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 송 : FM 98. 1 (18:20~19:55)
■ 방송일 : 2019년 7월 12일 (금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김원웅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 정관용> 올해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는 거 다들 알고 계시죠? 동시에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입니다. 약산 김원봉 선생이 단장을 지낸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 그래서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지난 9일 발족식을 가졌네요. 현재 광복회 회장이시고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맡고 계신 김원웅 위원장을 오늘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원웅> 반갑습니다.
◇ 정관용> 요즘 김원봉 선생 때문에 유명해졌어요, 조선의열단이. 우리 국민들 잘 몰랐어요, 사실은.
◆ 김원웅> 그렇죠.
◇ 정관용> 이게 1919년에 만들어졌군요.
◆ 김원웅> 그리고 올해가 딱 100년이 되죠. 11월 9일이면 창립 100주년이 됩니다.
◇ 정관용> 11월 9일날이 만들어진 날.
◆ 김원웅> 네, 그렇죠.
◇ 정관용> 김원봉 선생이 직접 만든 거예요?
◆ 김원웅> 열 몇 분이 그러니까 독립운동가들이 모여서 트윗하게 라디오나 이런 걸로 할 게 아니라 무장투쟁을 해서 쟁취하자,무장투쟁 독립운동 세력들이 최초로 결집을 해서 만든 조직입니다.
◇ 정관용> 그런데 열몇 명이 시작했어요?
◆ 김원웅> 열 세분이 시작했죠.
◇ 정관용> 13명이? 13명이서 무슨 무장투쟁을 합니까?
◆ 김원웅> 그렇게 해서 우리가 시작을 하자. 위원회를 조직을 하자. 조선의열단 조직 하자 이렇게 하고 무장투쟁이라는 게 말이 쉽지만 실제로는 생명을 건 거잖아요.
◇ 정관용> 당연하죠.
◆ 김원웅> 그렇기 때문에 이제 다른 데 생명 안 걸고 입으로만 해서는 안 된다. 무장투쟁을 하자 그래서 일본과 맞서서 싸울 수 있는 무력을 키우자. 이런 뜻으로 만든 거죠.
◇ 정관용> 그러면 그게 나중에는 광복군으로 연결이 되고 발전이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는 겁니까?
◆ 김원웅> 끝내 1941년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광복군이 있었거든요. 그 단체와 약산 김원봉이 이제 움직였던 조선의열단의 후신이 조선의용군으로 확대 개편됐어요. 조선의용대로 두 세력이 합쳐서 광복군 제2지대는 원래 광복군 한 사람이 하고 1지대는 조선의용군에 있던 조선의열단의 후신이 바로 1지대가 되고 그래서 이제 광복군이 더 탄탄하게 된 거죠.
◇ 정관용> 1지대, 2지대.
◆ 김원웅> 1지대, 2지대로.
◇ 정관용> 그럼 조선의용군이 더 대접받는 거예요?
◆ 김원웅> 더 대접받는 거예요. 그 당시의 평가가 조선의용군, 조선의열단의 후신이 훨씬 더 아주 강렬한 조직력도 있고 규모도 더 크고. 실제로 규모가 더 컸어요.
◇ 정관용> 그랬어요.
◆ 김원웅> 그러니까 원래 임시정부가 있던 광복군보다 조선의용군이 훨씬 더 규모가 컸으니까요.
◇ 정관용>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문 내용에 바로 그 조선의열단이 광복군과 결합하고 결국은 우리 국군의 시작이 되었다.
◆ 김원웅> 모태가 되었다. .
◇ 정관용> 거기에서 나온 거로군요.
◆ 김원웅> 그렇죠, 그렇죠.
◇ 정관용> 그런데 1919년에 만들어질 때는 딱 열세 분이 시작을 하셨고. 그리고 의용대나 광복군식으로 연결되기 전에는 일종의 테러공격 이런 걸 많이 감행을 했죠.
◆ 김원웅> 그러니까 다 했죠. 테러공격과 정규전 이런 걸 할 때 주로 안쪽에서는 장개석 군대랑 합체했고 북쪽에 가면 모택동군이랑 같이 양쪽 다 결합을 했죠. 결합을 했으니까 그러니까 독립적인 부대를 가지고 있으면서 연합으로 연합작전을 한 거죠.
◇ 정관용> 그래서 우리가 잘 기억은 못합니다마는 몇 가지 이름에 남는 거사들이 있었지 않습니까?
◆ 김원웅> 그렇죠.
◇ 정관용>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좀 알려주세요.
