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올해 농사는 망쳤소, 추석 앞두고 배 우수수…"

강풍에 벼 등 2800여ha 농작물 쓰러져…835ha서 낙과 피해
뒤늦게 떨어지거나 성장 멈추는 경우 많아 피해 늘어날 듯

전남 나주 왕곡면 덕산리 노봉규씨 배밭(사진=박요진 기자)
제13호 태풍 '링링'이 휩쓸고 간 7일 오후 전남 나주 왕곡면의 한 배밭.


제13호 태풍 링링의 직접 영향권에서 벗어난 뒤 봉지에 쌓여 나무에 매달려 있어야 할 배 10개 중 3개는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앞으로 20일 정도는 나무에 더 매달려 있어야 상품성이 있지만 태풍 링링이 몰고 온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200m 정도 떨어진 또 다른 배밭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채 무르익지 않은 배들이 언뜻 보더라도 1000여 개 이상씩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노봉규(62)씨는 아버지에 이어 60년째 배 농사를 짓고 있다. 올해는 이른 추석 탓에 연휴가 지나고 오는 9월 말에나 배를 따서 시장에 내다팔 예정이었다. 주변 농민들과 태풍이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고 지나가기만을 바랐지만 인근 배밭 중 조금이라도 태풍 피해를 보지 않은 농가는 거의 없다. 노씨는 "태풍이 온다고 아직 익지도 않은 배를 미리 딸 수도 없고 피해를 주지 않고 지나가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다"며 "모르는 사람들은 떨어진 과일만 피해본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강풍에 꼭지가 훼손된 나머지 과일도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노씨의 배밭 1.7ha 중 1ha 정도에서 낙과(落果) 피해가 발생했으며 피해 면적에서 자라던 배의 30% 정도가 이날 떨어졌다.

전남 신안군 압해읍 복룡리에서 발생한 낙과 피해(사진=전라남도 제공)
강풍이 휩쓸고 간 경우 나무에서 과일이 떨어지지 않더라도 성장을 멈추거나 며칠 내로 뒤늦게 떨어지는 경우가 잦다. 눈 앞에 보이는 피해가 전부가 아닌 이유다. 인근 마을 나주 왕곡면 신가리 이장이자 1.6ha 정도 배 농사를 짓는 정택인(72)씨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노씨의 밭보다 대지가 높은 곳에 위치한 정씨의 밭에서는 절반 가까운 배가 떨어졌다. 정씨는 "이제 일주일도 안 남은 추석을 즐겁게 보내기는 틀렸다"며 "태풍이 20일만 늦게 왔더라도 이 정도 피해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암에서 배 농사를 짓는 허모(64)씨의 상황도 비슷하다. 4ha에서 이르는 넓은 면적에서 배 농사를 짓는 허씨는 배밭 전체에서 낙과 피해가 발생했으며 낙과 비율도 절반에 육박해 사실상 올해 농사가 끝난 것과 다름없다. 전남에서는 전국에서 재배되는 배의 30% 정도가 자라고 이중 3분의 2 가까이가 나주와 영암에서 자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강풍으로 인한 피해는 배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제13호 태풍 링링이 휩쓸고간 뒤 전남 나주 한 논에서 자라던 벼들이 대부분 쓰러져 있다(사진=박요진 기자)
이번 태풍으로 인한 피해는 배밭 등 과수원뿐만 아니라 벼가 자라는 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노랗게 익은 벼가 추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지만 일부 논에서 자라던 벼는 강품에 쓰러져 물에 잠겨 있기도 했다.

전라남도는 이날 오후 2시 기준 벼 2914ha를 포함해 2864ha의 농작물이 쓰러지는 도복(倒伏) 피해가 발생했고 835ha 면적에서 배·사과 등의 낙과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도복 피해는 전남에서 해남이 1000ha로 가장 큰 것으로 집계됐으며 낙과 피해는 나주가 465ha로 가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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