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에서 神으로 불리는 韓 사나이

日 배드민턴 역사 새로 쓰고 있는 전설 박주봉 인터뷰

'한국의 힘, 보여줄게요' 박주봉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이 26일(한국 시각) 2019 세계개인선수권대회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둔 뒤 인터뷰를 마치고 내년 도쿄올림픽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바젤=노컷뉴스)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두 나라의 갈등이 첨예한 요즘이다. 일본이 28일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우대국(백색국가· 화이트리스트) 제외하는 조치를 시행하면서 경색 국면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이런 정치적 갈등이 영향이 두 나라 스포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프로농구와 배구 구단은 수년 동안 시행해온 일본 전지훈련을 취소했고, 컬링 등에서는 일본 국제대회 출전과 국내 대회 일본팀 초청도 무산됐다. 내년 도쿄올림픽도 보이콧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이런 가운데 일본 스포츠에서 신(神)으로 불리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 바로 배드민턴 전설 박주봉 일본 대표팀 감독(55)이다. 최근 미묘한 한일 관계 속에서도 박 감독은 당당히 실력으로 연일 일본 스포츠 역사를 새로 써나가고 있다. 박 감독을 2019 세계배드민턴선수권대회(개인전)가 열린 스위스 바젤 현지에서 만났다.

▲ '전설의 공백' 日에게는 천우신조

일본 대표팀은 26일(한국 시각) 마무리된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2개, 은 3개, 동메달 1개를 수확해냈다. 남자 단식 모모타 겐타와 여자 복식 마쓰모토 마유-나가하라 와카나가 우승을 차지했다. 일본의 이 대회 역대 최고 성적이다. 지난해 중국 난징 대회에서도 박 감독의 일본은 금과 은, 동메달 2개씩을 따냈는데 역시 당시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내년 도쿄올림픽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현지에서 만난 일본 TBS 오쓰카 마이 기자는 "일본 기자들은 남자 단식과 여자 복식에서 금메달 2개를 포함해 5~6개의 메달을 딸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일본 배드민턴의 역사는 박주봉 감독 부임 전과 후로 나뉜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92년 바르셀로나부터 2004년 아테네 대회까지 일본은 노 메달이었다. 아테네 대회 이후 박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 4년 뒤 베이징 대회에서 4위로 가능성을 확인한 이후 2012년 런던 대회에서 사상 첫 메달(여복 은메달)을 따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사상 첫 금메달(여복)과 함께 동메달(여자 단식)로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을 이끄는 박주봉 감독이 18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우센트로 파빌리온4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복식 결승전에서 일본에 마쓰토모 미사키-다카하시 아야카가 덴마크에 크리스티나 페데르센-카밀라 리터 율을 상대로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박 감독은 일본 여자 배드민턴 대표팀을 세계 최정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종민기자
박 감독은 "일본이 나보다 선배 시절에는 매우 강했다"고 돌아봤다. 박 감독의 스승인 양경석 대한배드민턴협회 부회장은 "그때는 일본에 질 게 뻔하니까 아예 아시아선수권 등 국제대회에 대표팀을 파견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러던 일본은 1980년대를 전후해 들어 약체가 됐다. 박 감독은 "올림픽에 나가도 8강에 들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한 마디로 참가에 의의를 두던 일본 배드민턴이었다"고 했다.

그런 일본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이후 박주봉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1992년 올림픽 남자 복식 챔피언으로 선수 시절 국제 대회 우승 72회라는 초유의 기록으로 기네스북에도 오른 박 감독을 구세주로 택한 것.

당시 상황에 대해 박 감독은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 계약이 끝난 상황이었다"면서 "당시 한국은 아테네올림픽에서 성적이 좋아 코치진에도 자리가 없어 일본의 제의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돌아봤다. 2004년 대회에서 한국은 남자 복식 금(김동문-하태권), 은메달(이동수-유용성)과 단식 은메달(손승모), 여자 복식 동메달(나경민-이경원)을 따냈다. 성적이 급했던 일본과 때마침 소속이 없었던 박 감독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졌고, 이는 '신의 한 수'가 됐다.

▲日 선수들, 강훈련에 불만…지금은 "배드민턴 神"

이런 어마어마한 성과가 나오기까지 과정이 녹록치는 않았다. 선수들이 젖어 있던 패배 의식을 떨쳐내야 했고, 엄청난 훈련 강도에 대한 불평과 불만도 이겨내야 했다. 2004년 부임 뒤 3년 정도 마음고생이 심한 때가 있었다.

박 감독은 "국제대회에서 지고 왔는데 버스에서 남자 선수들이 희희덕거리고 있더라"면서 "화가 나서 '경기 끝난 지 얼마나 됐냐'고 다그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여자 선수들 응원하러 여기 왔느냐고 자존심도 긁었다"고 덧붙였다.