◆ 김원웅> 예를 들면 우리가 이제 조선의열단 이렇게 하면 자꾸 약산만 이야기를 하는데 약산보다 좀 더 원로이시고 또 우리 언론인이고 또 문학가이고 하신 역사학자이신 단재 신채호 선생님이 조선의열단이거든요. 조선의열단이 강령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니까 단초 신치호 선생님이 무장투쟁을 해야 된다 이런 입장을 같이 했기 때문에 단재 신채호도 그런 분이고.
◇ 정관용> 강령을 만드셨다.
◆ 김원웅> 그리고 강령을 만드셨어요. 그리고 이제 또 우리가 잘 아는 교과서에서 나오는 민족시인 있잖아요. 광야.
◇ 정관용> 이육사?
◆ 김원웅> 이육사. 광야 청포도 이거 지은 이육사 선생님이 조선의열단 단원입니다.
◇ 정관용> 그래요?
◆ 김원웅> 이육사 선생님은 우리가 참 감동적인 것이 끝내는 옥사를 하셨어요. 39살 짧은 인생 중에서 무려 17번이나 투옥이 되신 분이에요. 39살의 짧은 인생에 17번이 투옥될 정도로 그런 분이시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조금 덜 알려졌는데 조선의열단 창립할 때 13분 중의 한 분의 윤세주라는 분이 계세요, 윤세주. 세상 할 때 세 자 그분이 밀양 분이거든요. 그러니까 같은 또래죠. 그러니까 이분도 약산 김원봉도 밀양인데 이분도 중국에서는 교과서에 나와요.
◇ 정관용> 그래요?
◆ 김원웅> 그러니까 태양산전투라고 치열한 중국의 일본 사람과의 전투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일본 군대가 2만 몇천 명이 포위를 하고 있는데 중국의 공산당 지도부가 뚫고 나가고 싸우고 하는데 이분이 거기에서 전사를 하셨어요. 그래서 중국 가면 이분의 묘역이 크게 지어져 있는데 이분도 중국의 교과서에 나오는 분이에요. 그런 분도 있고 또 우리가 드라마틱 요즘 젊은이들이 봐도 드라마가 있는 게 저는 김상옥 의사라고 봐요. 김상옥.
◇ 정관용> 김상옥.
◆ 김원웅> 김상옥 의사가 지금 대학로에, 서울의 대학로에 동상이 서 있어요. 그런데 그분이 종로경찰서를 폭파했어요. 그런데 폭파를 했는데 34살의 짧은 삶으로 결국은 이제 돌아가셨는데 이분이 원래 자기가 종로경찰서 옛날 같으면 한옥이잖아요. 그리고 담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 담을 하여튼 열몇 집의 지붕 위를 날아다니면서 담을 넘고 달아나면서 일본 일제의 300명의 포위망을 뚫고 무려 세 시간이나 권총과 수류탄을 들고 싸웠어요, 쌍권총으로.
◇ 정관용> 폭파 시킨 후에 도주하는 과정에서.
◆ 김원웅> 폭파시킨 후에 도주하는 과정에서. 그래서 쌍권총으로 했는데 이분이 16명의 사상자가 났어요. 일본 경찰들이. 일본의 경찰들이 해서 총격전을 했는데.
◇ 정관용> 도주하면서 지붕을 넘나들며 쌍권총으로 16명을.
◆ 김원웅> 16명을 죽이고 그러고 나서 본인은 나중에 한 발 남은 걸로 자결하셨어요. 그게 김상옥이에요. 요즘 드라마를 봐도 많이 봐도 젊은 애들 굉장히 매력적인 쌍권총. 그런 분인데 그런 분도 있고 또 일제 때 또 일제가 조선의 경제를 착취하는 기관이 대표적인 게 동양혁신회사 그다음에 조선식산은행 여기를 폭파하겠다고 폭탄을 던진 분이 나석주 분이에요.
◇ 정관용> 나석주.
◆ 김원웅> 그러니까 이게 아직도 독립운동사에서 사실은 조선의열단을 빼놓으면 굉장히 빈약해져요.
◇ 정관용> 우리 다른 건 모르겠지만 단재 신채호 선생하고 이육사 모르는 사람 없어요.
◆ 김원웅> 그렇죠.
◇ 정관용> 그런데 그분들이 조선의열단 출신이라는 건 몰라요.
◆ 김원웅> 모르죠, 그렇죠.
◇ 정관용> 왜 이렇게 된 거예요?
◆ 김원웅> 이게 해방 이후에 조선의열단이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운동이에요.
