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장관도 다녀가고…美, 얼마짜리 안보청구서 내미나?

외교부·국방부·청와대 차례로 다녀간 에스퍼 미 국방장관
트럼프 대통령 "SMA 협상 시작됐다"며 먼저 포석 깔아
외교부 "아직 시작 안 됐다" 신중한 대처…전문가들 "트럼프 언급한 6조원 말 안 돼"
미국, 항목 추가를 통한 인상 요구할 듯
원칙론적 대처와 꼼꼼한 항목 계산 등 필요…분담금 외 수조원 직간접 지원 현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마크 에스퍼 미국 신임 국방장관이 우리나라를 방문해 지난 9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경두 국방부 장관, 문재인 대통령을 차례로 만나면서 곧 있을 제11차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협상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협상이 막 개시됐다"며 선제 포석까지 놓는 등 인상을 공언하는 상황에서, 꼼꼼한 계산과 원칙론적 대처가 필요하다는 대책이 제시되고 있다.

◇ 트럼프 "협상 이제 막 시작됐다", 우리 정부 "시작 안 됐다"… 인상 요구 앞두고 줄다리기

지난 8일 오후 한국을 찾은 에스퍼 장관은 이튿날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찾아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짧게 면담했다. 이어 용산구 국방부 청사를 찾아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회담하고, 오후에는 청와대를 찾아 문재인 대통령과도 만났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공언해 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에스퍼 장관이 우리나라를 방문해 여러 인사들을 만나면서 이같은 요구를 어느 정도 시사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일단 SMA 협상의 주무부처인 외교부에 따르면, 에스퍼 장관은 강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최근의 현안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나눴을 뿐 해당 협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각) 트위터에 글을 올려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위한 협상이 이제 막 시작됐다"며 "한국은 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미국에 현저히 더 많은 돈을 내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난 수십년간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매우 적은 돈을 받았지만 지난해에는 요구에 따라 한국이 9억 9천만 달러를 지급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선거 유세나 내각회의에서 현재 분담금의 600%에 해당하는 50억 달러(약 6조 450억원)가 주한미군 주둔 비용이라고 언급한 적도 있었다.

그러자 외교부는 "아직 협상이 개시되지 않았고, 아직 협상단 구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난달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방한했을 때, 앞으로 합리적이고 공정한 방향으로 방위비 분담 문제를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국이 분담금 인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예상되기는 하지만,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며 "실무진들은 이미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좀 더 어려운 협상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 정도는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허풍 전략'으로 "협상이 개시됐다"며 먼저 포석을 내세우고, 우리 측에서는 일단 방어적으로 대처하며 협상 시작 전부터 미묘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미국, 인건비·전략자산 항목 추가 통해 인상 요구할 것… 꼼꼼히 따져 방어해야"

곧 있을 SMA 협상에서 미국의 분담금 인상 요구가 있으리라는 점이 가시화되자 전문가들은 미국이 내세울 요구의 세부 사항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대처 방안을 내놓았다.

일단 미국은 그간 자신들이 부담해 온 여러 비용들에 대한 항목을 SMA에 추가해, 이를 한국 측이 부담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으로 인상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항목에 대한 인상을 요구하기는 부담스러우니, 항목을 추가해 이에 대한 비용을 추가로 청구한다는 식이다. 이같은 방식의 예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현재 미국이 부담하고 있는 주한미군 인건비와 전략자산 전개 비용 등이다.

아산정책연구원 신범철 안보통일센터장은 "항목을 지금보다 더 추가하겠다는 요구를 해 올 가능성이 높다"며 "이 때문에 액수가 대폭 뛸 수 있는데 그러지 않게 (항목 추가에 대해서)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적이 있는 6조원이라는 금액은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전체 비용인데, 우리가 이를 모두 낼 필요는 없다"며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의 취지에 맞게 적정 금액을 분담하는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협상의 대책으로는 "다른 묘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원칙이 있으면 뚝심 있게 해야 한다"며 "우리가 여러 현안이 있어 아쉬운 입장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돈은 덜 주고 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제시했다.

한편으로는 방위비분담금의 사용 내역을 꼼꼼히 따져 가며 투명하게 협상을 진행해야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참여연대 평화구축센터 신미지 간사는 "방위비분담금의 사용 내역이 어떤지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며 "국회 보고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감사원의 감사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지난 2015년에 분담금을 어떻게 썼는지 보고서를 냈는데, 이후에는 돈을 어떻게 썼는지 공개가 되지 않았다"며 사례를 들어 지적했다.

실제로 이 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9300억원의 방위비분담금을 포함해, 3조 3800억원이 직·간접적으로 주한미군에 지원된 것으로 파악됐다.

구체적으로는 방위비분담금 외에 미군 기지 주변 정비 비용, 한미연합군사령부의 미 통신선 사용료, 카투사 병력 지원, 훈련장 사용 지원, 각종 세금 감면, 도로와 항만·공항·철도 이용료 면제 등의 지원이 포함됐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한일 양국의 경제 및 정부재정 규모를 고려하면 한국이 모든 비용 항목 구분에서 일본보다 매우 높은 수준으로 주둔 미군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 간사는 "이같은 사항에 대해 정확한 통계를 내서 시민들을 설득하고, 이를 기반으로 충분히 방어할 수 있도록 논리 등을 만들어 공개하는 등의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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