선수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현지에서 만난 닛칸스포츠 마쓰쿠마 요스케 기자는 "박 감독이 처음 부임했을 당시는 엄격한 훈련에 선수들이 불만을 나타냈다"고 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은 실업팀이 위주로 대표팀은 그저 가서 뛰어주는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면서 "당연히 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선수 소속팀의 간섭도 심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박주봉이라는 이름을 믿고 차츰 선수들이 따라왔다. 특히 전설임에도 선수들과 항상 함께 훈련하며 땀을 흘리는 박 감독에 대한 존경심이 깊어졌다. TBS 오쓰카 기자는 "박 감독은 훈련이든 식사 시간이든 선수단과 함께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면서 "나보다 선수단 전체를 우선하며 솔선수범하기에 선수들이 박 감독을 따른 것"이라고 짚었다.

'배드민턴 신, 감사합니다'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 박주봉 감독(오른쪽)이 2019 세계개인선수권대회 남자 단식 2연패를 달성한 모모타 겐토와 기념촬영을 한 모습.(바젤=박주봉 감독)
점점 땀을 흘린 결과가 나오면서 선수들의 신뢰도 높아졌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일본 여자 복식은 당시 8강전에서 야심차게 우승을 노리던 중국을 꺾었다. 박 감독은 "당시 일본 중계 최고 시청률이 나왔다"면서 "남녀 복식 8강에 남녀 단식 16강까지 일취월장한 성적에 일본올림픽위원회가 놀랐다"며 흐뭇한 표정으로 회상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남자 대표팀은 2014년 토머스컵(남자 단체선수권) 정상에도 올랐다. 박 감독은 "현역 시절 딱 하나 우승하지 못했던 대회였는데 지도자로서 한을 풀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런던에서 올림픽 사상 첫 메달과 리우에서 사상 첫 금메달까지 수확한 박 감독에게 일본 언론은 '가미사마(神樣)'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부여했다. 배드민턴의 신이라는 것이다.

닛칸스포츠 마쓰쿠마 기자는 "성과가 계속 나면서 선수들도 박 감독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게 됐다"면서 "박 감독 덕분에 일본 배드민턴이 강해졌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일본 매체들은 이번 대회 취재를 위해 50~60명의 취재진을 파견했다. 박 감독은 "4월 대표팀 출정식 때는 취재진이 100명이 넘는다"고 귀띔했다. 본인이 말하듯 선수 시절에 이어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日 정부 전폭 지원 도움…내년 韓과 정면 승부"

이런 성과에 대해 박 감독은 "운이 좋았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탄탄한 배드민턴 저변이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결과라는 것이다.

박 감독은 "일본 체육계가 베이징부터 런던 대회까지 한국에 성적이 뒤지면서 충격을 받았던 상황"이라면서 "이전까지 생활 체육 위주였다면 그때부터 엘리트 체육을 집중 육성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일단 2007년 최신 설비의 선수촌이 개촌돼 훈련 여건이 마련됐다. 2년 전에는 제 2 선수촌까지 건립됐다.

대표팀 시스템도 확실하게 갖춰졌다. 박 감독은 "이전까지는 대표팀 코치진도 실업팀에서 파견돼 일당을 받는 식이라 훈련에 열정적이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전담 코치제가 정착되면서 훈련도 제대로 이뤄지게 됐다"고 했다. 현재 일본 배드민턴은 국가대표 60명이 A, B팀으로 나뉘어 있는데 총 10명의 전담 코치가 맡고 박 감독이 이를 총괄한다.

여기에 2020년 도쿄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정부의 지원도 늘었다. 박 감독은 "베이징 이후 일본 정부에서 13개 전략 종목을 정했다"면서 "지도자들의 월급은 정부에서 직접 나온다"고 말했다.(다만 박 감독은 상당한 수준의 연봉 외에 우승 보너스가 있는데 월급보다 많다고 귀띔했다. 이외 박 감독은 굴지의 용품업체와 개인 계약까지 맺고 있다.)

'세계 정상을 이끄는 한국 출신 지도자들' 박주봉 일본 대표팀 감독(왼쪽)이 2019 세계개인선수권대회를 마치고 김지현 인도 대표팀 코치와 포즈를 취했다. 김 코치는 여자 단식 푸살라 벤카타 신두의 우승을 이끌었다.(바젤=노컷뉴스)
최근 '엘리트 스포츠 축소'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 체육계의 상황과 대비를 이룬다.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는 최근 대한체육회와 올림픽위원회(KOC) 분리를 골자로 하는 권고안을 냈는데 체육회 노동조합과 경기단체연합회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박 감독은 "사실 일본도 올림픽이 있기 때문이지만 엘리트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성적이 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 쪽 상황은 자세히는 모른다"고 전제하면서도 "다만 엘리트와 생활 체육이 통합되면서 집중력이 분산되는 것 같다는 얘기는 들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단 엘리트 체육은 넓은 생활 체육의 저변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조건도 있다. 박 감독은 "남자 단식 1위 모모타 등 현재 대표팀 주축들은 생활 체육의 기반 속에서 나왔다"면서 "그런 인재가 구축된 대표팀 시스템에 의해 잘 만들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계선수권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올린 박 감독은 이제 내년 도쿄올림픽을 정조준하고 있다. 고국인 한국과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대결도 기다린다. 박 감독은 "한일 관계가 걱정이 되지만 선수들이나 나는 느끼지 못하고 올림픽까지 1년이면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면서 "여자 복식 등에서 한국과 치열하게 맞붙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리우보다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고 다부진 각오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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