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는 일정과 환경의 불운과도 맞서야 한다. 류현진(32·LA 다저스)은 6월말 운이 좋지 않았다. 다저스타디움에서 콜로라도 로키스를 만났고 콜로라도 타자들이 류현진에게 조금은 적응한 상황에서 바로 다음 등판이 '투수들의 무덤' 쿠어스필드 원정이었다. 류현진은 콜로라도 원정에서 4이닝 7실점으로 부진했다. 올시즌 유일한 3실점 이상 경기다.
류현진이 쿠어스필드 등판 이전까지 쌓은 탑은 높고 견고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맥스 슈어저(워싱턴)나 저스틴 벌랜더(휴스턴)처럼 예전에 '몬스터 시즌'을 여러 차례 보여준 선수는 아니다. 워낙 부진했기에 괴물급 기세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콜로라도전 부진은 쿠어스필드 효과가 확실했다. 류현진의 전반기 마지막 그리고 후반기 첫 등판이 이를 증명한다.
류현진은 지난 5일(이하 한국시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홈경기에서 6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즌 10승(2패)을 달성했다. 16일 보스턴 펜웨이파크 원정에서는 최근 타격 감각이 물오른 보스턴 레드삭스 타자들을 상대로 7이닝 2실점 호투를 펼쳤다.
류현진은 수비 시프트의 불운과 내야수비의 불안 때문에 1회에만 2실점 했지만 이후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류현진의 최근 2경기에서 땅볼 유도 능력이 크게 빛났다. 뜬공 타구가 11개, 땅볼 타구는 무려 26개였다. 땅볼 타구가 많다는 것은 장타를 억제하고 더 나아가 대량 실점 위기를 방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류현진은 보스턴 원정 이전까지 17경기동안 만루 상황을 한번밖에 겪지 않았다. 주자를 많이 쌓아두는 경우가 그만큼 적었다.
그런데 류현진은 보스턴전에서만 두 차례 만루를 허용했다. 그럼에도 대량 실점은 없었다. 내야 수비 실수에서 비롯된 2실점이 전부였다. 위기 관리 능력이 빛났다.
류현진은 보스턴을 상대로 16개의 헛스윙 스트라이크를 기록했다. 올시즌 류현진의 경기 중 세 번째로 많은 숫자다. 공격적인 보스턴 타자들의 타이밍을 흔들고 스트라이크존 구석을 공략하는 볼배합과 제구력이 그만큼 좋았다.
승리투수 요건을 채우고도 불펜 난조로 인해 시즌 11승 기회를 놓쳤지만 류현진은 쿠어스필드 등판 이후 2경기를 통해 올시즌 사이영상 경쟁에 뛰어들 정도로 굉장힌 페이스가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흔들릴 때는 있어도 무너지지는 않는다. 쿠어스필드에서의 부진 이후 곧바로 반등했다. 이날 경기에서도 1회에 흔들렸지만 이후 6이닝동안 '코리안 몬스터'의 위용을 되찾았다.
그리고 다저스는 연장 접전 끝에 보스턴을 이겼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류현진을 칭찬했다.
선발투수는 호투를 펼친다 해도 여러가지 변수로 인해 직접 승리투수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마운드를 지키면서 팀 승리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한 임무다.
다저스는 올시즌 류현진이 선발 등판한 18경기에서 13승5패를 기록했다. 선발 등판 경기의 팀 승률 72.2%는 팀내에서 클레이튼 커쇼(11승4패, 73.3%) 다음으로 높고 워커 뷸러(12승5패, 70.6%)를 앞선다.
류현진의 다음 상대는 내셔널리그에서 승률이 가장 낮은 마이애미 말린스(16일 현재 34승57패)가 될 가능성이 높다.
5선발 체제의 다저스 로테이션을 살펴보면, 류현진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4연전을 건너 뛰고 한국 시간으로 오는 20일 토요일 오전 11시10분 LA 다저스타디움에서 마이애미전에 선발 등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