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죽이기'에 특정 언론 보도 행태가 나오는 이유

[노컷 인터뷰] '앨리스 죽이기' 김상규 감독 ①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내자동의 한 카페에서 '앨리스 죽이기' 김상규 감독을 만났다. (사진=㈜인디플러그 제공)
남편과 함께 휴가 목적으로 북한에 방문한 재미교포 신은미 씨는, 북한과 북한 주민들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반공 교육을 철저히 하던 시대,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신은미 씨는 오랫동안 북한을 '북괴'로, 북한 주민들을 '뿔 달린 존재'로 믿어왔기 때문이다.

무지에서 나온 거부감과 공포였다는 것을 체감한 신은미 씨는 돌아와서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시민기자로서 쓴 글이 한 편 두 편 쌓이자 책을 냈다. 책은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문학 도서로 선정됐고, 신은미 씨는 요청을 받아 북 콘서트를 열기 시작했다.

지난 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앨리스 죽이기'(감독 김상규)는 신은미 씨에게 '종북'이란 딱지를 붙이고 괴롭힌 한국 사회의 광기를 포착한 작품이다. 여행기를 토대로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북한을 이야기한 신은미 씨의 '북 콘서트'가 '종북 콘서트'가 되고, 북한을 고무 찬양했다는 혐의가 씌워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 감독은 원래 신은미 씨를 비롯해 북한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사람이나, 북한에서 살다 온 사람을 통해 '입체적인 북한'을 담아낼 계획이었다. 신은미 씨와 상의해 촬영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때아닌 '종북 논란'이 일어,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경우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내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기획부터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지금의 결과물을 예상할 순 없었다"라면서도 "당시 상황을 최대한 보여주고 그걸 보고 각자 미디어를 통해 알던 모습과 (실제를) 비교하면서 느끼는 차이, (이걸 통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앨리스 죽이기' 안에서 TV조선을 비롯한 언론의 행태에 주목한 이유에 관해서는 "언론의 왜곡 문제를 표면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기대를 한다"라고 전했다. 당시 TV조선을 비롯해 '보수'를 자처하는 언론과 세력은 신은미 씨의 북 콘서트를 두고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 '종북 콘서트'"라는 낙인을 찍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 '앨리스 죽이기'란 제목의 탄생

'앨리스 죽이기'는 불과 5년 전인 2014년 신은미 씨의 북한 여행 토크 콘서트가 종북 콘서트'로 매도되는 등 당시 대한민국을 덮친 기상천외한 '레드 알레르기' 반응을 조명했다.

'앨리스 죽이기'는 사실 김 감독의 계획에 없던 결과물이다. 그는 원래 북한을 직접 체험하고 경험한 이들을 통해 최대한 입체적인 북한을 기록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2014년 11월, 갑자기 신은미 씨를 향한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그 숨 가쁜 시간을 갑작스럽게 기록해야 했기에,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

김 감독은 "촬영한 걸 보면서 굉장히 어려웠던 것 같다. 제가 만들고 싶었던 영화와 실제 찍힌 모습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조율할까. 이전의 기획과 지금 찍은 걸 어떻게 엮어볼까 되게 오랫동안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신은미 씨가 북한 여행 중 찍은 사진들. 맨 위는 김일성 광장, 두 번째는 백두산 천지, 세 번째는 북한 관광 안내원과 찍은 사진 (사진=지킬필름 제공)
첫 번째 편집본이 나오기까지 1년 반이 걸린 이유다. 이번 개봉 버전까지 또 1년 넘게 재편집을 거쳤다. 이른바 '신은미 사태'로 또다시 수면 위로 떠 오른 레드 콤플렉스를 조명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역사적 배경까지 놓칠 수 없었다. 관객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김 감독은 "결국 (사안을) 좁혀서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당시 상황을 최대한 보여주고, 그걸 보고 각자 미디어를 통해 알던 모습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차이,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53일간의 촬영본을 중점적으로 썼다"라고 말했다. 일본, 미국 촬영본에 대한 미련은 버렸다.

'HOW RED ARE YOU?' 당신은 얼마나 빨갛냐는 도발적인 문구로 신은미 씨의 눈과 입을 가린 포스터, '앨리스 죽이기'라는 제목 모두 강렬하다. 어떻게 하다가 '앨리스 죽이기'라는 제목이 나왔을까.

김 감독은 "신은미 씨가 북한에 가기 전과 가서 느꼈던 경험, 제가 2002~2003년에 금강산에 가서 느꼈던 설렘, 두려움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동화 속 앨리스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운을 뗐다.

김 감독은 "이상한 나라라는 것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면서도 "동화 속에서는 이상한 나라에 가서 신기한 경험을 하고 꿈에서 깨는 것으로 끝나지 않나. 그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공유하고 싶어서 이야기하고 다니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하고 상상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돌아보면 과연 이상한 나라라는 곳이 비단 북한만을 얘기하는 것일까 싶었고, 한국 사회를 돌아보았을 때 그 또한 정상이라고 하기에는 (신은미 사태가 벌어진 때가) 너무나 광기 어린 시기였다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부연했다.

