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하고 열정적인, 그리고 논쟁적인 다큐영화 '그루밍'

제16회 EBS국제다큐영화제 '동물을 만나다' 부문 출품작
다큐멘터리 영화 '그루밍(Well Groomed)'(레베카 스턴·미국·2019년·88분·Color)
창조적인 '그루밍'의 세계를 솔직하게 들여다본 다큐멘터리
논쟁적이면서도 동시에 도전, 성장, 그리고 열정에 대한 이야기
'창조적 그루밍'에 대한 공론의 장 열 다큐멘터리 영화

제16회 EBS국제다큐영화제 '동물을 만나다' 부문 출품작인 영화 '그루밍(Well Groomed)' (사진=EBS 제공)
초반에는 낯선 광경과 다소 그로테스크해 보이는 모습에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새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에, 그들의 도전과 좌절, 성장과 열정을 바라보며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알게 모르게 긴장까지 높아지며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영화는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동시에 논쟁적 주제에 대한 공론의 장 또한 제공하는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 바로 영화 '그루밍'이다.

제16회 EBS국제다큐영화제(이하 'EIDF2019') '동물을 만나다' 부문 출품작인 '그루밍(Well Groomed)'(레베카 스턴·미국·2019년·88분·Color)은 미국에서 가장 다채로운 행사 중 하나인 애완견 미용 대회와 대회에 참가한 예술가들의 감성과 상상력을 포착한 영화다.


영화는 1년간 이 총천연색 대회를 순회하고 있는 네 명의 챔피언들과 그들의 멋지고 생기 넘치는 강아지들을 따라 창의적 과정을 탐구하며, 자주 다뤄지지 않았던 미국의 한 모습을 활기차게 담아냈다.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구름아래소극장에서 '그루밍' 상영이 끝난 후 EIDF2019 '내 강아지의 취향'이라는 주제로 관객과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 이벤트 시간이 마련됐다. 정민아 영화 평론가의 진행으로 이뤄진 이번 토크는 '그루밍'의 저스틴 레비 프로듀서와 김도형 수의사가 참석해 영화와 개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구름아래소극장에서 '그루밍' 상영이 끝난 후 EIDF2019 '내 강아지의 취향'이라는 주제로 정민아 영화 평론가(사진 왼쪽), '그루밍'의 저스틴 레비 프로듀서(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와 김도형 수의사(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참석해 영화와 개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최영주 기자)
◇ 낯설고도 기묘한 애견 아트 미용의 세계 '창조적 그루밍'

우리에게는 비교적 낯선 문화인 '창조적인 그루밍'이라 불리는 '아트 미용'이라는 애견 문화를 영화의 주제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그루밍'의 저스틴 레비 프로듀서는 "일단 레베카 스턴 감독이 개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데 뉴욕시로 이사 가면서, 뉴욕시의 까다로운 규정 때문에 기르던 반려견을 데리고 가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개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결심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레비 프로듀서는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심각하고 무거운 내용이 많은데, 스턴 감독은 이번에는 좀 더 가벼운 내용을 다루고자 '개'라는 주제를 선정하게 됐다"라며 "뉴욕에는 개를 위한 디자이너 옷, 개를 위한 패션쇼, 개를 위한 홍보대행사 등 개와 관련한 특이한 문화가 많다. 이러한 것들을 조사하던 중 '창조적인 그루밍'에 대해 알게 됐다. 재밌고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영화화하기 좋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더 알고 싶다는 궁금증을 유발해서 작업을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영화에서 창조적 그루밍의 대상이 되는 것은 주로 흰색의 스탠다드 푸들이다. 스탠다드 푸들이 많은 이유에 대해 레비 프로듀서는 "푸들이라는 종의 성격이 있다. 다른 종의 개들은 이렇게 얌전하거나 혹은 사람들의 관심을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훈련하기 힘들다. 가만히 앉지 못하는 종이 많다"라며 "그러나 푸들은 얌전하고 훈련도 잘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좋아한다. 그래서 아무래도 푸들을 선호한다"라고 설명했다.

스페셜 토크에 참석한 김도형 수의사는 "푸들 자체가 지능이 뛰어나고 훈련도 잘된다. 또한 사람들과 교감하는 데 있어서 그 어떤 종보다도 푸들이 뛰어나다"라며 "영화를 보면서도 느낀 게, 마지막에 등장인물인 에이드리언 포프가 그랑프리상을 받을 때 푸들도 같이 좋아한다. 그리고 염색하는 과정 등에서 힘들다든지 하는 내색 없어 보호자와 아주 즐겁게 하는 걸 봤다"라고 말했다.

제16회 EBS국제다큐영화제 '동물을 만나다' 부문 출품작인 영화 '그루밍(Well Groomed)' (사진=EBS 제공)
◇ 낯선 문화로 시작해 여성의 열정과 성장을 그려내는 '그루밍'

영화 속 창조적 그루밍의 대상이 된 강아지들의 모습을 보며 동물학대 등의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창조적 그루밍이 활성화된 미국, 그리고 유럽 등지에서도 부정적인 목소리가 있다. 영화를 보면 스탠다드 푸들의 털에 온갖 색깔의 염색약을 물들이고, 미용을 통해 다양한 모양을 꾸며내는 모습이 나온다.

