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잔칫날이었다.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은 '축 탄핵' '진짜 봄이다' '촛불이 어둠을 이겼다' 등 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직접 쓴 글귀를 담은 화환으로 둘러싸였다. 신명나는 풍물패 가락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전 드시고 가세요"라고 외치며 전을 부치는 시민들도 눈길을 끌었다.
이날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무대에 이용마 기자가 섰다. 지난 2012년 공정방송 사수를 위해 170일간 이어진 MBC 파업을 이끌다 해직된 그는 복막암으로 투병 중이었다. 당시 사측인 MBC를 상대로 벌인 해고무효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했지만 그는 여전히 해직 상태였다. 역사의 물길을 바꾼 시민들 앞에 선 그의 야윈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마이크를 손에 쥔 이 기자는 "촛불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오늘 '안녕'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괜찮은 날이죠?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라며 말을 이었다.
"무려 열아홉 차례, 넉 달 반이고요. 연인원 1600만 명이 이곳에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겨우 박근혜 한 사람, 대통령직에서 파면시켰습니다. 어찌 됐든 기쁘시죠? 그런데 이 얘기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박근혜가 물러난 것은 물러난 것이고, 이제 새로 시작했을 뿐이다' '새로운 시작이다' '그동안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쌓였던 온갖 사회적 적폐들을 이제 새롭게 청산해야 할 시기'라는 얘기 많이 들으셨죠."
그는 "검찰과 언론이 바로 서야 대한민국이 바로 섭니다"라며 "검찰과 공영언론은 누구의 것입니까. 국민의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바로 여러분이 주인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주인들이 주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검찰의 인사권, 공영언론사 사장의 인사권을 누구에게 맡겼습니까. 대통령과 일부 정치인들에게 맡겼습니다. 그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시죠. 대통령과 일부 정치인들의 눈치를 보면서 검찰과 언론이 그 비위 맞추기에만 급급했습니다. 인사권을 잘못 맡기는 바람에 검찰과 언론이 자기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엉뚱한 사람들의 충견 노릇을 한 것입니다."
이 기자는 "이 자리에서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언론과 검찰의 인사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합니다"라며 "우리가 민주주의 제도를 좀 더 확대해서 공영언론사 사장을 뽑든지, 검찰총장을 뽑든지, 경찰청장을 뽑든지 바로 그런 과정 과정마다 국민들이 아래로부터 감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 그럼으로써 국민들이 아래로부터 권력기관을 철저하게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바로 이게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가 나아가는 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라고 역설했다.
이어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려줘라.' 저는 하나를 추가하고 싶습니다. 국민의 것은 국민에게 돌려줘라"라고 덧붙였다.
◇ "기득권자 관점서 쓸 것이냐, 다수 사회적 약자 입장서 쓸 것이냐…이제 정해야"
이용마 기자가 투병 끝에 21일 별세했다. 향년 50세.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23일이다. 고인은 공영방송 수호의 상징이었다. 해직 5년 9개월 만인 2017년 12월 8일 MBC에 복직한 그는 출근길에서 눈물을 보였다.
"해고가 된 그날부터… 단 한 번도… (눈물) 다시 할게요…. 울지 않으려고 그렇게 다짐을 했는데…. 해고가 된 그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오늘이 올 거라고 의심한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정당한 싸움을 했고… 정의를 위한 싸움을 해 왔기 때문에 반드시 오늘이 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지난 2월 24일 방송된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 J'에 출연해 해직 당시를 회상하며 "분노하고 분개했다기 보다 오히려 담담했다. 쉽게 끝날 싸움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길게 갈 싸움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고 말했다.
'당시 파업 전면에 나서는 일을 외면하지 않은 지점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는 "그런 질문을 많이 하는데 특별히 없다"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고 지금까지 살아 온 방식이다. 그 당시 (MBC) 노조에서는 홍보국장으로 내려오라는 제안을 여러 사람한테 했다. 그런데 내려가면 파업이 불가피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홍보국장이 1순위로 해고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 거절했다. 결국 가장 강성으로 분류되던 나한테까지 제의가 왔다. 그래서 결국 내려갔는데, 이미 그때는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만약 내가 그때 (파업에 동참) 안 했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무엇 하나 제대로 못 했을 것이다.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고 부연했다.
이날 이 기자는 "그동안 기자 생활을 20년 넘게 했고, 현장에서 대한민국 사회를 많이 지켜봤다. 그러면서 느낀 결론 중 하나가 지금 대한민국은 엘리트의 폐해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예를 들어 기자 생활을 하면서 경제부처 관료들, 혹은 검찰이나 법무부에 있는 검사들, 외교 공무원들, 이런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얘기해 보면 다 똑똑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들이 자기 조직 논리에서 한치도 못 벗어난다. 엘리트들 생각과 대중의 생각은 굉장히 거리가 멀다. 대한민국 국민의 민도는 굉장히 수준이 높아졌다. 그런데 엘리트들은 국민의 민도를 제대로 못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언론인들에게 "마음껏 나래를 펼쳐라. 자기들이 원하는 것 얼마든지 찾아서 해라. 다만 시각을 분명히 하자"며 "누구의 관점에서 쓸 것이냐다. 기득권자들의 관점에서 쓸 것이냐, 아니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 입장에서 기사를 쓸 것이냐를 이제 정해야 한다. 그것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아마 '기레기'라는 소리기 계속 나올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