◇ 정관용> 그렇죠.
◆ 김원웅> 그러니까 제가 이런 기사도 나와요. 술 한잔 먹고 나쁜 짓을 한 조선인이 하나 있었나 봐요. 그러니까 일제 경찰이 잡아가 수사를 하는데 그 친구가 내가 조선의열단이다.
◇ 정관용> 거짓말로?
◆ 김원웅> 거짓말로. 그랬더니 일본 경찰이 저 밑에 아무도 없더래요. 도망왔대. 그러니까 조선의열단이.
◇ 정관용> 그렇게 무서워했다.
◆ 김원웅> 어디에서 나타나서 어디에서 총을 쏠지 모르고 자기 생명을 바치는 사람들이다 보니까 도망을 가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우리가 일제가 독립운동을 하면 현상금을 걸잖아요. 그런데 백범 김구가 현상금이 많이 걸렸어요. 60만 원이에요, 그 당시에. 그런데 약산 김원봉은 100만 원이야. 그런데 그 100만 원이 요즘 돈으로는 320억 원이에요.
◇ 정관용> 그렇죠, 그렇죠.
◆ 김원웅> 320억 원이 빈라덴, 빈라덴이 500억 원이라고 하더라고. 그 이전에 전 세계에서 제일 높은 현상금이에요. 그런데 일제가 두려워했는데 해방 이후에 우리나라의 집권 세력들이나 그 세력이 일제가 두려워했던 걸 똑같이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친일반민족세력이 집권하다 보니까. 그래서 조선의열단이 무장투쟁 같은 걸 조금 이렇게 폄하하는 것 같은 느낌.
◇ 정관용> 그보다도 해방 이후 직후 공관에서 약산 김원봉 선생이 바로 그 친일 잠재들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받으셨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북한으로 가시게 된 거잖아요. 그리고 북한에 갔다는 그걸 또 핑계로 빨갱이 됐다는 식으로 해서 친일파 잔재들이 조선의열단을 뭉개버린 것 아닙니까.
◆ 김원웅> 저는 백범 김구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나는 어떤 불이익이 있다고 하더라도 외세에 의한 분단된 우리 뜻이 반영된 분단된 남한의 단독 정부에는 참여하지 않겠다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백범 김구 선생님이 만약에 살아계셨다면 대한민국에서 훈장을 안 받으셨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 지금 말씀하신 김원봉 선생님이 이분이 제 아버지가 조선의열단이에요.
◇ 정관용> 광복군 출신이시잖아요.
◆ 김원웅> 광복군 출신 1지대예요. 그리고 우리 어머니도 16살 처녀인 나이에 조선의열단에 가입을 했어요. 21살 때 저희 아버지를 만났어요. 우리 어머니도 조선의열단이야. 그러니까 김원봉 선생님을 잘 알잖아요. 그런데 김원봉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한 얘기가 공산주의자 아니야. 순수한 민족주의자예요. 그래서 그분이 해방 이후에 남쪽에 살려고 왔잖아요. 백범 김구랑 같이. 그래서 왔는데 일본 친일 경찰이 시켜서 가서 잡아다가 수모를 주고 뺨을 때리고 그리고 그것만 한 게 아니라 친일 경찰들이 테러리스트랑 결합해서 깡패들 암살 시도를 했어요. 그래서 그걸 그러니까 그 직전에 그때 돌아가셨고. 백범 김구도. 만약에 약산 김원봉이 한국에 계속 계셨다면 저는 암살당했을 거다. 그러니까 생명의 위협 때문에 월북을 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분이 월북한 게 아니라 쫓아낸 거예요. 남한의 친일세력들이. 그렇게 쫓아내놓고 왜 도망갔냐. 이렇게 하면서 그 사람 훈장 안 된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저는 조금 적반하장 같아.
◇ 정관용> 아무튼 북한으로 가시게 된 그 과정에 대해서는 지금 여러 가지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박해 때문에 쫓겨났다. 그런데 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부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런 그 부분은 또 따로 있으니까 그래서 이제 논란거리가 되는 건데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광복군의 중심부대 역할을 할 만큼 핵심이었던 조선의열단이 바로 그 약산 김원봉 선생의 북한 행적이라는 것 때문에 심지어 이육사까지도 우리 국민이 기억 못할 만큼 그렇게 잊혀져서야 되겠느냐. 이것만은 확실한 거 아니겠습니까?
◆ 김원웅> 저희들이 올해가 사실은 100주년이 되잖아요. 그러면 정부도 마땅히 계획을 세워서 임시정부 100주년만이 아니라 조선 100주년도 기념행사를 해야 되거든요. 그리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 아니에요.
