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는 늘어나는데…보호받지 못하는 '농촌' 외국인 노동자

산재보험 보호 범위에서 제외된 '농촌' 외국인 노동자
'건강권' 보장 안 돼…노동자들 "아파도 알아서 해결"
도내 '외국인 계절근로자' 최근 5년 동안 꾸준히 증가
전문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 세워야" 지적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일감을 얻기 위해 인력사무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16명의 사상자를 낸 삼척 승합차 대형사고가 일손 부족 등 '고령화' 농촌 현실이 불러온 참변이라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농사일의 경우 농작물 출하가 집중되는 시기에 주로 노동자가 필요한데, 엄연히 인력을 고용하는 것인 만큼 사업주는 산업재해 보험에 가입해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해야 마땅하다.

이미 건설 현장에서는 지난해 7월 1일부터 '소규모 건설공사'와 '상시 1인 미만 사업장'까지도 산재보험이 적용돼 약 19만 명의 노동자가 혜택을 받게 됐다.

하지만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산재보험에 가입한 농가는 찾아볼 수 없었다.

현행 산재보험 가입조건에 따르면 '농업 중 법인이 아닌 자의 사업으로서 상시 근로자 수가 5명 미만'인 경우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수 있다. 즉 1~2명으로 운영되는 농가는 당초부터 산재보험 보호 범위의 대상도 아니다.


문제는 산재보험에 의무가입해야 하는 농가도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규모가 무려 1200ha에 달하는 삼척의 한 배추밭에는 상시근로자가 백여 명이지만, 보험 가입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배추밭 단지의 한 관계자는 "건설 현장과 달리 농사일은 하루에 다 마칠 수 있어 산재보험 가입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농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보험 가입으로 지출되는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강릉의 한 배추밭도 마찬가지였다. 배추밭 200ha 규모에 30~40명 정도의 상시근로자가 있는 이 농가도 산재보험 가입은 하지 않았다.

강릉의 한 배추밭 단지에서 일을 마친 베트남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집에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지난 25일 오후 취재진이 만난 베트남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산업재해'라는 개념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들은 "일을 하면서 크게 다친 적은 없지만, 쪼그리고 앉아서 일하다 보니 무릎이 많이 안 좋아졌다"며 "많이 아플 때는 약국에서 직접 약을 사다 먹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은 돈을 많이 벌어 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품고 왔기 때문에 건강권보다는 돈벌이 쪽을 택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손이 부족해진 농촌 지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흐름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이들에 대한 '건강권 문제'는 이제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영역이 됐음을 부정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강원도에 따르면 도내 농가에서 신청한 '외국인 계절 근로자'는 지난 2016년 57명에서 2017년 407명, 2018년 1383명, 2019년 1643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과 반대로, 정작 이들이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주소는 곧 '사회 안전망 사각지대'를 의미한다.

외국인지원센터 함께하는 공동체 최철영 대표는 "사업자를 등록해야 하는 제조업과 달리, 소규모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업인들은 별다른 절차 없이 농가 운영이 가능하다"며 "그 탓에 농업분야에서 노동자들의 건강권은 어느 분야보다 취약한 구조"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강원도가 다른 지자체와 달리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예산이나 정책 방향이 아예 없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농촌 지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안전문제를 지자체 차원에서 들여다보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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