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등 일본발(發) 악재가 덮치자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핵심소재인 '분리막'을 국내 경쟁업체에도 공급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협력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업계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 로펌 정비한 LG화학, 맞소송 나선 SK이노
23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최근, SK이노베이션과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비해 대표 법률대리인을 변경했다.
LG화학은 대표 법률대리인을 기존 '덴튼스 US'에서 '레이섬&왓킨스'로 교체했다. 레이섬&왓킨스는 글로벌 2위 규모로 미국계 로펌이다.
앞서 올해 4월,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자신들의 핵심 인력과 배터리 기술을 탈취했다"며 ITC와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냈다.
구체적으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전지 사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2017년을 기점으로 2차전지 관련 핵심기술이 다량 유출된 구체적인 자료가 발견됐다"며 "2017년부터 불과 2년 만에 LG화학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과 생산, 품질관리, 구매 등 전 분야에서 76명의 핵심인력을 빼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주장에 대해 시종일관 "근거 없는 발목 잡기"라고 반박했다. 보도자료 선에서 대응하던 SK이노베이션도 지난 6월을 기점으로 법적 대응으로 돌아섰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6월 10일, 서울중앙지법에 LG화학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채무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을 내며 처음으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결국 두 회사의 기술 유출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번진 상황에서 LG화학의 이번 대표 법률대리인 교체도 법리 다툼에 힘을 싣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ITC는 LG화학의 제소가 이뤄진 직후인 지난 5월 29일 조사개시를 결정했고 현재 증거 수집을 위한 '디스커버리' 절차가 진행 중이다. LG화학 관계자는 "ITC도 디스커버리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전력 보강 차원의 대표 로펌 교체"라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은 국내 맞소송에 이어 미국 현지에서도 맞소송을 준비 중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대일본 제재 이슈로 시기를 조율 중이지만 이미 미국 현지 맞소송 준비도 모두 끝났다"며 "법적 절차를 통해서 사실을 밝힐 내용"이라고 밝혔다.
◇ 일본 악재, 글로벌 경쟁 속 '국내 협력' 어려울 듯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전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 환경도 좋지 않다.
글로벌 배터리 업체 간 수주 다툼 등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 일본발 악재도 닥쳤다. 일본 정부의 일방적인 백색국가 제외 조치로 배터리 업계의 부담이 한층 늘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배터리 핵심소재 중 하나인 분리막을 생산하는 SK이노베이션이 "분리막을 국내 경쟁업체에 공급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말하면서 LG화학 등 국내 업체 간의 협력 이야기도 새어 나왔다.
분리막은 양극재와 음극재를 분리해 이온만 통과시키는 소재로 일본 도레이, 아사히카세이 등이 글로벌 점유율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선 SK이노베이션이 이들과 경쟁 중이다.
다만 업계는 국내 업체 간의 협력은 실현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이달 28일 시행되는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 영향이 국내 배터리 업계까지 미친다고 하더라도 LG화학이 일본 도레이의 분리막을 공급받지 못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란 분석이다.
일본 도레이 등이 '자율준수무역거래자(ICP기업)' 인증을 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이미 수출 심사 간소화 혜택을 받고 있고 또 한국 구미공장에서도 분리막을 생산하고 있어 거래가 끊길 가능성이 낮다.
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협력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조사개시를 결정한 ITC는 디스커버리 절차를 밟고 있다. ITC의 판결은 이르면 내년 6~7월 중 예비 판결을 거쳐 연말쯤 최종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