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찰의 전면적 압수수색은 당황스럽고 무척 혼란스럽다. 엊그제 검찰은 "조국 후보에 대해 11건의 고소가 접수됐고 모두 서울중앙지검 형사 1부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만 하루가 안돼 검찰은 서울지검 특수부 인력 70여명을 동원해 조국 본인과 가족일부를 제외한 주변인물 그리고 관련기관에 대한 대대적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검찰 움직임은 전격적이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 2부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을 보면 이미 1주일쯤 전부터 참고인 조사를 거쳐 내밀하게 준비를 한 것으로 관측된다.
많은 사람들이 검찰의 수사의도를 묻는다. '조국 구출용' 방탄수사인가, 아니면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찰의 진검승부'인가? 검찰의 의도는 둘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다. 검찰은 조직 논리도 존재하지만 검사 개인의 속마음도 존재한다. 따라서 수사 의도를 찾고자 골몰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검찰 수사에서 '의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수사는 생물'이라는 공식이다. 수사 입구에서 윤석열 총장과 지휘부가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관계없이 검찰 수사는 과정에서 '성과주의'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근본적 구조를 갖고 있다. 국민의 관심이 총집중하는 사건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조국 후보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제 조국, 개인의 도덕적·법적 검증 차원을 넘어 검찰 개혁방향과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운명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일대 사건이 돼버렸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섣불리 예단할 수 없는 일이 된 것이다.
조국 사건은 두 가지의 '역설'과 두 가지의 '카오스(혼란)'를 가져왔다. 두 가지 역설 가운데 하나는 '과연 이 시점이 검찰이 반드시 나서야 할 때인가'라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과연 이것이 조국 후보가 문재인 정부가 원하는 검찰 개혁인가'라는 물음이다.
'카오스'로 말한다면 첫번재는 '현시점에서 검찰 수사 개입이 민주주의 운영 원리에 적절한 것인가'이며, 다른 하나는 '조국 현상이 불러온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식 이중잣대 문제'이다.
조국 후보자는 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숱한 의혹을 낳았다.
평소 '정의'와 공정'을 외친 그의 발언과는 정반대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는 '가족과 돈 문제'. '사과' 보다는 '토마토'가 돼야 한다며 삶 속에서 조그만 진보적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손에 들린 '텀블러' 말고는 언행과 일치되지 않는 그의 행적. 조국의 진보적 가치는 가을날 뙤약볕의 양지와 음지를 극명하게 대립시켰고 사회적으로 논란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문회도 열리기 전 검찰이 직접수사로 이 사안에 개입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어제(27일) 검찰의 압수수색 소식을 듣고 많은 시민들이 '지금이 검찰이 나설 때인가. 갑자기 왜 저러지'라는 물음을 던졌다. 정말 느닷없는 뉴스였다.
서울시내 대학 한 법학교수의 말이다.
"(나도) 조국 후보에 대해 분노와 실망을 하고 있다. 사퇴하는 것이 국가와 개인을 위해 바른 결정이라고 본다. 그런데 느닷없다. 그렇지 않아도 의혹과 조국의 해명으로 혼란스러웠는데 오늘 검찰의 행동으로 모든 게 더 혼란스러워졌다.
심지어는 죽쒀서 개주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잠시 했다. 조국 후보가 설치는 바람에... 1987년 6.10 항쟁을 했는데도 노태우가 대통령 당선되는 거랑 비슷한 결과가 나오는 건지... 검찰 개혁한다고 조국을 법무장관에 임명하더니 검찰이 칼들고 우리가 판정하겠다고 나서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2.현시점에서 검찰 수사 개입이 민주주의 원리에 적절한가?
조국 후보에 대한 청문회는 불과 닷새 후의 일이다. 그간 청문회를 준비하는 동안 언론과 야당에서 조 후보에 대한 검증작업은 매우 강력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들어 가장 '핫'한 청문회 준비이다. 후보자 본인은 '억울한 점'이 있겠지만, 그가 문재인 정부와 검찰 개혁의 '화신'처럼 행세한 이상 당연히 이뤄져야 할 검증이었다.
물론 의혹 제기와 해명과정에서 논쟁과 비난, 비판, 혼란이 있지만 그것은 민주주의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소모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논쟁과 토의과정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발전해왔음을 우리는 잘알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때 혼란도 컸지만 국민들은 질서 있고 명예롭게 토론하고 대응했다. 그때 촛불 민주주의는 전세계적으로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검찰 수사가 이러한 민주주의 운영 원리에 찬물을 끼얹어 버렸다. 검찰이 압수수색에 나서는 순간 후보의 검증도, 청문회도 사실상 모두 날아갔다. 국민들은 법과 제도로 보장된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통해 적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직접적인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인사청문회는 국민의 대의기관에서 열린다. 검찰은 청문회를 마칠때까지 기다렸어야 한다. 이제는 검찰 수사를 앞두고 어떤 증인이 국민 앞에 설 것이며, 장관 후보자는 무슨 진실을 얘기할 수 있는가. 그와 증인들은 발언 하나하나가 '수사의 단서가 될 것'이라며 입을 닫아 버릴 것이다.
