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 최석기, 나는 아직 보여줄 것이 더 남았다

한국전력서 방출, 테스트 거쳐 우리카드 유니폼

V-리그 12년차 최석기는 '스승' 신영철 감독이 이끄는 우리카드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신 감독과 우리카드의 테스트를 통과한 최석기가 CBS노컷뉴스 앞에 자신의 계약서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인천=오해원기자
“나를 위해, 감독님을 위해, 그리고 기회를 준 우리카드를 위해 더 잘하고 열심히 할 겁니다”

V-리그 12년차 베테랑 센터 최석기는 최근 우리카드와 계약했다. 선수 생명의 위기에서 과거 자신을 일으켜 세웠던 '스승'을 따라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

2018~2019시즌을 앞두고 자유계약선수(FA) 계약으로 친정팀 한국전력 유니폼을 다시 입었던 최석기는 불과 1년 만에 방출 통보를 받았다. 두 번째 FA 자격을 얻어 친정팀으로 복귀했지만 스스로 ‘한심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지난 시즌의 최석기는 존재감이 없었다. 결국 장병철 감독 체제로 새 출발에 나선 한국전력은 서른셋 베테랑 최석기에게 재계약 불가 소식을 전했다.

최석기는 FA자격을 얻어 한국전력으로 향할 당시에 대해 “선수 생활의 마무리는 내가 처음 프로에 입문한 친정에서 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스스로 인정하는 부진했던 첫 시즌을 마치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2019~2020시즌을 준비하던 그는 씁쓸하게 정든 숙소를 떠나야 했다.

지난 18일 인천의 우리카드 숙소에서 CBS노컷뉴스와 만난 최석기는 “솔직히 예상 못 했다. 1년은 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트레이드 이야기를 들었지만 시간이 흘러 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방출 통보를 받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이야기라 막막했다”고 약 한 달 반 전의 기억을 힘들게 꺼냈다.


최석기는 “다들 내 무릎 이야기를 했다. 지난 시즌 계속 시합을 뛰었는데 무릎 때문에 (재계약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무릎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퍼져서 다른 팀으로 테스트를 보러 갈 수도 없었다. 짐을 싸 나와서는 일주일 정도 집에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아빠 노릇을 했다”고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자신을 V-리그에서 뛰게 해준 친정팀 한국전력에 애정이 컸던 최석기지만 둘의 마지막은 아름답지 못했다.(사진=한국배구연맹)
인생의 갈림길이었다. 타의에 의해 은퇴 기로에 놓인 최석기지만 그를 찾는 이들은 많았다. 여전히 코트에 나설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실업팀의 제안도 있었고, 현역 은퇴 후 지도자나 심판이 되어보라는 연락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최석기는 “아직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더 도전하고 싶은데 이렇게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 억울했다”고 했다. 그때 ‘스승’ 신영철 우리카드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을 불러 달라는 부탁이 아닌 인생의 선배로서 자신 앞에 놓인 불투명한 앞날의 고민을 상담하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석기에게 신영철 감독은 ‘은인’이다. 2008~2009시즌 한국전력 유니폼을 입고 V-리그에 데뷔해 첫해부터 주전으로 뛰었던 최석기는 끊이지 않는 부상에 성장이 더뎠고, 은퇴 직전까지 갔던 최석기를 다시 일으켜 세운 이가 바로 신영철 감독이었다.

최석기는 “(연이은 부상에) 은퇴를 하겠다고 했더니 신 감독님께서 ‘은퇴하면 뭐할 거냐. 사회에 나가더라도 몸은 건강하게 만들고 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재활을 하고 복귀했다가 (2014년 12월 3일) OK저축은행과 경기에서 터졌다.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하는 건 신 감독님께서 붙잡아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어두웠던 최석기의 표정은 신영철 감독의 이야기를 하며 조금씩 밝아졌다.

은퇴 위기에서 우리카드의 부름을 받고 자신의 네 번째 프로팀 유니폼을 입은 최석기는 코트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사진=우리카드 위비 배구단)
비록 한국전력에서는 아픈 무릎이 문제라는 이유로 방출됐지만 최석기는 여전히 코트에 서고 싶었다. 지난 시즌 부진한 영향으로 가족까지 욕을 먹어야 했던 설움을 본인의 힘으로 씻고 싶었다.

결국 최석기는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한정훈과 함께 신영철 감독의 테스트를 받았고, 함께 우리카드의 선수가 됐다.

“계약서에 사인하고 나서 차에서 한참을 울었다. 감독님께서 다시 믿어주셔서 감사했다. 우리카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최석기는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었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아들과 함께 결과를 기다렸던 아내는 “똑바로 해라”는 당부를 남겼고, 이 한 마디가 최석기를 다시 깨웠다.

최석기는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한 날보다 앞으로 할 날이 적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더 간절하다. 내가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스스로 내려놓겠지만 아직은 선수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잘하는 것도 좋지만 꾸준히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항상 잘하려고 하지만 잘 안될 수도 있다. 하지만 꾸준하게, 기복 없이 하고 싶다”고 간절한 속마음을 침착하게 털어놨다.

V-리그 12년차 최석기는 말한다. 코트에서 더 보여줄 것이 남았다고. 아직 ‘석기시대’는 끝나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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