◇ 정관용> 그런데 기념사업은 정부가 만든 게 아니에요? 민간이 만든 거예요?
◆ 김원웅> 해달라고 했더니 관심이 없더라고요. 할 수 없이 저희들이 민간으로 만들기 시작을 해서 거기에 안중근의사기념사 앞에 단체기념사 앞에 이런 기념사 앞을 다 합쳐서 연대해서 같이 지금 하는 거죠.
◇ 정관용> 정부 예산 지원도 없고?
◆ 김원웅> 아무것도 없죠.
◇ 정관용> 11월 9일 그날을 기점으로 무슨 기념행사들을 준비하고 계세요?
◆ 김원웅> 저희들이 기념행사를 여러 가지 학술적인 행사도 조선의열단을 재조명하기 위해서.
◇ 정관용> 학술행사 중요합니다. 그거 잘 알려야 돼요.
◆ 김원웅> 그래서 국제학술대회를 하려고 하는데 우선 북한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요. 또 중국에도 봉산당 쪽에 조선의열단 활동을 한 사람이 있고 대만에도 조선의열단 전문가들도 있고 또 일본에도 조선의열단이 지금 자료에 의하면 한 2000명 있었다 그래요, 그 당시에. 그 중의 한 명이 박열이에요.
◇ 정관용> 박열.
◆ 김원웅> 그런 분들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비밀 조직이니까. 그런 일본에 또 전문가들이 있어요. 합쳐서 동양의 조선의열단 활동 영역에 있는 분들끼리 모여서 한번 학술토론회를 갖자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있고요. 또 이제 그것보다는 더 중요한 건 국민들이.
◇ 정관용> 알아야죠.
◆ 김원웅> 국민들이 알아야 해서 저희들 욕심 같아서는 11월 9일에서부터 10일, 11일 이렇게 걸쳐서 시청 앞 큰 광장에서 시민이 참여하는, 국민이 참여하는 축제를 한번 하고 싶어요. 그래서 조선의열단은 가장 어떻게 보면 장렬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장렬한 조직이잖아요. 그래서 장렬한 조직에 걸맞은 뮤지컬 같은 것도 상영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저희들이 돈이 좀 필요해서 요즘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국민 모금 같은 것 이렇게 하려고 지금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지금 벌써 7월 중순인데.
◆ 김원웅> 그래서 지금 바쁘죠.
◇ 정관용> 11월달에 뮤지컬 올리시려면. . .
◆ 김원웅> 그래서 지금 일부 간부들이랑 상의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지금 상의 시작해서 됩니까? 한참 연습해야 되는데.
◆ 김원웅> 그렇죠. 지금 걱정이 많아요. 예산을 정부랑 계속 상의하다 늦어졌어요.
◇ 정관용> 명진스님도 기념사업회의 한 분이시더라고요.
◆ 김원웅> 그렇죠, 기념사업회.
◇ 정관용> 기념사업위원회 발족식에서 오늘 이 자리는 조선의열단 2기 출범시기로 봐야 된다고 했다면서요.
◆ 김원웅> 그 얘기는 아직도 조선의열단이 해야 될 일이, 조선의열단 기념사업회가 해야 될 일이 옛날 기념사업회가 했던 일이 남아 있다.
◇ 정관용> 남아 있다, 과제가 남아 있다.
◆ 김원웅> 아직도 숙제가 남아 있다. 우리 사회가 해방 이후에 친일 미청산 바탕 위에서 우리 사회의 주류가 기득권층이 친일반민족세력들이 주류권력이 됐다. 그래서 그 주류들이 여러 국가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또 분단을 극복하는 것도 가로막고 있다. 그런데 그걸 하려면 지금도 조선의열단 정신이 필요하다.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거라고 봅니다.
◇ 정관용> 다 맞는 말씀인데 무장투쟁 하면 안 됩니다.
◆ 김원웅> 그렇죠. 그렇죠, 무장투쟁은.
◇ 정관용> 지금 시대는 조선의열단의 정신을 그대로 받아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 김원웅> 제가 이제 무쟁투쟁 안 된다고 하니까 제가 갑자기 생각나는 말이 지난번에 박근혜 대통령이 무너진 거 있잖아요. 박근혜 정권이 무너진 것은 야당이 무너뜨린 게 아니잖아요.
◇ 정관용> 국민이 했죠.
