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채 갭투기꾼 잠적 '세입자 눈물'…정부 대책은 '그림의 떡'

'전세금 보증 확대'에도 "정작 우린 빠져 있다" 불만 목소리 높아

'갭 투기' 실패 여파로 대규모 전세 보증금을 당장 떼일 위기에 놓인 세입자들에게 정부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가 지난달부터 전세금 반환 보증 특례를 확대했지만, 정작 대규모 피해 위기에 놓인 서울 강서‧양천구 일대 세입자들의 호소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은 잘 드러난다.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세입자 이모(34)씨는 "당장 자녀계획까지 미룬 상태"라며 "정부 정책이 나와도 변한 건 없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아내와 함께 전세 2억원짜리 빌라에 입주했지만 한 달 만에 물이 샜다. '갭 투기'로 인근에만 600여 채의 집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집주인 A씨는 이미 잠적한 뒤였다.

피해자 단체 대화방에 240여 명이 모여들었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었고, '혹시나' 기대한 정부 대책은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3일 "최근 전셋값이 하락한 지역에서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면서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전세금 반환 보증 특례를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전세금 반환 보증은 임차인이 집주인으로부터 계약 기간 만료 뒤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 HUG가 이를 대신 지급하는 제도다.

계약 기간이 반 이상 지난 경우 가입이 불가능한 데다 일부 미분양 관리 지역에만 적용되던 것을 전국 범위로, 계약 종료 6개월 전까지도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정작 이씨와 같은 기존 피해자들의 처지는 변하지 않았다. 집주인 A씨처럼 임대인이 이미 공사에 채무가 잡힌 경우에는 임차인이 보험에 가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씨는 "집 계약 전에는 이런 사실을 알 방법이 없다"며 "언론 보도로 문제가 수면에 떠오르면서 나온 정책인데, 정작 그동안 피해를 본 사람들은 배제돼버리니 우리 쪽에는 있으나 마나, 나오나 마나 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호소들도 맥락은 마찬가지다.한 피해자는 지난달 26일 '피해자를 빼버린 전세 피해 대책'이란 제목의 청원 글을 올려 "갭 투기 전세 사기 임대인에게 몇 차례 구상권이 청구되면서 나머지 주택들에 가압류가 신청됐다"고 밝혔다.

이 피해자는 "보증 공사는 '국민을 위한, 사회적 약자인 세입자를 위한 정책'이라고 생색은 내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혜택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큰 기대가 큰 실망으로 변했다"고 했다.

이어 "길게는 1년을 고통 속에 살면서 출산, 결혼 계획까지 망치고 주저앉아 울고 있는 사람들은 보호 대상이 아니란 말이냐"고 반문하면서 "'본보기 피해자'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성토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보증 한도가 주택 가격의 70~90%로 제한돼 전세가율이 높은 빌라 등 임차인들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것 역시 여전한 한계다.

국토부 관계자는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공사의 재정적 리스크를 고려한 결과"라며 "이미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는 이 같은 틀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기존 피해자들은 결국 사법적 절차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인 셈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 최승섭 팀장은 "강서‧양천구 일대에서 몇 사람이 워낙 많은 수의 세입자들을 들여 화두에 올랐지만, '전세 사기' 문제는 사실 계속돼온 문제"라며 "더 적극적인 정책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전세 보증 보험 가입을 아예 의무화해 임대인과 공사간 채권 관계 등 세입자 입장에서 꼭 필요한 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 팀장은 "정책적으로 기존의 피해자들을 구제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면서도 "다만 이 같은 개선으로 장기적으로는 자격 미달의 임대인이 아예 임대사업에 손을 대지 못하게 막을 수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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