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우리나라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국가 36개국 가운데 29위에 불과하다'며 '그동안 사용자 측의 양보로 최저임금이 급상승한만큼 이번엔 노동계가 양보해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난 20일 노동생산성 관련 세미나 현장. 한 중소기업 협동조합 이사장은 최저임금 문제와 노동생산성을 다시 언급했다.
"최저임금이 오르는만큼 노동계는 과연 어떤 노력을 했는지 되돌아 봐야 합니다. 우리나라 노동생산성은 34.4달러로, 41.8달러인 일본보다 낮습니다"
올 상반기 내내 논란이 됐던 내년도 최저임금 논의과정을 보면 사용자 측은 최저임금 동결(인하)의 근거의 하나로 우리나라의 낮은 노동생산성을 꼽았다. 그러면서 생산성이 낮은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낮은 것에 기업주와 기업의 책임, 더 나아가 경제 시스템 전체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의 노민선 박사는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낮은 것을 '풍년의 역설'로 설명하고 있다. 풍년이 들면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듯 중소기업이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면 그 성과를 위탁기업(대기업)이 가져가 버려 중소기업이 혁신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 결국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은 어렵게 되고,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은 중소기업의 하청기업화라는게 노 박사의 논지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낮은 핵심 이유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수직적 거래관계 때문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전체 중소기업 매출의 40% 정도는 위탁기업(대기업)에 의존하고 있고, 이들 기업의 26%는 제품가격 인상요인이 생겨도 납품단가를 올리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은 연구개발도 소홀히 할 수 밖에 없다. 국내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생산성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데, 중소기업의 연구개발 투자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 등에 따르면 지난 2007~2012년 중소기업 R&D투자 증가율은 11.9%였으나 2012~2017년에는 4.2%로 거의 1/3 토막났다. 중소기업 1개 업체당 R&D 투자액수 자체도 줄어서 지난 2007년 6억 3천만원 정도였던 R&D 투자비가 2017년에는 오히려 3억 4천만원으로 감소했다. 연구개발 인력 역시 같은 기간 8.3명에서 4.3명으로 뒷걸음질 했다.
R&D 투자 감소로 기술은 답보상태거나 신기술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우물 안 개구리식' 기술개발에 그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의 세계 최초 신기술 개발은 불과 2.4% 정도며 76.5%가 국내 또는 신흥공업국에서 이미 보편화된 기술인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낮은 기술수준으로 인해 고부가가치의 제품을 만들지 못하니 생산비용을 줄이거나 생산량을 높이는 방식으로 수지 타산을 맞춰가고 있다. 생산비는 줄이고 생산량을 높이는 방식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저임금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중국처럼 한때 저임금이었던 국가들의 임금도 현재 빠르게 오르고 있어 공장 해외이전이 생산성 향상의 근본적 해답은 될 수 없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노세리 박사는 중소기업주들의 혁신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노 박사는 "경영자의 혁신 의지와 여유 자원, 기술 또는 숙련 역량, 합리적 자원관리 시스템 등이 혁신의 요소"라며 "하지만 국내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혁신 의지는 그리 높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의 낮은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노오력' 보다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상생협력'과 중소기업의 신제품(신공정) 개발, 청년층 유입을 유도할 수 있는 '일터 혁신'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한 중소기업 전문가는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낮은 문제를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위탁기업과 수탁기업간,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 얽힌 문제인만큼 복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중소기업으로 갈수록 작업자(노동자) 차원에서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 여유가 크지 않다"며 "정부 차원에서 중소기업의 혁신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