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와 현장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 사고는 '안전 불감증'과 총체적 부실 대응에 따른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위기에 놓인 근로자들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최소 20분 이상 있었지만, 이 사이 관계자들의 대응은 '제로'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 폭우에 '수문 개방 예정' 통보됐는데…수십분 간 아무런 조치 없었다
사고가 난 배수로는 지하 45m 깊이에 설치돼 있으며, 신월동부터 목동까지 3.6km 길이로 뻗어있다.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 저지대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한 시설로,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았으며 공사가 거의 끝나 시범 운영 중이었다.
기상청은 이날 오전 6시부터 낮 12시 사이 비가 올 것이라고 전날부터 4차례에 걸쳐 예보했다. 그럼에도 현대건설 협력업체 근로자 2명은 시설 점검을 위해 이날 오전 7시10분 쯤 지하 배수로로 투입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양천구는 호우주의보에 따라 7시31분에 시설 시운전 업체, 7시38분 현대건설에 배수로 수문이 열릴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근로자들은 투입된 지 20분 만에 수몰될 위기에 놓인 셈이다. 이 때 수문 개방을 미뤄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면 참변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결국 7시40분에 수문은 열렸다. 수문 개방 예정 통보부터 실제 개방까지 10분이 있었지만, 사실상 어떤 조치도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물은 8시9분 쯤 근로자들을 덮친 것으로 알려졌다. 수문이 열린 뒤 약 30분이라는 대피 시간이 있었지만, 근로자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작업을 계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 현장 소장 A씨는 "상부에서 하부에 전달할 수 있는 연락망은 현재까지 없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수문 개방 4분 뒤인 7시44분에서야 현장에 상황을 전파했다.
공사 팀장이 개인 일정으로 자리를 비운 뒤 대행 업무를 하던 현대건설 직원은 지하로 상황을 전파할 방법이 없자 직접 근로자 2명을 구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관계자는 "(지하) 근로자들을 밖으로 피신시켜야 된다는 판단에 본인이 (내려가기로) 결정한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사고 예비 조치, 위기 전파 체계가 전무한 상황에서 지자체·건설 관계자들의 늑장대응까지 겹치면서 참사가 벌어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아직 공사가 완료되지 않은 이 시설을 무리하게 시범운영하면서 안전 장비 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점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이번에 열린 수문은 안전메뉴얼 대로라면 70%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면 자동으로 열린다. 그러나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의 설명에 따르면 시범운영 기간임을 고려해 수문 개방 수위를 50%~60%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다.
시 관계자는 "시행착오를 거쳐야 보완점이 나오기 때문에 수위를 낮추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시행착오'가 아닌 '참사'였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장에는 구명장비 등도 비치돼 있지 않았으며, 수문이 열릴 경우 근로자들이 알 수 있는 경보 시스템도 없었다.
사고 이후 관계자들은 책임을 피하기 급급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현장 소장은 "7시10분 근로자들이 투입될 당시에는 비 예보도 잡히지 않았고 호우주의보도 없었다"고 했다. 전날부터 수 차례 비 예보가 이뤄졌던 점을 감안하면 황당한 답변이다.
한편 최초 배수로에 투입됐던 근로자 1명은 소방당국에 의해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또 다른 1명과, 이들을 구하기 위해 내려간 시공사 직원 1명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아 수색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