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농구가 세계 랭킹 10위 러시아를 상대로 경기 중반 1점차 승부를 펼치는 등 선전을 거듭했다. 낯선 세계 무대에서 만난 아르헨티나와의 첫 경기에서 다소 위축됐던 대표팀에게서 더 나아진 자신감과 독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끌어올린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하는 힘이 다소 부족했다.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은 2일 오후 중국 우한에서 열린 2019 국제농구연맹(FIBA) 중국 농구 월드컵 B조 러시아와의 2차전에서 73대87로 졌다.
한국은 2쿼터 한때 러시아를 1점차로 쫓는 등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전반전이 끝났을 때 한국의 열세는 고작 3점이었다. 하지만 후반 들어 압박을 강화한 러시아의 수비와 공격에서의 조직력에 한국은 조금씩 집중력을 잃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국 선수들은 69대95로 크게 패한 아르헨티나전보다 더 나은 자신감을 보였다. 특히 가드 이대성의 분전이 돋보였다.
17득점 2어시스트를 올린 이대성은 과감한 공격 시도로 대표팀의 공격이 답답할 때마다 활로를 뚫는 역할을 했다.
3점슛을 9개나 던졌다. 기회가 생기면 주저없이 슛을 던졌다. 세계 무대에서 그처럼 주위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있게 스텝백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선수는 한국에 많지 않다.
이대성이 가진 장점은 상대가 누구든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의욕이 지나치게 과하면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대표팀에게 이대성의 자신감이 반드시 필요했다.
라건아는 19득점 10리바운드 야투성공률 50%를 기록하며 분전했다.
한국은 스페이싱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격을 전개하다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그래도 이대성을 중심으로 가드진이 활발하게 움직이면 활로를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라건아는 확실한 경쟁력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은 리바운드 싸움에서 34대39로 비교적 대등하게 맞섰다. 러시아의 압도적인 높이, 한국이 놓친 야투 개수가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선전한 것이다.
그러나 여유의 차이는 제법 컸다. 한국은 실책 15개를 범했다. 러시아(8개)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러시아는 전반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언더독' 한국이 이변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수를 줄여야 했는데 그 부분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경험의 차이일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은 여전히 선수 교체에 따라 경기력에 기복이 생기는 경향을 보였다. 대표팀 주전과 비주전의 전력차를 메울 수 있는 선수 로테이션과 김종규의 부상에 따른 빅맨진의 활용법 등 여러가지 극복해야 할 과제를 남겼다.
한국은 시작하자마자 근소하게 끌려갔다. 신장 2미터 이상의 장신이 다수 포진한 러시아의 높이 경쟁력은 강했다.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과감하게 던지는 3점슛은 한국 수비에 적잖은 위협이 됐다.
한국은 지난 아르헨티나전과 마찬가지로 우선 골밑 수비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높이 열세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비 로테이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외곽에서 수많은 득점 기회를 내줘야 한다. 이는 지난달 인천에서 열린 현대모비스 초청 4개국 국제농구대회 때 리투아니아, 체코 등 유럽 강호들과 평가전을 치렀던 김상식 대표팀 감독이 털어놓은 고충이기도 하다.
반면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발이 빠른 편은 아니었다. 늘 자신감이 넘치는 이대성의 교체 투입이 경기 양상을 바꿔놓았다. 이대성은 적극적으로 상대 수비를 흔들었다. 과감하게 3점슛을 던졌고 김선형과 화려한 패스 플레이를 전개하기도 했다.
2쿼터 들어 라건아의 골밑 득점과 이승현의 3점슛이 뒷받침되면서 한국은 러시아를 28대29로 추격했다. 베테랑 양희종은 강인한 수비와 에너지가 자신의 가치임을 증명하며 힘을 실어줬다. 대표팀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이후 한국은 전반이 끝날 때까지 러시아에 대등하게 맞섰다.
무엇보다 라건아와 이승현이 중심이 되어 수비리바운드를 적극적으로 사수한 것이 큰 힘이 됐다. 공격리바운드 허용에 이어 허무하게 점수를 내준 장면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한국은 3쿼터 들어 크게 흔들렸다.
러시아는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특히 위험 지역에서 공격을 시도하는 한국 선수를 과감하게 둘러쌌다. 이후 빈 공간을 메우는 러시아의 수비 로테이션이 한국의 패스와 움직임보다 빠르고 적극적이었다.
한국이 공격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이 러시아의 가드 그리고리 모토빌로프가 돌파력을 앞세워 한국 수비를 흔들었다. 수비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마다 러시아는 골밑 공략과 속공으로 차근차근 점수를 쌓았다.
한국은 3쿼터 10분동안 러시아에 12대23으로 밀려 주도권을 내줬다. 스코어는 49대63으로 벌어졌다.
러시아의 공격은 단순했지만 효율적이었다. 림 바로 아래에서 강한 몸싸움으로 자리를 잡는 러시아 빅맨의 움직임은 한국에게 부담이 됐다. 러시아는 2대2 공격을 할 때도 먼저 골밑을 봤다.
한국 수비가 골밑을 신경쓰면 어김없이 외곽에 기회가 생겼다. 한국 수비가 조금이라도 호흡이 맞지 않으면 러시아는 기회를 잡았고 놓치지 않았다.
한국은 17점차로 뒤진 4쿼터 초반 이승현의 중거리슛으로 한숨을 돌렸고 이정현의 연속 3점슛이 터지면서 추격에 나섰다. 그러나 러시아 역시 차분하게 득점을 쌓았고 한국은 더 이상 추격하지 못했다.
2패를 당한 한국은 사실상 다음 상위 라운드 진출이 어려워졌다.
대표팀은 한국시간으로 4일 오후 5시30분 나이지리아와 2차전을 치른다. 나이지리아는 앞선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에 81대94로 져 한국과 나란히 2패를 기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