◇ 최소한의 목격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촬영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신은미 씨는 어떤 사람인 것 같냐는 물음에, 김 감독은 "딱 첫 느낌은, 굉장히 정이 많은 요즘에는 찾기 어려운 스타일?"이라고 답했다.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다큐멘터리 안에서 신은미 씨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로 두 가지가 제시된다. 첫 번째는 음악이다. 신은미 씨가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김 감독은 "10대 초반부터 리틀 엔젤스로 활동했다. 전 세계 돌아다니면서 각국 정상 앞에서 공연해야 하니까 대중 앞에 선다는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리틀 엔젤스) 훈련 과정이 굉장히 혹독하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고난이 와도 그걸 스스로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라고 전했다.

일부 세력과 언론에 '종북 빨갱이'로 규정 당한 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신은미 씨. 사진은 2015년 1월의 모습이다. (사진=박종민 기자/노컷뉴스 자료사진)
두 번째 키워드는 종교다. 김 감독은 "완전히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시하는 듯했다. 북한 사람들을 악마나 적으로만 여기다가, (여행 후) 이 또한 내가 사랑을 전하고 표현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걸 알게 됐다는 거다"라며 "신은미 씨는 어떤 이념이나 정파, 세력 등에서 자유로운 분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언론으로부터 '종북' 딱지가 붙은 신은미 씨 곁에서 촬영하기란 녹록지 않았다. '왜 찍냐'란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고, '어디냐'며 소속을 묻는 사람도 많았다. 김 감독이 느끼기에 그 질문에는 어느 정도의 경계와 적대감이 섞여 있었다.

김 감독은 독립 다큐멘터리스트였기에, 어딘가에 속해있지 않았다. 다만, 매일 '상상 이상의 일'이 벌어지다 보니 걱정이 들었다. 그는 "카메라를 든 저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것보다는, 그 순간을 기록하는 입장에 서서 꼼꼼히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어떤 일이 벌어졌을 경우 최소한의 목격자, 증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촬영을 진행했다"라고 말했다.

◇ 폭발물 테러 가해자 인터뷰가 들어간 이유

신은미 씨는 전북 익산에서 토크 콘서트를 할 때 폭발물을 들고 온 참석자 때문에 황산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앨리스 죽이기'에는 자신을 '봉길 센세'(윤봉길 열사를 뜻한다)라고 칭하며 폭발물 테러를 벌이고, 이를 일베에 중계하듯 쓴 오세현 씨가 등장한다.

섭외부터 쉽지 않았을 법한 인물을 찍은 이유가 궁금했다. 김 감독 역시 오 씨 동의 아래 촬영하긴 했지만, 오 씨 이야기를 전하는 게 굉장히 조심스럽긴 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당시 그분의 행위에 대해 3가지 정도 반응이 있었다. '어떻게 고등학생 혼자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나? 분명히 배후가 있을 것', '정신이 이상한 것 아닌가?', '의사이자 열사다. 잘한 일이다' 등. 제가 그 사이에서 어떤 가치 판단을 하긴 어렵더라"라고 전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오 씨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테러 행위 배경은 무엇인가 등을 선입견 없이 듣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오 씨의 재판이 진행 중이었던 2015년 초에 연락했을 땐 거절당했다. 2017년 5월 편집 마무리 단계에서 다시 연락했고, 3시간 정도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해 말에 다시 한번 만나 인터뷰를 추가했다.

지난 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앨리스 죽이기' (사진=지킬필름 제공)
김 감독은 "그분의 이야기를 충분히 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처음 가편집했을 땐 상당히 비중 있게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 씨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 버리니, 이야기의 맥락과 구조가 흔들리고 어긋나게 됐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음성을 포함해 1분 30초만 들어갔다.

김 감독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다 담았을 때 오히려 문제점이 생길 수도 있었다"라며 "당사자가 비난받을 만한 이야기도 있었고, 피해자가 상처 입을 수 있는 이야기도 있었다. 여러 가지를 고려했다"라고 조심스레 전했다. 비록 최소화하기는 했지만, 오 씨를 '앨리스 죽이기'에서 보여주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바라봤다는 게 김 감독의 설명이다.

"자기 역사와 논리를 가진 존재가 스스로 또는 어떤 사회 역사적 배경 속에서 계속 탄생하고 있다는 거죠.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 사회가 조금씩 더 나아질 거야'라고 하지만, 그런 낙관적인 전망만으로는 좀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존재(오세현 씨)를 관객들이 직면해서, 왜 그런 분들이 존재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도 좀 생각을 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언론'을 감시하는 누군가도 있다는 것 보여주고파

'앨리스 죽이기'에는 신은미 씨의 북 콘서트를 '종북 콘서트'로 단정하고 비난성 보도를 이어간 TV조선 등 언론의 보도 행태도 적지 않게 나온다. 특정 언론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냐고 묻자, 김 감독은 "우려 반, 기대 반"이라는 답을 돌려줬다.

"우려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어요. 저는 그 당시 논란의 책임이 있는 곳으로 (특정 언론을) 지목하고 있으니까요. 만약 어떤 법적인 대응을 한다면, 그 또한 언론의 왜곡 문제를 표면화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도 해요. 만약에 소송을 걸어주신다면 (웃음) 그 또한 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성실히 대응할 거예요.

제가 당시 TV조선뿐만 아니라 많은 언론인을 주목했던 게 있어요. 언론인이 그냥 직장인인가? 현장에 나가서 자기 양심에 비춰봤을 때 잘못된 것 같아도 데스크가 하라고 하면 순순히 따라가는 직장인인지, 아니면 사회적 책무를 가진 언론인인지… 저는 언론에도 당신들을 감시하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걸 전달하고 싶었어요. 언론에 편승해서 여론에 동조했던 분들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겠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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