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발리뷰]는 배구(Volleyball)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CBS노컷뉴스의 시선(View)이라는 의미입니다. 동시에 발로 뛰었던 배구의 여러 현장을 다시 본다(Review)는 의미도 담았습니다. 코트 안팎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배구 이야기를 [노컷발리뷰]를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정확히 한 달 전이다. V-리그 남녀부 13개 구단의 연고가 없는 부산광역시는 오랜만에 배구로 뜨거웠다.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 한국전력, OK저축은행까지 V-리그 남자부 4개 팀이 모여 ‘2019 부산 써머매치(이하 써머매치)’라는 이름으로 개최한 친선대회가 그 중심에 있었다.
2019~2020시즌 외국인선수를 뽑는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농담처럼 시작된 써머매치의 출발은 연습경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2005년 V-리그가 출범한 이래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였던 써머매치는 배구계의 ‘판’을 흔들었다.
부산을 포함한 인근 경남지역의 뜨거운 배구 열기를 확인한 기대 이상의 성공으로 현장을 찾은 많은 배구 관계자를 놀라게 했다. 덕분에 내년에 다시 부산에서 써머매치를 열자는 목소리가 나왔고, 부산을 연고로 하는 신생팀 창단도 논의됐다. 또 여자부도 V-리그 연고가 없는 광주광역시에서 같은 취지의 대회를 열기로 했다.
이 모두는 신진식 감독과 최태웅 감독, 장병철 감독, 석진욱 감독까지 네 절친의 추진력이 만든 최상의 결과물이다. CBS노컷뉴스는 네 감독의 남다른 추진력을 확실하게 뒷받침했던 써머매치 성공의 숨은 주역인 각 팀 사무국장과 만나 성공을 있게 한 숨은 비결을 들어봤다.
대회가 끝난 뒤 만난 네 팀의 사무국장은 써머매치의 성공 비결로 “부담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박범유 한국전력 사무국장은 “처음부터 부담스럽게 접근하지 않았다”면서 “비시즌에 연습경기는 많이 하니까 이왕 할 거라면 팬에게 개방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지방으로 다 같이 가서 경기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또 처음에는 3세트만 하자고 했는데 감독님들이 제대로 보여주자고 해서 5세트로 늘어났다. 그렇게 판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박 사무국장은 “특별히 홍보도 하지 않아 50명, 100명이나 올까라고 걱정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대회가 열리는 날 정말 깜짝 놀랐다. 많은 배구팬이 찾아주셔서 가슴이 뭉클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장에서 지켜본 써머매치는 V-리그에서 볼 수 있는 세련된 경기 진행이나 화려한 코트 밖 장치가 없었다. 참가 팀 감독과 선수, 프런트 모두가 경기 결과에 집착하지 않았다. 덕분에 ‘배구’를 하는 선수, ‘배구’를 보러 온 관중 모두가 고스란히 ‘배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3박4일의 판이 만들어졌고, 이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코트 위의 선수들이다. 외국인 선수가 없는 데다 주전급 선수들도 대표팀에 차출된 상황이었지만 써머매치에 출전한 선수들은 V-리그 경기 때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모습을 부산, 경남지역 배구팬에게 선보였다.
김성우 현대캐피탈 사무국장은 “비주전 선수들이 연습경기를 많이 하지만 정작 시즌 때는 경기 뛰는 선수가 따로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코보컵이 아니면 이 선수들이 기량을 보여줄 기회가 없는데 (써머매치는) 관중 앞에서 경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양제 같은 효과가 확실했다”고 말했다.
장승수 OK저축은행 사무국장도 “성적을 떠나 즐거웠다. 주전과 비주전 관계없이 모두가 경기에 뛸 기회를 얻었다. 그러다 보니 부상도 없고 전지훈련보다 효과도 컸다”고 설명했다.
써머매치는 분명 승패를 떠난 연습경기였다. 하지만 팬들이 보는 앞에서 마치 실전과 같은 분위기로 경기하게 되자 선수들은 가진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경기 전에는 부산지역 유소년을 찾아가 자신이 가진 배구 기술을 전수했고, 또 경기가 끝난 뒤에는 찾아가는 팬 서비스까지 화끈하게 선보였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부산, 경남지역의 뜨거운 배구 사랑을 직접 체험한 선수들의 진심이었다. 유대웅 삼성화재 사무국장은 “리그 때는 (승패의 부담 때문에) 선수들이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얼굴이 굳어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써머매치 때는 선수들의 표정부터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써머매치는 선수단 외에도 프런트에게 가능성 단계에 있던 구상을 확신으로 이끌었다. 배구뿐 아니라 골프를 제외한 4대 프로스포츠 경기장에서 필수로 여겨졌던 응원단장과 치어리더, 그리고 앰프 없이 팬의 함성만으로도 경기장 분위기를 뜨겁게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유대웅 삼성화재 사무국장은 “그동안 홈경기마다 우리만의 스토리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배구의 현장감을 느끼고 선수들의 땀을 보러 오는 팬도 많을 텐데 핵심적인 본질을 잊은 채 팬을 우리가 만든 틀에만 넣으려고 했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평가했다.
박범유 한국전력 사무국장도 “누군가 유도하지 않아도 팬들의 응원이 자연스러웠다. 절대로 관중의 수준은 낮지 않았다”면서 “선수가 몸을 날려 공을 받는 모습을 보고는 30초 정도 박수치던 팬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김성우 현대캐피탈 사무국장은 “우리가 준비한 것보다 얻은 게 더 많았다. 사실 너무 많은 걸 얻은 것 같다”면서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 장승수 OK저축은행 사무국장은 “프로배구를 향한 부산, 경남 지역의 확실한 니즈(Needs)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2019 부산 써머매치는 V-리그에 분명한 화두를 던졌다.
V-리그가, 또 한국배구연맹(KOVO) 컵대회가 주지 못한 순수한 배구 그 자체의 재미를 팬과 선수, 또 많은 배구 관계자에게 보여줬다. 비시즌에도 배구를 즐길 새로운 콘텐츠의 탄생이다.
덕분에 남자부에 이어 여자부도 써머매치를 개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욱 규모를 확대하려는 계획도 벌써 만들어지고 있다. 배구로 뭉친 네 명의 감독으로부터 시작된 아이디어는 네 구단의 협력을 통해 V-리그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제 그 뒤를 이어 현대건설과 한국도로공사, KGC인삼공사, IBK기업은행까지 여자부 네 팀이 이어받는다. 이들이 광주에서 선보일 진짜 배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