현재 애견미용사로 일하고 있다는 한 관객은 "우리나라에서 보통 강아지 염색에 대한 시선이 안 좋다. 강아지 학대라는 이야기도 있고, 영화에서도 강아지의 선택이 아닌데 사람의 선택에 의해 강아지에게 억지로 행하는 거라는 말을 봤다"라며 "실제로 푸들이라는 견종은 특히나 감정을 조금 더 잘 느끼고 잘 표현하는 개다. 푸들 캐릭터 자체가 도도하고 우쭐해 한다. 견주와 본인의 감정 교감은 물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자기가 사랑받는 개고, 멋있는 개라는 생각을 느낀다"라고 설명했다.

레비 프로듀서는 "제가 촬영할 때는 개들이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모두 행복해 보였다. 개들을 오랫동안 잡아놓지 않는다. 그루밍 과정이 총 20시간 걸린다면, 며칠 동안 나눠서 한다. 그래서 개들이 고생하는 걸 촬영하면서 보지 않았다"라며 "그리고 푸들들은 관심받는 걸 좋아하는 거 같다. 그루밍 과정 자체가 푸들에게 관심을 주는 과정이기에 개들도 좋아하는 거 같다"라고 말했다.

제16회 EBS국제다큐영화제 '동물을 만나다' 부문 출품작인 영화 '그루밍(Well Groomed)' (사진=EBS 제공)
영화 초반에는 낯설고 기괴한 광경에 개들이 꼬리를 흔들며 좋아하는 모습보다, '낯선 문화', 처음 보는 광경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질 수 있다.

스탠다드 푸들을 도화지 삼아 알록달록 색을 입히고, 그들의 털을 이용해 문양 혹은 캐릭터 등을 미용으로 새겨 넣는다. 어떤 개는 닭의 모습이 되기도 하고, 어떤 개는 공룡이 된다. 어떤 개의 몸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모자 장수의 얼굴이 새겨지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아트'라기 보다 우스꽝스럽고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영화는 창조적 그루밍의 모습을 때로는 슬로모션을 이용해 보여주며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을 정말 '예술'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러나 낯섦에 대한 거부감은 어느덧 애견미용사들이 보이는 열정에 빠져드는 상태로 변하게 된다. 기괴하다 할 수 있는 창조적 그루밍을 보며 어느 샌가 긴장감을 느끼게 되고, 마지막 그루밍계 슈퍼볼(NFC 우승 팀과 AFC 우승 팀이 맞붙는 NFL의 챔피언십으로 미국에서만 약 1억 1000만 명이 중계를 시청하는 미국에서 가장 큰 스포츠 행사)라 불리는 세계 최대 그루밍쇼 '허시'에서의 창조적 그루밍 대전 결과를 발표하는 장면에서는 응축된 감정이 폭발하는 듯한 느낌까지 받는다.

영화가 네 명의 애견미용사가 창조적 그루밍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 창조적 그루밍 대회를 앞둔 그들의 긴장감 등을 각자의 삶과 이야기를 따라가며 진솔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창조적 그루밍이라는 주제가 이 영화의 큰 줄기지만, 그 줄기 위에서 네 여성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도전과 열정을 그려낸다. 또한 영화에서는 단순히 성공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패의 단면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누군가가 최대 그루밍 대회에서 우승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영화처럼 드라마틱하다. 한편에서는 대회에 참가조차 못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조명한다. 그러나 그건 실패라기 보다 하나의 '과정'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누군가의 '삶'을 그려낸다. 그게 '그루밍'이 갖는 또 다른 매력이다.

레비 프로듀서는 "창조적인 그루밍을 하는 분들은 거의 다 여성이라고 보면 된다. 보통 그루밍도 대부분이 여성이다. 저와 저희 감독님도 이 사안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도무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라며 "대부분 여성이라는 게, 여성 감독인 스턴 감독에게 더 큰 끌림이었다. 다 여성이고, 강인한 여성이다. 그래서 괜찮은 영화가 될 거 같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 '창조적 그루밍' 둘러싼 다양한 논쟁의 장 만드는 '그루밍'

물론 창조적 그루밍을 두고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으로도 유명한 미국 HBO를 통해 북미 지역에 '그루밍'이 방영될 예정이다.

레비 프로듀서는 "방영 후 논쟁을 예상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 전체에서 항상 논쟁이 있었다"라며 "동물에게 염색하면 해가 된다는 선입견을 가진 분들이 많았고, 이것을 표현하는 분들도 많았다. 아무래도 영화가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개된 후에는 더 큰 논쟁을 예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논쟁이라는 것은 다큐멘터리가 가진 힘이기도 하다. 현실의 한 부분을 담아내고, 이를 통해 어떤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각자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이는 현실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는 공론의 장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그루밍'이 낳게 될 논쟁의 장 역시 기대되는 지점 중 하나다. 그렇기에 이번 'EIDF2019'에 어울리는 영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제16회 EBS국제다큐영화제 '동물을 만나다' 부문 출품작인 영화 '그루밍(Well Groomed)' (사진=E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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