검찰은 국회 인사 청문회를 '벙어리 청문회'로 형해화시켜 버렸다. 수사는 결과일 뿐이다. 국민들은 공개된 청문회를 통해 후보자와 증인들의 해명을 직접 듣고 싶어 한다. 그 기회를 박탈당했다. 이것은 검찰이 한국 민주주의 숙의 과정을 말살한 것이다. 검찰이 대관절 어떤 초법적 기관이길래 국민 대의기관에서 열리는 '공개 인사청문회'를 '비공개 수사'로 무력화시킨단 말인가.
"검찰이 압수수색을 한 것을 보면 이것을 국정농단 사건에 가깝다고 본 건지 황당한 생각이 든다. 사안의 경중이나 악질성은 가벼울지 몰라도 시대에 주는 파장은 엄청난 것 같은데 얼마나 그 무게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누가 현시점에서 검찰이 안나선다 뭐라 욕한 적이 없다. 타이밍이 그렇다. 그런데 검찰이 '우리가 판단하겠다'고 나섰다. 모든 것을 검찰이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이 심판자냐. 오만하다. 지금이 무슨 군사정권의 육법당(육사+법대출신)' 시절도 아니고..."
3.조국이 원하는 '검찰 개혁'이 이것인가?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고 있는데 조국 후보자는 어쩌자는 것인가. 정말 지금의 현실이 조국 후보자가 원하는 것인가.
조국은 장관 후보자 지명소식 직후 "법무부 장관이 되면 서해맹산(誓海盟山)의 정신으로 공정한 법질서 확립, 검찰개혁, 법무부 혁신 등 소명을 완수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검찰개혁은 20년의 숙원사업이다. 공수처와 검경수사조정으로 검찰개혁이 얼마나 진전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검찰 수사권을 축소·폐지하는 것은 일관된 방향으로 제시돼야 한다. 선진국 검찰 치고 한국 검찰처럼 무소불위의 수사권을 휘두르는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다. 수사 지휘권을 보장하되, 직접 수사권을 없애는 것이 맞다는 게 일관된 견해다.
그런데 조 후보자의 처신은 오히려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확대시키는 '역설'을 가져오고 말았다. 검찰 개혁의 기수가 검찰수사권 확대를 위한 지름길을 닦아 놓은 것이다. 개혁의 명분과 방향이 정반대로 역주행하는 것을 보면 왜 촛불을 들었는지 망연자실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굴러 떨어지는 바윗돌에 맞아 '사고'가 난다는 것이 이런 것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운명은 때때로 짓궂고 야속하다.
검찰출신 한 변호사는 이렇게 심정을 밝혔다.
"작금의 검찰 수사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청와대에서 검찰이 압수수색한다는 것을 언제 알았는지, 영장청구를 미리 알았다면 (내가 청와대에 있었다면) 보류하라고 하고 후보자에게 사퇴를 하도록 권유했을 것이다.
조국 후보자는 이제 장관되기 어렵다. 청문회를 통과해도 검찰이 계속 수사중인 사람이 어떻게 장관직을 유지할 수 있고, 한다해도 얼마나 갈 수 있을까. 그리고 검찰 수사에서 '뭔가' 나오게 돼있다. 본인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누군가)알아서 도와준 것이 있지 않겠는가. 그런 것 엮으면 걸리지 않을 수 없다. 왜 검찰개혁 한다는 사람과 정권이 민심의 흐름을 외면하고 맞서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조국 사건 또는 조국 현상은 우리 사회에 '이분법, 이중잣대'의 혐오를 과도하게 부추겼다.
사회적으로 그 연원이야 오래된 현상이라지만 그가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올린 페북글은 '양단간 하나를 선택하라'는 논란에 불을 지폈다. 섶을 지고 뛰어든 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경제전쟁'의 '최고통수권자'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전쟁' 속에서도 '협상'은 진행되기 마련이고, 또한 그러해야 하며, 가능하면 빠른 시간 '종전'해야 한다. 그러나 '전쟁'은 '전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이다." (2019년 7월 18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회관계망서비스 내용)
심지어 검찰이 압수수색을 했던 27일 밤 포털에서 '조국 힘내세요'와 '조국 사퇴하세요'라는 실시간 검색어가 맞불전쟁을 벌이는 일까지 일어났다. 지금 이런 사례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것은 '조국 현상'의 부산물이다. 조국 현상은 '사회적 지도자의 정의와 공정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논란도 촉발시켰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죽고 나살자'식 편가르기 현상을 심화시켰다. 조 후보자가 그의 영향력이 본인과 가족, 친척만이 아니라 사회 전방위에 파급되고 있음을 돌아봤으면 좋겠다.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지만 모든 곳에서 사슬로 얽힌다'는 루소의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경남 통영에 가면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다. 삼도수군통제영은 요즘으로 치면 해군 총사령부에 해당한다.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가 곳곳에 배어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웅장한 세병관(洗兵館)이 나타난다. 삼도수군통제영의 핵심인 객사 건물이다. '세병'이란 이름은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세병마행(洗兵馬行)'의 마지막 구절 '정세병갑장불용(淨洗兵甲長不用)'에서 빌어온 것이다. 하늘의 은하수의 물을 길어와 병기를 닦아 다시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 안녹산 난 등 전쟁에 시달렸던 두보의 바람이다.
조국 후보자도 검찰도 하늘의 은하수의 물을 길어다 병기를 씻을 생각은 없는지 곰곰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