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우리 언니 해 줄 거지?"… '우리집' 아이들의 정중한 이별

[노컷 인터뷰] '우리집' 윤가은 감독 ①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 과수원에서 '우리집' 윤가은 감독을 만났다. (사진=롯데시네마 아르떼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우리집'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0개. 2016년 개봉한 윤가은 감독의 첫 장편영화 '우리들'이 탄 상을 전부 합친 개수(포털 다음 영화 기준)다. 유수 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것을 제외한 숫자가 이 정도다. 개봉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았다는 윤 감독의 말이 겸손하게 들릴 만큼, 대단한 성과였다. 시작이 어마어마했던 덕에, 소포모어 징크스(첫 작품 성공 후 부진한 증상)에 관한 질문도 숱하게 받았다.

윤 감독 역시 다음 작품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담감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거기다 극장 개봉은 처음이었기에 모든 것이 새로웠다. 먼저 이 길을 간 선배들에게 두 번째 작품에 관한 조언을 구했다.

그들의 답은 비슷했다. 어서 차기작을 찍으라는 거였다. 한 작품과 다음 작품 사이가 길어지는 것을 염려했던 탓이다. 특히나 여성 감독들은 첫 번째 작품으로 주목받고도 투자 등의 문제로 다음 작품이 나오기까지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윤 감독은 시간이 덜 걸리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들' 개봉 3년 후 '우리집'으로 돌아온 과정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제목의 마지막 글자 하나만 다르기에 연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독립된 작품이다. '우리들' 속 등장인물이 잠깐 나오지만, 몰라도 영화 보는 덴 아무 문제가 없다. 물론 '우리들'을 봤다면 더 반갑게 '우리집'을 볼 수 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 과수원에서 '우리집' 윤가은 감독을 만났다. 오전부터 늦은 오후까지 연이은 인터뷰 일정 속에서도 윤 감독의 얼굴엔 생기가 흘렀다. 먼저 영화를 본 이들과 '우리집'을 가지고 감상을 나눌 수 있어서 좋다면서.

◇ '우리들'과 '우리집'은 동시에 기획된 작품이 "전혀 아니다"

원래 윤 감독이 '우리들' 끝나고 준비하던 작품은 제목도 달랐다. 내용을 발전시키면서 중간에 방향을 틀어 지금의 꼴이 갖춰졌다. '우리집'이란 제목도 그때 붙었다. 촬영을 앞두고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고쳤다. 혹시 시간이 더 필요할까 고민했으나 주변에서 '1년 반 썼으면 됐지'라고 입을 모았다. 시나리오를 다 쓰고 나서는 '내가 잘해야 해, 내가 잘해야 해'라는 생각뿐이었다.

윤 감독은 "소포모어(2번째)뿐 아니라 써드(3번째), 포스(4번째) 이렇게 새 작품 증후군은 계속 찾아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이번에 좀 들었다. ('우리집' 개봉) 당시는 이 과정을 제가 스스로 종합하고 정리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가이드가 없어서 괴로움이 컸다. 고민하고 질문도 많이 했던 기간이다"라고 설명했다.


윤가은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우리들'과 지난 22일 개봉한 영화 '우리집 '(사진=아토 제공)
'우리들' 이후 쉬는 기간을 길게 두지 않고 차기작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데에는 선배 감독들의 도움말이 큰 역할을 했다. 윤 감독은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도 (불안을) 떨칠 방법은 새 작품을 하는 거였다. 여러 편 찍은 선배 감독들이 그냥 다 '빨리 찍어'라고 하시더라"라며 웃었다.

윤 감독은 "언제 꼭 (다음 작품을) 들어가야지, 이런 마음은 전혀 없었다. 저는 되게 빨리 찍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빨리할 수 있는 이야기, 지금 꽂힌 이야기는 '아이들' 이야기였다. 그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나갔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 초등학교 5학년 하나와 더 어린 유미-유진 자매가 주인공이 된 이유

윤 감독은 '우리집'을 구상하면서 개봉판보다 더 '센'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소재를 다루면서, 공부 말고 다른 데 관심이 많은 오지랖 넓은 아이를 주인공으로 세우려 했다. 가족의 불화를 자기 힘으로 헤쳐나갈 순 없지만, 그래도 해결하고 싶어 하는.

"내 삶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일을 보고 못 지나치는 친구로 설정했어요. 자기한테 혹은 남한테 닥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주는 친구들이 있잖아요. 요즘 세상에선 '왜 이렇게 참견이야', '왜 간섭이야'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지만, (저는) 그런 눈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되게 귀한 시선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일종의 재능이라고 봤고요. 마음을 많이 쓰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하나(김나연 분)로 왔던 것 같아요."

하나의 시점으로 영화가 전개되지만, 유미(김시아 분)-유진(주예림 분) 자매도 '우리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윤 감독은 "원래는 한 명, 한 명 나와서 둘이 같이하는 이야기를 구상했다. 중간에 생각해 보니 너무 무겁더라. 둘 다 각자 집 문제를 자기 짐처럼 지고 가는 애들이라서 이 친구들의 무거움을 덜어줄 방법을 찾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문제를 가지고 다른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만나야 하는데, (둘의 이야기로 가면) 서로를 못 볼 것 같더라. 너무 짐이 무거워서"라며 "긴장을 덜어줄 존재가 필요했다. 관객들이 이 이야기를 좀 더 부드럽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자매가 필요했다"라고 부연했다.

