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 전투' 감독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 '기록'

[노컷 인터뷰] 영화 '봉오동 전투' 원신연 감독 ①

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봉오동 전투'를 연출한 원신연 감독을 만났다. (사진=이한형 기자)
※ 영화 '봉오동 전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첫 사극. 배경은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계속돼 온 식민지 시기 드물게 거둔 승리의 역사. 하필 개봉 전에 극한으로 치닫게 된 한일관계. 역사 왜곡 혹은 국뽕(지나치게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것) 우려. 환경 훼손 논란.

영화 '봉오동 전투'는 원신연 감독에게 여러모로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일본 정규군에게 승리를 거둔 봉오동 전투라는 소재를 다루기에 감수하고 가야 할 부분도 있었지만, 국제 정세까지 예측할 순 없었다.

환경 훼손 논란의 경우 일부 규정을 어겨 벌금을 내고 식생 훼손 복구 작업 후 재촬영을 진행했으나, 악의적으로 짜깁기된 자료가 개봉 직전 온라인상에 빠르게 퍼져 진땀을 뺐다.

그래서일까.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원신연 감독은 약간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원 감독은 아무리 신중하게 접근한다고 해도 '예상할 수 없는 부분'이 늘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았다며, 마지막 전투를 앞둔 독립군 같은 심정으로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 충무로에서도 관심의 대상이었던 소재, 봉오동 전투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 정규군을 유인해 최초의 승리를 이룬 독립군의 전투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원 감독은 지난달 3일 열린 제작보고회 때 "널리 알려진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닌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오늘은 독립군이 될 수 있는, '모두가 모인, 모두가 싸운, 모두의 승리'"라고 설명했다.

일제강점기 때 기록으로 남은 독립군 최초의 승리라는 소재. 창작자들이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원 감독도 그중 한 사람이었고. 원 감독은 "많은 제작사와 감독들이 봉오동 전투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많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바로 이다음에 있었던 청산리 전투는 너무 잘 알려져 있지만, (봉오동 전투는) 알려지지 않은 전투이기 때문에 저도 너무 관심을 갖고 있었다"라며 "저에게 맞고 제가 잘할 것 같은 이야기에 맞는 기획이 있어서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됐다. 오랜 시간 동안 각색하고 준비해서 선보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화 소재 영화였기 때문에 무엇보다 고증에 심혈을 기울였다. 현존하는 사료가 부족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다. 원 감독은 앞선 언론 시사회 때 "역사 왜곡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을 만큼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어야 했다. 정말 많은 자료를 검토하면서 역사 왜곡되지 않게끔 접근하고 싶었다"라며 "할 수 있는 고증이라면 다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봉오동 전투' (사진=㈜빅스톤픽쳐스, ㈜더블유픽처스 제공)
"이 영화는 그랬었어요. 고증이나 왜곡을 피하기 위해 철저히 자료조사를 하자.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과정, 캐스팅한 후에 이들이 입고 뛸 의상 선택하는 과정 등 모든 게 다 포함돼요. 이게 다 끝나고 이들이 어떻게 싸울까 액션을 구성하고, 어떤 무기를 드는지도 절대로 그 기준을 벗어나지 말자고 했죠."

원 감독은 '기록의 액션'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봉오동 전투'를 완성했다. 전투 장면을 통해 관객들에게 영화적 재미를 주어야 한다는 것도, 이 영화가 가진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하는 것도 다 중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남겨진 기록'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원 감독은 "관객분들이 드라마를 어떻게 느끼고 액션을 어떻게 느끼실지는 잘 모르겠다"라면서도 "좀 더 화려하거나 우아하게 보이기 위해서, 동적인 감을 살리기 위해서 (액션을) 구성한 게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CG 등 영화적인 비주얼을 통해 유려함을 주기보다는 '정말 기록하듯이 찍자'고 했어요. 기록의 영화입니다."

◇ 주인공이 너무 안 죽는다고? 원신연 감독의 답

이날 인터뷰에서 원 감독이 가장 자주 언급한 단어가 바로 '기록'이다. 세어 보니 스무 번이 넘었다. 어떤 장면이나 상황 설정에 관한 질문이 나오면, 대부분 '기록'을 근거로 만들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원 감독은 "다 흩어져 있긴 하지만, 기록이 있다"라며 "시대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관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게끔 여러 가지를 재구성하고 재배치해서 한 줄거리로 만들었다. 그게 제가 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봉오동 전투'를 보고 나서 관객들이 자주 언급하는 것 중 하나가 유인 작전을 이끈 이장하(류준열 분)가 '끝판왕'처럼 살아남는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통쾌해하고 만족하는 관객도 있었지만,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며 흠으로 생각한 관객도 있었다.

이 부분을 언급하자, 원 감독은 "'늬들 나와바리란 말 좋아하지? 여긴 내 나와바리야'라는 이장하 대사처럼 실제 기록을 보면 지형·지물을 이용한 공격이 많았다. '말이 왜 사람을 못 쫓아가?'란 대사도 있는데, 말은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거다. (독립군들은) 지형을 너무 잘 알고, 일본군들은 여길 처음 와 보는 곳이기 때문에 모른다"라고 우선 설명했다.