◆ 김원웅> 국민이 했는데 국민이 뭘 무너뜨렸냐. 박근혜 정권은 야당과 싸우다 무너진 게 아니라 역사의 진실과 싸우다 무너졌다고 봐요. 그래서 역사의 진실을 국민들께 알리는 게 좋은 나라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지금 무장투쟁은 아니지만 역사의 진실을 국민들께 알리고 공유하는 것이다.
◇ 정관용> 일본 아베 정부가 지금 경제보복 하고 있잖아요. 경제 제재. 이거 우리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김원웅> 제가 그 얘기하기 전에 우선 일본이 지금 적반하장이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서.
◆ 김원웅> 저는 제가 그래서 강제징용에 관계되는 법을 제가 대표발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59명으로 국회 통과시켰는데 몇 표 차이로 통과가 됐어요, 2004년에. 그 법 때문에 지금 이 문제가 생긴 겁니다. 그런데 강제징용진상규명법 때문에 생겼는데 그래서 제가 그 내용을 쭉 검토를 해 봤더니 1965년에 박정희가 체결한 한일조약에는 일제 36년간 식민지배가 잘못된 거다. 그런 말이 어느 한 구절도 없어요.
◇ 정관용> 없죠.
◆ 김원웅> 오히려 36년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다라고 요건의 조항은 많아요. 그러니까 잘못한 게 아니니까 배상이 아니죠. 그러니까 잘못이 없으니까 배상은 아니죠. 잘못해야 배상 국가니까. 한국에 주면서 일본의 총리가 국회에서 발언한 게 뭐냐, 배상이냐. 야당 의원들이 물으니까 아니다, 그러면 뭐냐. 독립축하금이다 그랬어요. 일본은 가해자, 우리는 피해자잖아요. 축하할 자격 있는 나라가 아니라 사과와 배상할 자격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그 법을 만들어서 그 안에다가 우리가 강제징용 이런 것도 전부 다 그 안에 우리가 알아서 할게. 이렇게 한 거예요, 보니까.
◇ 정관용> 청구권 협정에서.
◆ 김원웅> 청구권 합의에서. 그렇게 했는데 이렇게 돼 있어요. 국가 간의 합의로 개인이 갖고 있는 청구권을 박탈할 수가 없어요.
◇ 정관용> 없어요, 없죠.
◆ 김원웅> 그것이 국제 21세기 문명사회의 하여튼 아주 명확한 법론이에요.
◇ 정관용> 그 정신에 입각해서 대법원 판결이 나온 거죠.
◆ 김원웅> 그렇죠. 그래서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는데.
◇ 정관용> 또 일본도 그걸 인정했어요.
◆ 김원웅>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쨌든 지금 이런 문제를 만들어놓은 것은 박정희 후유증이에요. 박정희 후유증이라고. 그러니까 박정희가 일을 저지르고, 나쁜 일은 저지르고 그걸 핑계로 아베가 지금 문제제기를 하는 걸로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데.
◇ 정관용> 어떻게 합니까?
◆ 김원웅> 그런데 그런 면에서 저는 박정희의 법통을 이은 지금 현재 제1야당이 겸허해져야 한다고 봐요. 우리가 그때 한때 모셨던 박정희 대통령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까 우리가 반성하고 앞으로 절대 안 하겠다 국민에게 사과해야지 이렇게 해야 되는 거지.
◇ 정관용> 그런 자세가 아닌데요.
◆ 김원웅> 그게 아니고 거꾸로 문재인 네가 잘못했지 않냐. 이렇게 나오는 건 진짜 뻔뻔스러운 거죠. 진짜 원인 제공은 박정희가 했거든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야당한테 촉구하셨고.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 김원웅> 저는 우리 정부가 그동안에 아베가 저렇게 나오는 데는 박정희, 박근혜, 이명박 이런 역대 정권 속에서 친일 반민족의 뿌리를 둔 그런 정치세력들이 우리 민족을 대변할 자세가 안 돼 있잖아요. 자격도 없는 세력들이 일본을 잘못 버릇을 가르쳐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민족이 이걸 대변할 세력들한테 잘못 깃들어진 아베, 문재인 정부가 물러서면 안 돼요. 버릇을 고쳐야 돼요.
◇ 정관용> 버릇을 가르쳐야 된다?
◆ 김원웅> 그렇죠. 그건 국제적으로 다 통용될 수 있는 거라고 봅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광복회 회장이시고 조선의열단 창당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계시고 바로 그 조선의열단 부모님의 자손이신 김원웅 위원장. 오늘 고맙습니다.
◆ 김원웅>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