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한국 악마화' 속내는 '외교 참패' 감추기"

[일본에 관하여 ③·끝] 심리학자 요시카타 베키 인터뷰
"한국에 '국가간 약속 지켜라' 반복…혐한 분위기 선동"
"한일 '역사 갈등' 문제에 '약속 불이행' 프레임 씌우려"
"외부 한국·내부 야당…아베, 적 설정해 자기 주장 강변"
"작지만 확실한 변화도, 아베 너머 더 나은 일본은 당위"

20년 넘게 한국과 인연을 맺어 온 요시카타 베키(46) 서울대 선임연구원(심리학 박사)은 "아베 정권을 싫어한다" "자민당에 투표한 적도 없다"고 전제했다. 한일 관계가 얼어붙는 와중에 그를 통해 들여다본 일본 사회 분위기는 예상과 기대를 크게 벗어나 있었다. 정권과 언론의 태도에 따라 변하는 사회 인식을 깊이 연구해 온 그와의 심층 인터뷰를 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아베 싫지만 한국 너무 억지 부린단 일본人 는다"
② "'위안부' 반성하던 日 국민들 돌변시킨 일대 사건"
③ "아베 '한국 악마화' 속내는 '외교 참패' 감추기"
<끝>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23일 도쿄 관저에서 한국정부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에 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일 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는 지금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유독 '약속'이란 표현을 반복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요시카타 베키 선임연구원은 "한일간 역사 갈등 문제를 바라보는 아베 정부와 우익의 속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라고 진단했다.

아베 총리는 한국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데 대해 지난 23일 "한일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등 국가와 국가간 신뢰 관계를 해치는 대응이 유감스럽게도 계속되고 있다"며 "한국 정부에 국가 간의 약속을 지키도록 요구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26일(현지시간)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막을 내린 G7 정상회의 뒤 기자회견에서도 "불행히도 양국간 상호신뢰를 해칠 대응이 이어지고 있다"며 "(한국에) 우선 국가간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하고 싶다"고 반복했다.

앞서 지난 6일 그는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한 뒤 이어온 긴 침묵을 깨고 "한국이 한일 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하면서 국제조약을 깨고 있다"며 "현재 한일 관계를 생각할 때 최대 문제는 국가간 약속을 지키느냐 아니냐의 신뢰 문제"라고 주장했다.

요시카타 연구원은 "아베가 지난 1993년 정치에 입문한 이래 행보를 계속 지켜봐 온 입장에서 그에게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아베는 '한국이 뭔가 단단히 착각하는 모양'이라고 굳게 믿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가 일본 과거사를 미화하는 이유는 실제로 그렇다고 확신하기 때문일 겁니다. 아베는 자신을 비판하는 일본 언론·지식인들을 두고 '비뚤어진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가관이 잘못됐다'고 여기는 모습이에요. '있지도 않은 일을 과장하면서 국민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더이상 이런 가짜가 확산되면 안 된다'고 확신하는 거죠."

이러한 아베 총리의 납득하기 어려운 주관적 신념은 일본 우익의 그것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요시카타 연구원은 설명했다.

"일본 우익은 한국과의 역사 문제에 있어서 '그럴 필요도 없는데 일본이 너무 많이 양보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한국과는 정상적으로 이야기해봐야 소용 없다' '무엇을 합의하더라도 반드시 뒤집히기 마련이다'라는 식으로 국민들을 선동합니다. '한국인들은 일본을 끝까지 싫어할 것'이라면서 말이죠."

그는 "아베의 역사 인식을 살펴보면, 일단 예전부터 한국을 멸시하는 듯한 경향이 상당히 컸다"며 "항상 적을 설정해 놓고 자기 정당성을 주장하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한국뿐만이 아니에요. 특히나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듬해 자민당이 민주당을 누르고 재집권한 뒤로 아베는 항상 '그 악몽 같았던 민주당 정권 때…'라는 전제를 답니다. 아베에게 국내 적은 민주당, 국외 적은 한국인 셈이죠. 지금 일본에서 아베 정권과 그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한국을 악마화 하는 선동이 벌어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어요."

◇ "아베 외교정책은 미국 추종뿐…북방영토 후퇴 국민 눈 돌리려 독도 마찰"

요시카타 베키 서울대 선임연구원이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이진욱 기자)
요시카타 연구원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일본에서 '역사 문제'는 더이상 '역사 문제'로 다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 마찰을 '한국이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 약속을 지키냐, 안 지키냐' 프레임에 가두려는 아베 정권의 노림수도 같은 맥락"이라는 이야기다.

"아베는 자신이 외교를 몹시도 잘한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지구본을 바라보는 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세계 어디든 직접 간다'고 주장하죠. 그런데 사실 일본과 역사·외교적으로 문제 없는 곳에 가서 '투자하겠다'고 하면 싫다고 할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조금만 살펴봐도 현재 아베 정권은 근처 나라와 잘 지내는 모습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외교 정책이라고는 미국을 향한 맹목적인 추종뿐인 것 같아요."

그는 "아베가 일본 국민들에게 '러시아와도 평화조약을 맺을 수 있다'고 희망적으로 이야기해 왔지만 이뤄진 것이 없다"며 지적을 이어갔다.

"일본의 영토 분쟁은 거의 100% 러시와와 얽힌 북방영토 문제였습니다. 저는 자라면서 그 외 어떠한 영토 문제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독도'는 물론이고 '센카쿠 열도' 분쟁 역시 못 들어봤어요. 그런데 아베 정권은 북방영토 분쟁에서 후퇴하고 있습니다. (북방영토에 대해) 일본 정부는 홍보 문구로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라고 써 왔는데 요즘 그것이 빠졌죠."