이어, "봉오동 전투에서 월강추격대를 이끈 야스카와 지로(키타무라 카즈키 분)가 상부로 보고한 전투 상황 내용을 보면, 적들이 북쪽으로 도주해 추적 중이라는 내용이 있다"라며 "원래 따라온 적을 살짝 건드리고 자극하고 유인했어야 하는데 (독립군들이) 너무 잘 싸운 거다. 거의 전멸을 시킨다. 중반에 나오는 전투가 바로 그 부분"이라고 전했다.

원 감독은 영화에선 편집됐지만 독립군들이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는 장면도 시나리오 안에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상촌 훈련소 엄청나게 넓은 공간에 수백 개 허수아비를 세워둔 사격장이 있고, (허수아비에) 지금까지 전투하면서 모은 일본 군복을 입혀놓고 수없이 많은 사격 연습을 하며 울분 토해내는 연습을 한 흔적들이 있었다. 수만 발의 탄피도 보여주고"라며 "그것도 실제로 기록에 있는 부분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원신연 감독은 '봉오동 전투'로 처음 사극에 도전했다. 사료는 부족했지만 남은 기록을 꼼꼼히 살펴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사진=㈜빅스톤픽쳐스, ㈜더블유픽처스 제공)
원 감독은 '독립신문' 등 국내 자료뿐 아니라, 중국 자료, 일본군 보고서인 '전투 상보'에도 있고, 실제 봉오동 전투에 참여하신 분들의 후손들 이야기도 들었다. 사료와 증언마다 다르고, 역사학자들도 각각 이야기가 다른 '독립군 사상자 수'는 독립신문을 참조했다.

영화 속에 나온 홍범도 장군의 차림 역시 기록을 반영했다. 홍범도 장군 등장이 원래 예정돼 있던 것인지 물으니, 원 감독은 "홍범도 장군은 당연히 나오셔야 했다. 워낙 전설적인 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작전을 짜고 실행에 옮긴 분이고, 그분이 가진 상징성이 있어서 등장을 꼭 시켜야 했다. 핵심을 관통하는 캐릭터라서 배우분 자체도 현존하는 상징성 있는 인물이 해 주길 바랐다"라고 부연했다.

◇ 무도하고 잔혹한 일본군 사이에서 눈에 띄었던 '소년병'의 존재 이유

일본군을 이긴 승리의 기록을 조명한 만큼, 애국심을 자극하는 듯한 내용도 당연히 나온다. 식민지 역사를 기억하는 한국인이라면 카타르시스를 느낄지 모르겠다는 한 기자의 말에, 원 감독은 "워낙 식민지배 기간이 길지 않았나. 35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그들(일본)을 두려워하고 핍박받고 지배당하며 살았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걸 조심스러워 한 부분이 있다"라며 "이제는 과감하게 이야기하고 드러내야 하고,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라고 답했다.

이어, "황해철(유해진 분), 이장하, 마병구(조우진 분)라는 캐릭터가 어찌 보면 살짝은 낯설 수도 있다. 굉장히 호전적이고 호탕하고, 저런 상황에서도 해학적이니까. 인간이 가진 본능을 숨김없이 자연스럽게 드러내지 않나. 그게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 지배 속에서도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가"라며 "(독립군들은) 우리 모두인 거다. 우리들의 모습도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살아있는 호랑이를 죽이면서 등장하는 야스카와 지로가 마치 자기가 한 일을 돌려받는 것처럼 죽는 연출에 관해서는 "호랑이는 충분히 상징적인 동물인데, 그 상징에 대한 (일본의) 응징을 독립군들이 다시 응징함으로써, 있는 그대로 돌려준다는 부분을 꼭 좀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답했다.

'봉오동 전투' 원신연 감독 (사진=이한형 기자)
"예전부터 조상님들은 호랑이를 산신이나 산군이라고 불렀어요. 우리를 위협하긴 하지만 결국 이 땅을 지키는 신이라고 생각했죠. 야스카와 지로가 보기에 호랑이는 말살시켜야 하는, (조선인의) 정신적 지주 같은 거예요. 처음에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습도 한반도 같은 모습이고요. 초반엔 일본이 한반도를 정말 완벽히 초토화시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걸 뒤에 응징하는 방식인 거죠. 황해철의 대사 중에 '받은 거 그대로 돌려주는 거야'라는 말도 있듯이. 황해철 대사 중에 '칼로서 세운 자, 칼로서 망한다'라는 것도 있었어요. 삭제된 대사지만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칼로 남의 것을 빼앗고, 총 한 번 쏘지 않고 한 나라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학살을 자행하는 부분에 있어서, 그대로 정말 응징을 당하는 거죠. 춘희(이재인 분)도 말하잖아요. '늬들이 어떻게 죗값을 치르는지 살아서 지켜봐'라고. 그런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가짜 수류탄에 속아 우연히 황해철 무리의 포로가 된 소년병 유키오(다이고 코타로)를 등장시킨 것도 목적이 있었다. 원 감독은 "'우리가 왜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는 일본인을 봐야 하냐, 그렇게 생각하는 일본인은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다는 걸 안다. 저땐 없었어도 지금은 (저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있기를 바라는 시선도 있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문제가 된다. 저는 (일본이라는 조국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캐릭터라고 확정하진 않았다. 저런 캐릭터가 있었다, 정도로만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말 유키오 같은 아이가 있었다면, 제 바람대로 있었다면, (나중에) 지식인이 되어서 본인들이 한 행동에 대해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캐릭터에요. 근데 요즘 현실을 보면 어려워 보여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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