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위원은 이러한 주장을 자신의 저서인 '반일 종족주의'에서도 이어갔다. 그는 반일 종족주의가 한국의 정부기관과 학교 등 교육기관, 언론계, 문화계 등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고, 국민들의 일반적인 상식으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며 '강제동원'이라는 역사 왜곡이 한국의 반일 종족주의를 만들어 내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연구위원은 징용은 전쟁이 끝나기 직전 단지 몇 개월 실시된 것인데 왜 국내에서 고집스럽게 '강제징용'이라는 말을 사용하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징용 자체가 강제이기 때문에 징용이라고 하면 된다"면서 "굳이 강제징용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건 징용(1944년 9월~1945년 4월)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뤄진 노무동원이 강제연행이라고 주장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이어 "징용 이전에는 모집과 관알선을 통한 조선인의 일본행은 근로 여건이 더 좋은 곳으로 가려한 그들의 자발적 선택이었다. 이후 징용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은 10만 명 정도였는데, 이들에게 일본은 하나의 로망이었다"고 주장하며 "단어 속에는 단순한 실수라고 말할 수 없는 교묘한 역사적 사실의 과장과 왜곡이 들어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이 연구위원은 지난 2017년 개봉한 영화 '군함도'를 통해 드러난 조선인들이 일본인에게 강제동원돼 차별받았다는 것도 현실과 다른 '완전한 허위'라고 주장했다.
또 2015년 개관한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입구에 서면 근로자로 동원돼 목숨을 잃은 조선인들을 추도하는 높은 탑에 붙여진 사진도 조선인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위원은 1926년 9월9일 '아사히카와 신문'에 게재된 강제사역된 일본인들의 모습이라며 "훗카이도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토목건설 현장에 감금된 채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염전노예' 일본인 10명의 사진"라고 말했다.
그는 "서 교수가 미국까지 가서 일본인을 한국인이라 광고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당했다며 제3자에게 엉뚱한 선전을 한 결과가 되어 버렸다"며 "한국의 반일 종족주의를 미국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럽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6년 서울 용산역을 시작으로 인천 부평역, 제주와 창원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이 노동자상이 일본인과 매우 흡사하다고 주장하며 "한국인들이 숭배할 또 하나의 토템을 세우고 있는 것"라고 주장했다.
또 1941년 훗카이도에 있는 사크베츠 탄광에서 일했던 정성득 씨가 동료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을 언급하며 정씨가 탄광 노동자들과 함께 팔짱을 끼고 가부좌를 틀거나 걸터앉아 있는 등 이들의 모습은 여유로워 보인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친구와 함께 사진관에 가서 옷을 빌려 입고 촬영하는 등 많은 사진들을 보면서 우리는 당당했던 조선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어디에서도 '노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일 종족주의' 출간 이후 정치권과 학계에서 평가가 극명이 엇갈리는 등 논란이 더욱 확산됐지만 최근까지도 이 연구위원은 최근 일본 저녁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같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지난 16일 일본 위성채널 'BS후지'의 저녁뉴스 프로그램 '프라임 뉴스'에 출연한 이 연구위원은 "많은 한국인 노무자들은 자발적으로 일본에 갔으며 일본인, 한국인 구분 없이 임금은 공평하게 지급됐으며 오히려 한국인 임금이 더 높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부인하며 식민통치를 적극 옹호했다.
그는 "한국의 역사교과서에 강제노역 동원의 증거로 제시된 사진은 1926년 일본 북해도 신문에 난 도로건설 현장의 일본인 노역자들 사진"라며 강제징용의 근거 자체가 사실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일본측 토론자들도 적극 동조하면서 "한국 학자조차 강제동원을 부정하는데 한국 사법부와 정부가 억지를 쓴다"며 한국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인 심용환 성공회대 외래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 책에 담긴 내용들이 끼워맞추기 식 기록만 뽑은 것"이라며 "이를 새로운 사실인 양 소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러한 내용들을 토대로 역사왜곡을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