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미술대학 석사과정을 밟던 A씨는 올해 5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지 줄곧 이런 독백을 적었다. 비밀번호로 잠긴 개인 컴퓨터 메모장과 비공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그는 '죽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A씨의 극단적 선택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유족은 최근에서야 굳게 잠겨있던 컴퓨터에서 이 글들을 발견했다. 암호를 푸는 데에만 한 달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뒤늦게 세상 밖으로 나온 A씨의 독백은 '학내 따돌림'이 있었다는 유족의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대학원생 2년차였던 지난해 7월12일 그는 "만약에 이곳이 내가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며 "영악한 사람들. 차별받는 것. 너무 힘들다. 내 편에는 누가 있을까. 외롭다. 슬프다"라고 썼다.
중·고등학교를 캐나다에서 나오고 미국 명문 시카고예술대학을 졸업한 A씨는 2017년 가을 서울대 미술대학 서양화과에서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직후부터 가족에게 학내 생활의 어려움을 가끔씩 호소했다.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한 A씨에게 한 교수는 "나는 너를 뽑지 않으려 했다"는 말을, 또 다른 학생은 "서울대 학부 학생이 네 자리에 오려고 했는데, 너 때문에 못 왔다"는 말을 대놓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학내 작품 전시회에서도 다른 학생으로부터 "우리 학교 출신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가족에게 힘든 감정을 내비쳤었다고 한다.
그가 글을 집중적으로 남겼던 지난해는 지도교수를 정하느라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다. 유족은 A씨가 이 때 여러 교수들로부터 '지도 거부'를 당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석 달 뒤인 11월3일 오후 5시26분, 극단적인 선택을 언급하며 자신에게 물음표를 던지기도 했다.
올해에도 그는 몇 편의 글을 적어 내려갔다. 대부분 누군가에 대한 원망, 자책에 대한 내용이었다. 최근 발견된 컴퓨터 메모장에는 "지도 교수 면담리스트에 내 이름이 없었다"는 말도 있었다고 A씨 아버지는 밝혔다.
A씨는 이 시기에 "교수가 다른 학생들 작품과는 달리 내 작품에 대해 코멘트(평가)를 한 마디도 안 한다"고 주변에 토로했었다고 한다.
A씨는 지난 5월10일 오후 수업이 진행되는 도중 교실에서 나가 학내 작업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경찰은 18일 뒤 이 사건을 단순 자살로 종결 처리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조교나 동료 학생, 교수로부터 기본 진술은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초·중·고등학생 사건의 경우 학교 폭력이나 따돌림이 있었는지를 중요하게 보는데, 이 사건은 성인이 숨진 사안이라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지는 않았다"고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초 말을 아끼던 서울대는 CBS 보도가 나가자 본격적인 경위 파악에 나섰다. 서울대 미대측은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향후 관련 교수와 학생 면담 등을 진행하는 한편, 유족을 다시 만나 위로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대 관계자는 "학생들도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만큼, 전문가와 논의해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며 "현재 외국에 있는 교수도 있지만, 두루 면담을 진행 하겠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