'우리집'은 누구나 갖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숙제 같은 '가족'의 문제를 풀기 위해 어른들 대신 직접 나서는 동네 삼총사의 용기와 찬란한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사진=아토 제공)
친구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다뤘던 전작에서 조금 더 범위를 넓혀 '가족'을 다룬 이유에 관해서는 "저한테 되게 중요한 문제라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우리집'으로 '가족 얘기 다 했다!' 하는 생각은 전혀 아니다. '그래도 발은 뗐다, 시작은 해 봤다'는 데 의의가 있다.

"가족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고민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현재 진행형인 너무 많은 문제들, 사랑과 미움이 동시에 다 작용하는 나의 상태, 여러 가지 것들이 미스터리이고 수수께끼이기도 하고 계속 돌아가는 지점들… 나에 대해 고민할 때도 가족관계 안으로 들어가잖아요. 가족은 어떤 관계의 가장 기초고요. 그 안에서 어떻게 관계 맺음을 하는가, 어떤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는가, 그런 게 개인의 인생과 성장에 되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가족 이야기를 보는 것도 되게 좋아하고, 저도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많았어요."

◇ 꼭 '하나'로 뭉쳐야만 행복할까

하나는 요리하기를 좋아한다. 방학 숙제로 나만의 요리 노트를 정리하고, 가족에게 밥 차려주는 것도 즐긴다. 윤 감독은 집안을 다시 '하나'로 만들려는 하나의 노력이 은연중에 드러나길 바랐다. 여러 가지 집안일을 떠올렸다. 청소, 빨래도 후보에 있었으나 본인의 취향과 취미가 반영된 결과이자 보기에 '예쁜 것'으로는 요리가 가장 적절했다.

윤 감독은 "이건 제 경험이기도 한데 가족들이 서로 불화할 때 특히 부모님 사이 안 좋을 때 식사를 같이 안 하는 것 같다.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건 되게 큰 결핍을 만드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하나는 눈칫밥 12년으로 알 만큼 아는 나이다. 가족을 다시 하나로 모으고 싶은 걸 '밥 먹자'라고 자기식으로 돌려 말한다. 그러다 보니 요리하는 설정이 더 적극적으로 들어갔다. 저는 요리에 큰 관심이 없는데,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을 때 목이 멘다고 하더라. 정말 순수하고 아주 원초적인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지난 7일 열린 '우리집' 언론 시사회에서 배우들이 집 모양을 만들고 있다. 왼쪽부터 안지호, 주예림, 김시아, 김나연 (사진=롯데시네마 아르떼 제공)
하지만 영화는 '하나 가족의 화합'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이런 마무리를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냐는 질문에 윤 감독은 "그건 처음부터 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저도 실제로 그런 가정 분위기에서 자랐다. 초기 가족 형태를 쭉 유지하고 사는 집도 있지만 요즘 세상엔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가족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가족) 유지에 공력을 쏟는다, 어른도 아이도. (뭐든) 형태가 변하는 게 당연한 거 같고, 그걸 잘 통과할 수 있으면 사람이 굉장히 건강해지고 유연해지는 순간으로 도약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가족의 불화는 아이들 선에서 애쓴다고 해서 해결될 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윤 감독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해체'가 오히려 정확한 정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윤 감독은 "엔딩 고민할 때 '하나가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다시 (가족이) 결합하면 행복해질까?' 했다. (지금의 결말은) 처음부터 생각했던 것 같다"라고 부연했다.

타지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부모를 둔 덕에 밥 먹듯이 이사해야 하는 유미-유진 자매의 고민도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나와 같은 동네에 살던 두 아이는 떠나야 한다. 하나-유미-유진의 작별은 필연적이다. 그렇다고 셋의 관계까지 끊어지는 건 아니다. "언니는 계속 우리 언니 해 줄 거지?"라는 말로 짐작할 수 있다.

"외박을, 심지어 아이들끼리 하는 건 되게 충격적인 경험이죠. 싸우고 나서 (그 감정이) 눈 녹듯이 노는 건 아니고 아이들만의 모멘텀을 보내고 와서도, 아이들이 처한 현실은 '이별'이에요. 각자의 집안 문제로 돌아가는 거죠. 유미-유진은 이사 가는 걸 받아들여야 하고 하나는 우리 집이 헤어질 거라는 걸 알죠. 그랬을 때, 유미는 고된 여름 방학을 같이 보내준 이 언니라면 (잠깐) 헤어지더라도 영원히 나의 언니를 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인 거예요. 적어도 처음 표현해 보는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같이 지내고 나서) 그런 질문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 것 같아요. 그 질문을 듣는 하나도, '아, 헤어지더라도 나는 너희들의 언니를 할 수 있는 거였구나' 깨닫고요. 그렇게 부탁해주는 것 자체가 너무 고마운 순간을 만들어내죠. 동네와 이별하고 가족들하고 이별해야 할 때 이게 힘이 되어줄 것 같았어요. 그 아이들끼리 이별의 시간을 제대로, 정확하게, 정중하게, 정성스럽게 표현하는 게 저한테 되게 중요했어요." <계속>

'우리집' 윤가은 감독 (사진=롯데시네마 아르떼 제공)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