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규제 국면에서 조선일보의 역할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조선일보는 자사 기사를 일본어로 번역해 야후 재팬에 제공하고 있다. 국내 언론단체들이 왜 이렇게 격앙된 어조로 조선일보 일본어판을 문제 삼는지, 실제로 일본어판 기사를 살펴봤다.
그랬더니 국내 기사 제목과 다른 제목으로 포장된 기사들이 많았다.
15일 국내에 보도된 조선일보 사설은 ['국채보상''동학운동' 1세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청와대]라는 제목이었다.
하지만 일본어판 제목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국민의 반일 감정에 불을 붙일 한국 청와대]였다.
다분히 선동적으로 다가오는 제목이다.
해당 사설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신의 SNS에 동학 농민 혁명을 소재로 한 노래인 '죽창 노래'를 언급한 사실을 밝히며, 외교 갈등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반일 감정에 불을 붙이려하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보복까지 부른 한·일 갈등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서 비롯된 외교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미리 나서 일본 측과 대화하고 해법을 만들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일이라며 '삼권 분립'을 이유로 8개월간 수수방관하며 일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일본에 대한 비판은커녕 우리 정부 측이 일본과 대화하지 않은 탓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조선일보는 14일에도 '나는 善 상대는 惡? 외교를 도덕화하면 아무것도 해결 못해'라는 제목의 최상용 전 주일 한국대사 인터뷰를 실었다.
조선일보 일본어판의 제목은 '도덕성과 선악의 이분법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였다.
역시 한글 제목보다 더욱 직설적이다.
이 글도 역시 한국 정부가 징용 문제 해법으로 내놓은 '한일 기업 출연 기금안'은 의미 있는 대안이었지만 타이밍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 전까지 일본의 여러 제안에 우리 정부가 책임 있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며 우리 외교의 미숙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더해 향후 1년 간 양국 관계의 위축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2위는 '추악한 한공인'이라는 표현이 제목에 들어가 있는 또 다른 조선일보 일본어판 기사였다. 한국에 대한 혐오감을 높일 수 밖에 없는 글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7일자 한국어판에서는 호우성 경희대 철학과 명예 교수의 기고문을 실었다.
제목은 '[기고] 우리는 얼마나 옹졸한가'였지만, 일본어판 제목은 '한국인은 얼마나 편협한가?'였다.
기사에는 지난 1950년 중국의 티베트 침공 이후 지금까지 티베트에는 점령과 탄압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일본 제국에 의한 조선 통치보다 잔인하게 보인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티베트 불교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14세는 이를 다 모두 용서했다며 우리도 포용과 사랑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기사뿐만 아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10월2일부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조선일보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일본어로 번역해 제공하기 시작했다.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는 "지난해 10월부터 2019년 2월까지 댓글을 번역해 제공한 기사 수가 수십건 정도"라며 "상당수 기사는 현재 확인해보면 삭제됐는데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조선일보 측에서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포털인 야후재팬에서 이런 내용의 기사와 댓글이 다수 소비되고 있고, 이를 접한 일본인들은 자연스레 이것이 한국 내 보편적인 여론 또는 정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언론단체들의 평가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노태우 정권 때부터 쭉 봤는데 한국 언론 중에 일본 포털인 야후재팬에 일본판을 제공하는 언론들이 몇 곳 있는데 조선일보만 유일하게 댓글까지 번역해서 제공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