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영화, 광고 등 다양한 미디어는 물론 일상에서마저 만연하게 이뤄지는 여성 대상화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고 착취하는 '포르노'를 단순히 금지하자는 구호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구호를 넘어 더 많은 여성이 여성 혐오 없는 미디어를 만들어 낼 것인가.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다의 문제는 아니다. 21세기에 서 있는 우리는 이 모두를 아우르는, 혹은 넘어서는 또 다른 물결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물음을 가져볼 수 있는 지점이다.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열린 여성문화이론연구소 46번째 여름 강좌 '포르노와 페미니스트'의 마지막 강의 '페미니스트로서 포르노 반대에 반대한다: 게일 루빈'에서는 반(反)포르노 운동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 게일 루빈의 주장을 살펴보며,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게일 루빈은 1975년 발표한 논문 '여성 거래'(Traffic in Women: Notes on the 'Political Economy' of Sex)에서 젠더(사회적 성)와 섹스(생물학적 성)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레비스트로스, 정신분석 이론 등을 참고해 여성 억압의 역사를 구성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여성 성 역할을 분석했다.
게일 루빈은 페미니스트로서 포르노그래피가 그 자체로 굉장히 성차별적이며 폭력적이고 여성의 이익에 상반되기에 금지해야 한다는 '반포르노 운동'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단순히 포르노가 성차별적 재현물이라는 데 대한 반대라기보다, 여성에 대한 폭력적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은 포르노뿐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 TV드라마 등 수많은 대중문화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왜 '포르노'에만 집중해 타깃으로 삼느냐는 것이다.
배상미 강사는 "게일 루빈은 직장 내 성차별·성폭력을 없애는 법이나 직장 내 여성에 대한 임금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법을 제정할 수도 있는데, 왜 반포르노 조례를 제정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가, 이것이 과연 여성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라며 "포르노에 대한 규제가 여성의 억압을 해결할 수 있다면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질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포르노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노동시장, 문화 영역에서 나타나는 성차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는 성차별과 연결해 이야기하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성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라며 "그러기에 법을 제정해도 다양한 여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드레아 드워킨은 성교육용 비디오도 반포르노 조례의 검열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루빈은 오히려 더 많은 여성이 성교육 영상이나 영화 제작 등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반포르노 운동의 끝은 다양한 여성, 하나의 여성은 없다는 이야기로 나아가게 된다"라며 "'포르노 전쟁'이라 불리는 이 사건이 어떻게 포스트 페미니즘으로 활성화되는 계기를 어떻게 마련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루빈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배 강사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남성 중심적 재현들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고,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미디어를 읽는 게 많이 이뤄지고 있다"라며 "남성중심적 재현에 대한 비판만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니라 페미니즘적 미디어 콘텐츠를 생산하고, 여성 감독에 대한 지지나 '영혼 보내기' 등 호응도 성장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