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주전장'은 말 그대로다. 싸움이 벌어지는 곳을 의미한다.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깎아내리고 일본군이나 정부 차원의 사죄와 배상 책임을 지우려는 우익 세력과, 이에 맞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진실을 알리고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물으려는 세력의 논쟁이 담겼다. (* 기자 주 : 다큐멘터리 안에서는 '우익'과 '역사 수정주의자'라는 표현이 함께 쓰인다)
'주전장'을 통해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데뷔한 미키 데자키 감독은 일본계 미국인이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위치 덕분에 그는, 일본 언론에서도 쉽게 인터뷰할 수 없는 다양한 우익 인사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미키 데자키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정보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각각 노출되고 수용하는 정보가 워낙 다르다 보니 싸움으로 번진다고 생각해, "위안부 이슈에 대해 아주 자세히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주전장'은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정보와 견해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일본군 '위안부' 논쟁에서 빠질 수 없는 주요 개념을 하나씩 제시하면서, 그에 대한 양쪽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키 데자키 감독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 세력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공공에 전파하는지를 성실하게 따라간다.
그들은 전쟁 상황에서 인권 유린을 당한 피해자의 트라우마 등 여러 가지 사정을 간단히 무시해 버린 채, 표현상의 미세한 차이를 문제 삼아 일본군 '위안부'의 증언은 허위나 거짓이라고 매도한다.
평화의 소녀상이 해외에 설치된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도 극렬히 반대하고, 결국 설치됐을 때 그것 때문에 해외에 사는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는 가짜 뉴스를 서슴없이 퍼뜨리기도 한다.
우익 세력은 일본군 '위안부' 일부가 돈을 받은 적이 있고 외출한 적이 있었다는 점을 들어 '성노예'(sex slave)라는 표현은 성립할 수 없다고 강변한다. 물리적으로 손발이 묶인 상태만을 '노예'로 단정하고, 자유 의지를 실현하지 못하는 '노예 상태'를 지운다.
일본군 '위안부'를 의심하고 공격할 때 내세우던 논리에 본인이 그대로 당해도, 이 사안의 권위자를 자처하면서 관련 서적을 하나도 읽지 않고 저명한 연구자가 누구인지 몰라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국제 사회에서도 뜨거운 이슈가 되는 모습을 보고 "역시 포르노 같은 매력이 있는 걸까? 이렇게 멍청한 문제에 과도한 관심을 갖다니…"라고 말한다. 더불어 한국에 관해서는 "가장 친일적인 훌륭한 나라"라며 "버릇없는 꼬마가 시끄럽게 구는 것처럼 참 귀엽지 않나요?"라고 반문해 관객의 실소를 자아낸다.
'주전장'은 일본 우익 세력의 논점 이탈과 잘못된 정보 전달을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 공고한 가부장적인 문화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민족과 가족과 공동체의 수치'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는 점, 국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다뤄지는 방식에 대한 이견 등도 함께 담겨있다.
특히 일본이 자국을 대외적으로 '잘못 없는 깨끗한 나라'로 알리고 싶어 하고 이를 위해 국제 사회에 지속적으로 어필하고 있다는 점, 일본이 공략하는 주전장이 미국이라는 점이 흥미로우면서도 오싹하게 다가온다.
논객 30여 명이 나와 말하는 '주전장'은 밀도가 높지만 지루하지 않다. 속도가 빠르고 스릴 넘치는 전개로 관객들을 집중시킨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분노를 일부러 자극하지 않는 여유로움이 인상적이다.
25일 개봉, 상영시간 121분 48초, 전체 관람가, 다큐멘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