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회에는 '국민연금의 일본 전범 기업에 대한 투자제한법'이 발의돼 있어 국민연금의 입장에 따라 급물살을 탈 수 있지만, 전범 기업에 대한 정의조차 없는 등 현실적으로 여러 걸림돌이 있어 당장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12일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내달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회의를 열어 국민연금의 사회적 책임투자(SRI) 활성화 방안과 가이드라인을 놓고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은 기존 책임투자전략을 개선해 환경(E)·사회(S)·지배구조(G) 등 요소를 고려한 투자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책임투자 원칙 수립, 책임투자 위탁펀드 규모 및 자산군 확대 등 내용을 담았다.
기금위는 이 과정에서 포괄적 책임투자 원칙을 정립하고, 이 원칙을 일본 전범 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민연금 기금 관리 운용의 최종 책임을 진 보건복지부가 신중한 태도를 보여 당장 결론을 도출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복지부 국민연금재정과 최경일 과장은 "일본 전범 기업에 대한 투자 금지 문제는 국민연금 기금의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 국가 간 분쟁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고, 기금위 산하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의 책임투자분과위 추가 논의, 관련 전문가 의견수렴 등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쉽게 확정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최근 해외언론과 인터뷰에서 "최근 들어 한일 간 경제전쟁, 한일간 갈등이 소위 일본 전범 기업에 대한 투자배제 여론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문제를 투자영역에서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우리는 자유 무역을 옹호하며, 국가 간 자유로운 투자도 허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점에서 "최근 일본 정부의 수출 제한 조치는 자유 무역 정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현재 국민연금의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을 논의 중이며, 그런 차원에서 투자배제 대상에 일본 전범 기업이 포함될 수 있는지 판단을 새롭게 하고 있지만, 그러려면 먼저 전범 기업에 대한 정의부터 내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범 기업에 대한 투자문제가 국민연금 책임투자 원칙과 ESG 요소에 어긋나는 것이 있는지 다시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현행 국민연금법은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기금을 관리, 운용하면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증대를 위해 투자대상과 관련한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을 고려할 수 있도록 명시하는 등 사회책임투자를 규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투자방법과 원칙, 대상기업은 명시하고 있지 않다.
이와 관련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광수 의원은 일본 전범 기업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투자를 제한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최근 대표 발의했다.
사회책임투자원칙에 부합하는 국민연금기금 투자가 이뤄질 수 있게 하려는 취지다.
국민연금공단이 김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국민연금은 2018년에만 일본 전범 기업 75곳에 1조2천30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만명 이상의 한국인을 강제 동원해 19세기 말 메이지유신 때 급격히 성장한 일본의 대표적인 전범 기업이자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도 피해배상을 거부하고 있는 미쓰비시 중공업을 포함한 미쓰비시 계열사에 총 875억원을 투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