱겁게 지나가고 만다. 힘을 과시하기 위해 철수가 근육이 도드라지는 자세를 하는 장면도, '밀가루는 몸에 안 좋다'고 하는 대사도 웃음의 일관성을 위해 반복되지만 딱히 웃기진 않는다.


소아 백혈병을 앓는 샛별이 자신의 처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장면 역시 그리 유쾌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무사히 다음 생일을 맞을지 모르는 친구들을 위해 가장 원하는 선물을 가져다주려는 고운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울먹이는 슬픈 표정을 보이는 민머리 꼬마를 보는 사람들의 슬픔은 과장돼 있고, 반복되기에 식상하다.

유해진을 내세운 코미디 '럭키'로 700만 관객을 동원한 이계벽 감독의 후속작이라고 하기엔 웃음의 타율이 낮다. 오히려 중반부터 펼쳐지는 철수의 숨은 사연이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인다. 철수는 2003년 2월 일어난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소방관이었고,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사고 현장에 들어갔다가 그 후유증으로 지적 장애를 앓게 됐다는 이야기다.

샛별을 임신한 아내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철수의 모습이나, 뜻밖의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도리는 없다. 철수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기억을 잃은 철수를 찾아오고, 그 사연이 전국에 퍼져 샛별에게 골수를 기증하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리는 후반부는,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려는 듯하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샛별과 같은 병동에 있는 아이들 사이의 우정이었다. 하루하루가 소중하기에 쉽게 '다음'을 이야기하는 철수에게 화를 내는 샛별의 단호한 표정, 친구들과 떨어져 홀로 떨어진 병실에 있을 때 전화로 나누는 대화, 외롭지 말라고 샛별이 좋아하는 스티커를 잔뜩 붙여주고 힘을 합쳐 샛별의 대구 여행을 도와주는 모습에 코끝이 찡해졌다. 또, 샛별 역 배우 엄채영이 보여줄 연기가 더 궁금해졌다. 아이들이 직접 그린 듯한 글씨와 그림으로 꾸며진 엔딩 크레디트도 놓치지 말길 바란다.

11일 개봉, 상영시간 110분 59초, 12세 이상 관람가, 한국, 코미디/드라마.

백혈병을 앓는 샛별 역을 연기한 엄채영 (사진=용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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