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 44년 만에 전국대회 첫 우승은 이루지 못했지만, 강릉고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 강호 유신고에 0-7로 졌지만 '값진' 준우승
강릉고는 지난 16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74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결승에서 유신고에 0-7로 패하며 또 다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지난 2007년 청룡기 준우승 이후 12년 만에 찾아온 정상 도전이 실패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이날 승부는 예상외로 일찌감치 갈렸다. 강릉고는 이번 대회에서 첫 등판하는 1학년 최지민을 선발 투수로 내세윘다. 좌완 에이스 김진욱(2학년)이 준결승에서 71개의 공을 던지면서 고교야구 투구수 제한(60구)에 걸려 결승에 나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이스의 부재로 1회초부터 안타와 실책 등으로 무려 4점이라는 빅이닝을 내주며 초반부터 끌려갔다. 이어 반격에 나선 강릉고는 1회말 선두 타자가 안타로 출두해 좋은 줄발을 보였지만, 후속타 불발로 득점에 실패하며 중요한 초반 승기를 유신고에 완전히 뺐겼다.
이후 투수진을 대거 교체하며 역전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으나 추가로 3점을 내주는 반면, 공격에서는 유신고 선발투수 허동윤의 호투에 번번히 막혀 점수를 내지 못했다. 허동윤은 7회까지 총 91개의 공을 뿌리며 그동안 뜨거운 화력을 자랑하던 강릉고의 타선을 완벽히 잠재웠다.
이번 청룡기 결승전은 경기 시작전부터 '창과 방패'의 싸움으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강릉고의 공격력이 끝까지 살아나지 않으면서 유신고가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날 결승전 경기는 졌지만 이번 대회에서 강릉고가 보여준 투지와 저력은 앞으로 더 큰 가능성을 남기며 다음 대회를 기약했다.
앞서 강릉고는 지난 12일 열린 16강전에서 우승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전통의 강호 광주일고를 7-0 콜드게임으로 제압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다. 특히 광주일고는 18년만에 충격적인 콜드게임 패배를 당하면서 전국적인 이슈를 낳기도 했다.
이어 강릉고는 지난 13일 열린 인천 제물포고와의 8강전에서도 14-7 콜드게임으로 따내며 돌풍을 이어갔다. 그리고 준결승에서는 개성고(옛 부산상고)를 5-2로 제압하며 당당하게 실력으로 12년 만에 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준우승을 차지한 강릉고의 수상도 잇따랐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남다른 투지와 열정을 보인 강릉고는 '배움의 야구상'을 수상했다. 이와 함께 팀내 좌완 에이스로 큰 역할을 한 김진욱(2년)은 감투상, 주장 좌익수 김주범은 8타점을 기록해 타점상, 9득점을 올린 홍종표(3년)는 최다득점상을 받았다.
강릉고 최재호(58) 감독은 "에이스 투수가 빠지니까 다소 힘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하지만 여기까지 와준 선수들 모두에게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저학년들도 좋은 경험 많이 했고, 다음 대회도 잘 준비해 다시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강릉고가 비록 청룡기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야구 열기로 뭉친 응원과 화합은 그 어느팀 보다 뜨거웠다.
결승전이 열린 서울 목동구장은 경기 시작전부터 강릉고를 응원하는 함성으로 가득 차 마치 홈경기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모교 재학생들을 비롯해 강릉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동문 1200여 명은 경기장 1루 관중석을 빽빽히 채우며 목동구장을 달궜다.
"플레이, 플레이, 플레이 강고"를 외치는 응원가를 비롯해 선수들에게 화이팅을 불어 넣는 응원 구호와 교가는 경기에 나선 선수들에게는 큰 힘을 보탰고, 상태팀의 사기를 꺽기도 했다. 특히 전국 각지에서 모인 동문들과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던 시민들은 이날 경기장에서 야구와 애향심으로 똘똘 뭉쳐 말그대로 '화합의 장'을 이뤘다.
경기장을 찾은 김해례(여·58)씨는 "강릉 출신 대학 동아리 모임 친구들과 함께 왔다"며 "강릉시민으로써 결승전까지 올라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우승을 못해 다소 아쉽지만 어린 선수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무척 감동스러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강릉고 정상수 총동문회장은 "졌지만 훌륭한 경기였던 만큼 더욱 갈고 닦아서 더 좋은 결과를 낳기를 바란다"며 "야구를 통해 동문들이 이렇게 자긍심을 갖고 단합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선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도 모교 발전을 위해 더욱 큰 관심과 지원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강릉고 최종선 교장은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청룡기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거두면서 재학생과 동문들은 물론 강릉시민들의 자부심도 고취돼 있다"며 "강릉고의 위상이 높아질 수 있도록 고생한 선수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고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