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개막한 뮤지컬 '블루레인'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시공간을 1997년 미국 유타주로 옮겨 각색한 작품으로 '선(善)과 악(惡)의 경계'라는 묵직한 주제를 친부 살해라는 소재를 차용해 흥미롭게 풀어냈다.
13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린 뮤지컬 '블루레인' 프레스콜에서 추정화 연출은 작품을 선보이게 된 계기에 대해 "저는 '죄와 벌'의 팬이었는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처음 읽었을 때, 죄와 벌이 던지는 질문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면서 "좀더 사건이 명료하기도 해 카라마초프가의 형제들의 뮤지컬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같은 단어 자체가 없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사건이나 범죄들을 실시간으로 접하지 않나. 그런 끝나지 않는 범죄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인간이 이렇게 악해질 수 있는 지에 대한 물음을 작품에 담아보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통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의 의미 영역을 형사상의 범죄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사유와 욕망의 영역으로, 나아가 대화와 생각을 포함한 행동 전반까지 확장시켰다.
뮤지컬 '블루레인'은 이러한 원작의 메시지를 기본으로 자본주의의 중심 미국의 한 가정에 대입해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한다.
추 연출은 작품을 현대로 옮겨오면서 원작의 러시아도 아니고 한국도 아닌 미국을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자본주의 한복판에 있게 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1997년 미국은 돈과 법이 절대적인 신앙보다 위에 있을 수 있었던 시절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그 미국의 한복판 유타라는 동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블루레인'이라는 이름은 원작이 연상되지 않는 밝은 느낌의 제목이다. 하지만 이날 프레스콜에서 시연된 주요장면 속 '블루레인'은 한없이 어둡고 무거운 느낌으로 무대를 가득 채운다. 무대 장치 역시 사각형 모양의 틀과 의자 등의 간단한 장치만 사용돼 배우들의 움직임과 표정이 더욱 돋보이며 이목이 집중된다.
추 연출은 "처음에는 대 저택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세트를 꾸릴 돈이 없어서 막막했다, 그러다 창작진들에게 '이런 걸 해보고 싶다. 구현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설득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안무 선생님께도, '드릴 수 있는 건 의자 밖에 없다. 의자를 활용해서 멋진 춤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멋지게 나왔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무대에 어항만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다. 캐릭터가 어항을 내려다보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무대 자체도 어항이다"라면서 "인간이 어항을 내려다보듯이 신도 우리를 어항처럼 내려다보듯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도 어항 속 물고기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항을 만들어보고 싶어 이런 무대가 만들어졌다"라고 설명했다.
그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작품들은 종종 나왔다. 지난해만 해도 '카라마조프'와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두편이 함께 개막돼 각축을 벌였다.
추 연출은 앞선 뮤지컬 작품을 극찬하면서도 차별성을 강조했다.
추 연출은 "지난해 '카라마조프'는 못봤고,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만 봤다. 정말 원작을 잘 녹여냈더라. 감탄했다"라면서도 "그래서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책을 잘 녹여낸 작품이 있어서 현대적인 제 이야기에 힘이 더 실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뮤지컬 '블루레인'의 주인공 '테오' 역에는 이창희와 이주광이 캐스팅 됐다.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공부에만 매달려 뉴욕 최고의 변호사가 된 '루크' 역에는 임병근과 박유덕이, 테오와 루크의 친부이자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온 남자 '존 루키페르' 역은 김주호와 박송권이 맡았다.
또 불우한 어린 시절 속에서도 가수의 꿈을 키워온 테오의 여자친구이자 무명가수 '헤이든' 역은 김려원과 최미소가 더블 캐스팅 됐고, 오랜 세월 루키페르 저택의 가정부 '엠마' 역에는 한지연과 한유란, 하인 '사일러스' 역에는 임강성과 조환지가 출연한다.
공연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오는 9월 15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