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오후 강원 강릉시 연곡면에서 백합을 재배하고 있는 최명식(64)씨는 밭에서 시들고 있는 백합을 폐기 처분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로 한국과 일본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면서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들어 오던 일본의 백합 주문량이 단 한 건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다음달 15일 오봉절(조상의 영혼을 맞이하는 일본 최대의 명절)을 전후로 백합의 수요가 가장 많은 시기다. 최 씨에게는 일년에 두 번 있는 대목 중 하나로 지난 4월말부터 이 시기에 출하하기 위해 노지에서 백합을 애지중지 키워왔다.
앞서 지난해까지 여러 가지 이유 등으로 백합의 수출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올해처럼 일본에서 들어 오는 주문이 전무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 최 씨의 설명이다.
최 씨는 "백합이 일본에서 8월에서 9월 사이 가장 많이 팔리는 시기지만 백합을 사겠다는 연락조차 오지 않고 있다"며 "더욱이 현재 일본에서 형성되고 있는 가격마저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 수준이라 폐기 처분을 결정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천재지변이나 병이 들어 백합을 출하하지 못한다고 하면 그나마 감수할 수 있겠지만, 우리 잘못이 아니라 정치적 상황으로 벌어진 일이라 더욱 억울한 심정"이라며 "감자나 양파처럼 먹는 것도 아니여서 시민들이나 지자체 등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차원에서 빨리 해결책을 찾았으면 좋겠다"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는 강릉시가 이런 농가들의 시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기 보다는, 농민들을 두 번 울리는 행태를 보이면서 비난을 사고 있다.
강릉시는 올해 지역 내 백합 수출 동향을 파악한 결과 최 씨가 재배한 백합의 경우 바이러스 문제가 있어 수출과 내수 시장도 어려운 만큼, 한·일 관계에 따른 영향은 없다고 분석했다.
이는 멀쩡한 백합을 폐기 처분해야만 하는 농가들의 심정과는 전혀 반하는 입장이다. 또한 CBS 취재 결과 최 씨의 백합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돼 더욱 빈축을 사고 있다.
이에 대해 강릉시 관계자는 "백합에 바이러스 문제가 있다는 내용은 확인하는 과정에서 다소 혼선을 빚은 것을 인정한다"며 "현장을 찾아 세부적인 파악을 한 뒤, 지자체 차원에서 농가들에게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지에 대해서도 대책을 강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강릉지역에서는 모두 29가 농가에서 29ha에 화훼작물을 재배하고 있으며, 백합 수출 농가는 5농가 내외로 파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