요시카타 연구원은 "아베 정부는 러시아와의 북방영토 분쟁에서 후퇴하는 대신 한국과는 독도, 중국과는 센카쿠 열도를 두고 영유권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며 "이는 아베 정권이 북방영토 등의 외교 실패에서 일본 국민들 눈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아베 정권은 이번 한일 양국간 문제 역시 '역사'가 아닌 '약속 불이행' 문제로 탈바꿈시키려는 겁니다. 또 한 번 국민들 눈을 돌리려고요. 일본 국민들이 한국과의 이번 갈등을 역사 문제로 인식할 수 있게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정보 전달 방식이 절실해 보여요."

최근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에서 우익 등의 압박으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중단된 사건과 관련해 요시카타 연구원은 "이 일을 계기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일본 사회 인식이 긍적적인 방향으로 크게 달라졌다"고 전했다.

"저 개인적으로도 평화의 소녀상이 지닌 취지를 일본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기 위해 언론에 글도 쓰고 했는데, 그때는 거부감을 나타내는 반응뿐이었죠. 언론 보도 등으로 일본 사회에서는 소녀상이 '한국 반일 운동의 상징'처럼 부각됐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전시 중단을 계기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일본 내 영향력을 지닌 인사들이 '소녀상을 전시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는 말을 하기 시작했죠. 엄청난 변화입니다."

그는 "전부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변화를 일으켰다. 틈을 만든 것인데 '문화 교류는 공감대를 만드는 데 엄청난 힘을 지녔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고 있다"며 "평화의 소녀상을 이해하고 환영해 줄 수 있는 일본 국민들이 모인 곳에 이를 전시하면서 메시지를 나누는 것도 공감대를 넓히는 방법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 "레이와신센구미 중증장애 의원 2명 배출 신호탄…양심보단 '상식'과 연대"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시행하기 전날인 27일 오후 일본 도쿄도(東京都) 소재 총리관저 앞에서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가까운 미래에 아베 정권이 힘을 잃고, 일본 사회를 휘감은 우경화·혐한 분위기가 반전될 수 있다는 데 요시카타 연구원은 회의적이었다. 그는 "어마어마한 '사학 스캔들'(아베 총리 부부가 연관된 비리 의혹 사건)에도 물러나지 않고 버틴 아베의 생존력" "전공투로 대표되는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의 실패 뒤 사회 전반에 번진 패배감과 시위에 대한 거부감"에서 이유를 찾았다.

"한국 국민들이 지금 일본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나중에 엄청나게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더 효과적인 대책을 세울 수도 있을 테니까요. 현재 아베 정권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두고 야당들조차 별다른 발언이 없어요. 적어도 '반대한다'는 이야기조차 거의 안 나오는데, 이례적인 일이죠. 야당 입장에서는 아베 정권이 벌인 일에 대해 일단 반대하는 일이 정석인데, 이번 경우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있어요. 일본 사회 전반에 퍼진 반한 정서 눈치를 보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카타 연구원은 아베 정권 너머 더 나은 일본의 미래에 대한 당위를 직시하고 있었다. 지난달 21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결성 3개월차 신생 정치단체 '레이와신센구미'가 중증장애를 지닌 의원 2명을 배출한 일은 그 당위를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새롭고도 확실한 변화입니다. 이들이 일본 국민들에게 하는 이야기는 달라요. '지금 힘드시죠?' '그건 당신 책임이 아닙니다' '정부의 책임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사회적 약자·소수자를 파괴하는 논리로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자기책임론'이 판치게 된 일본 사회에서 여태까지 이렇게 국민들을 위로하는 정치인은 없었어요. 야당도 이렇게까지 직설적인 메시지를 던지기 어려운 분위기였죠. 이러한 현실에서 일본 국민들이 아무런 지지 기반도 없는 신생 레이와신센구미를 지지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변화라고 평가할 수 있어요."

그는 "물론 레이와신센구미가 정권을 잡는다는 것은 정말 꿈 같은 이야기지만, 앞으로 이들이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당신 책임이 아니다' 등의 메시지가 다른 야당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 점에서 큰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레이와신센구미는 한국과도 좋은 관계를 다져갈 수 있는 바탕을 지녔다"고 말했다.

"레이와신센구미 대표는 배우 출신 야마모토 타로입니다. 그는 동일본대지진 이후 원자력발전소 반대운동을 하다가 TV에 못 나오게 됐고 정치에 입문했어요. 야마모토 타로는 18년 전쯤인가 전북 군산에서 재일교포를 다룬 영화도 찍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있어요. 한국에 대한 발언도 몇 차례 있었어요. 최근에는 '한국에 가본 적 있는데, 사람들이 친절했다'고 호의적인 이야기를 했죠. 야마모토 타로 같은 사람들이 앞으로도 일본 내에서 한국에 대한 바람직한 시각을 이야기해 주길 바랍니다."

요시카타 연구원은 "상당히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다. 한국에서 비판의 대상을 아베 정권과 우익으로 명확하게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는 편향된 언론 보도 등으로 '한국은 반일에 목숨 건 나라'라는 인식이 퍼진 일본 사회에서는 못하고 있는 일"이라고 비교했다.

그는 "상식을 지닌 일본 사람들은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면 분명히 달라질 수 있다"며 "이점에서 한국이 이제는 '양심적' 일본인보다는 '상식적' 일본인들과의 연대를 논의하고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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