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고려대와 서울대에서는 1천여 명의 학생들이 촛불을 들었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공정'에 대한 갈망으로 귀결됐다.
특히 '공정'을 제1의 기치로 내건 현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이 '입시 특혜', '장학금 수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현 정부에 대한 충격과 배신감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이날 서울대 집회에 참석해 '조국 아웃'을 외친 서울대 공과대학원생 윤모(26) 씨는 "현 정부에서 꾸준하게 제시해왔던 프레임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다는 것"이라며 "여당에서 이야기하는 게 기회는 보편적이라는 건데, 이 자체가 '기회의 평등'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냐"고 말했다.
학생들은 집회가 정치적인 움직임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윤씨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라며 "이번 문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이고, 연구자로서 자존심을 짓밟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도 이 지점에 공감해 시위에 나왔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회의 공정함을 더 확고히 하자는 취지에서 시위에 참여했다"며 "묻혀있는 일들이 많은 것 같은데 한 번씩 수면 위로 나왔을 때 행동해야 재발하지 않고,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김남헌(24) 학생은 "이전 정권 탄핵 때만큼,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실망감은 더 하다"며 "평소에 평등을 외치고, 입시에 있어서도 그렇게 외쳤던 사람이 20대가 민감해할 수 있는 부분을 다 건드리는 것 같아 허탈하다"고 말했다.
또 "입시 경쟁이 심한 이유가 대학 타이틀이 중요하기 때문인데,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면 '금수저'가 유리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면서 "현재 정치인들은 장기적으로 국익과 다음 세대를 위해 뭔가를 돌려주려는 움직임은 못 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미대 졸업생 신모(30)씨는 가정 형편으로 어렵게 학교생활을 했던 것을 떠올리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다닐 떄 돈이 없어서 컵라면만 먹고, 월세를 못 낼까봐 친구들 만나서도 배 아프다고 밥을 안 먹은 적도 있었다"며 "누군가는 자기 실력에 대비해 정당하지 않은 결과물만 얻어 힘들게 노력한 사람들이 분노한 것 같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논문 1저자를 고등학생이 가져간 부분은 특권세습뿐만 아니라 학계 생태계를 죽이는 방식"이라며 "향후 학계에 대한 신뢰 자체를 잃게 돼 굉장히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입시 제도의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컸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공정해야 한다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이날 모인 학생들이 조국의 사퇴가 아닌, 학교 입학처의 진상 규명을 우선적으로 촉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대 컴퓨터학과 16학번 김모(23) 학생은 "현실판 '스카이캐슬'을 보는 것 같아 어이없고 실망했다"며 "다른 건 몰라도 입시 비리만큼은 정확하게 파헤쳐서 입시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집회 참여 이유를 밝혔다.
또한, "입시 제도를 손 봐서 계층 이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라도 줘야 한다"며 "기득권 세력의 '입시 특혜' 의혹을 전방위적으로 검사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고대 경영학과 김남헌(24) 학생은 "계속 이렇게 가면 계층 이동 등은 불가능할 것 같다"며 "입시 제도도 시험으로 뽑는 게 더 공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수시 전형 확대, 사법고시 폐지 등 기득권층에 유리한 입시제도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자기소개서 허위 기술 및 장학금 부정 수령 등 각종 의혹에 대한 학교측 진상조사를 촉구한 고려대와 서울대 학생들은 추후 상황을 지켜본 뒤 집회 개최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