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리뷰] 지소미아 '조건부 유지'도 日 압박카드

(사진=연합뉴스)
■ 방송 : CBS 라디오 <김덕기의 아침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00~07:30)
■ 진행 : 김덕기 앵커
■ 대담 : 홍제표 기자

◆ 김덕기 >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살펴보는 <한반도 리뷰> 시간입니다. 홍제표 기자, 오늘은 어떤 주제를 갖고 나왔나요?

◇ 홍제표 >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여부에 대한 통보시한(24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선택지는 크게 4개입니다. 폐기, 연장, 조건부 폐기 또는 연장입니다. 제가 2주 전 방송에서도 지소미아 문제를 다룬 적이 있는데 플랜B, 즉 '조건부 연장' 카드를 주문했습니다. 그 이후 시간이 흘러 사흘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선 더 현실적인 방안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 합니다.

◆ 김덕기 > 우선, '파기'와 '폐기'라는 표현이 함께 쓰여서 좀 혼돈스러운데 어떤 게 맞는 건가요?

◇ 홍제표 > 저도 2주 전 방송에선 '파기'라고 표현했는데 '폐기'가 맞습니다. 파기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뜨려 무효로 만드는 것인 반면 폐기는 온당한 절차에 따라 무효화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소미아는 1년 단위로 연장 여부를 묻기 때문에 연장을 거부하면 자동 폐기됩니다. 따라서 부당하게 약속을 깨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는 '파기'는 부적절한 표현입니다.

◆ 김덕기 > 일단, 정부는 폐기•연장 여부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 입장이죠?

◇ 홍제표 > 네, 청와대는 어제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결정될 사항"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습니다. 오늘 중국 베이징에서 한중일 외교장관회담에 참석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어제 출국하면서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태도는 NCND로 최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띠어야 일본, 그리고 미국에도 압박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진행 경과를 놓고 보면, 지소미아가 압박 카드로서 유용했는지 의문입니다. 일본의 의미 있는 태도 변화가 없었고, 미국도 이렇다 할 관여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있기 때문입니다.

◆ 김덕기 > 지소미아 카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얘기인데 그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 홍제표 > 우선, 지소미아 폐기에 너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오히려 자승자박한 측면이 있습니다. 지소미아 폐기 검토는 어디까지나 한일관계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미국을 지나치게 결부시켰습니다. 미국 눈치를 너무 본 것이죠. 그렇다보니 지소미아 폐기가 한미동맹 약화로 이어질 것이란 프레임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보수 야당•언론의 '공포 마케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셈이죠.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의 말을 들어보시죠.


"지소미아 파기는 일본보다 우리가 더 아플 수 있습니다. (국방부 장관은) 특히 한미관계에 심각한 금이 갈 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얘기해주세요. 국민들 안심 좀 시켜주세요."

이런 태도는 야당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유지 입장을 밝힌 게 대표적입니다. 정부•여당이 역할분담을 통해 철저히 강온 양면전략을 펴야 협상력이 극대화 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소미아 폐기에 대한 찬성여론이 높았음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 김덕기 > 그렇다면 지소미아 폐기는 물 건너간 카드인가요?

◇ 홍제표 > 이론적으로는 사흘 간의 시간이 남아있으니 폐기 또는 조건부 폐기 카드를 쓸 수는 있습니다. 지소미아를 폐기하되 기존의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을 활용한다거나, 일본의 경제제재 철회를 조건으로 폐기를 압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둘 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방법입니다. 조건부 폐기 카드의 경우, 미국의 관여를 통한 일본의 태도 변화가 이뤄지기에는 물리적으로도 시한이 촉박합니다. 지소미아 폐기 후 TISA 활용 카드는 '지렛대' 역할을 활용해보지도 못하고 아까운 카드를 스스로 버리는 셈이어서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봅니다.

◆ 김덕기 > 그렇다고 '자동 연장'을 선택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 홍제표 > 그야 말로 태산명동서일필이 되기 때문에 생각하기 힘든 방안입니다. 국내 여론의 반발과 자칫 냉소주의를 불러 더 큰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김덕기 > 결국 남은 카드는 조건부 유지 밖에 없겠군요. 다만 이게 압박 수단으로 유용할지는 좀 의문입니다.

◇ 홍제표 >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NCND보다 조건부 폐기를 미리 선언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일문제에 관한 한 미국 눈치를 보지 말고 결연하고 단호하게 우리 입장을 천명해놓고 협상에 임해야 협상력이 더 커졌을 것이란 주장입니다. 하지만 조건부 유지도 따지고 보면 조건부 폐기와 비슷한 효능을 갖습니다. 1년 단위로 갱신되는 협정의 특성 때문입니다. 조건부 유지는, 협정은 일단 갱신하되 일본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실제 정보공유를 중단함으로써 사실상 사문화(형해화), 즉 조기 폐기하는 방법입니다. 이 협정의 목적은 정보 공유가 아니라 정보 보호이고 '공유'할 의무는 없기 때문에 정당한 방식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일본 초계기 사건 때 우리 측 정보 공유 요구를 일본이 거부한 바 있습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의 말을 들어보시죠.

"일본 초계기가 위협비행 했을 때 일본 측은 우리 군함이 레이더를 쏴서 그랬다고 했는데, (우리가) 그렇다면 레이더 정보를 내놔라 했을 때 일본이 거부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본이 요청해도 우리가 안 주면 그만입니다."

이는 향후 지소미아가 폐기되더라도 그 책임은 일본에 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일본은 24일 이전에 시행할 것으로 보였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조치를 28일로 늦추는 '꼼수'를 부렸습니다. 우리에게 공(책임)을 넘긴 것인데 이를 다시 일본 측에 되돌려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처럼, 24일이라는 시한에 얽매이지 않고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