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日 수출규제 역공은 면밀히 계산된 해볼만한 '승부'

日 수출규제 조치 국제기구 통해 공동 조사하자
한국 흔들기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
하태경 의원이 공개한 日 정부 과거 대북 우회 수출 자료도 동력
판문점 북미정상회담 성과 '딴지걸기'에 좌시할 수 없다는 분위기

청와대가 12일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돌파하기 위해 한일 양국 정부 모두 대북제재 위반 혐의가 있는지 여부를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해 공동조사를 하자고 제안한 것은 일종의 '역공'으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의 대북제재 위반 프레임을 국제사회에 각인시켜 자칫 의혹이 사실인 양 진실을 호도하고, 자국의 한국 수출규제 조치가 마치 정당한 것처럼 여론몰이를 하려는 시도 자체를 초반에 제압하겠다는 청와대 내부 판단이 깔렸다.

◇ "국제기구에 공정한 조사 의뢰하자" '승부수'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김유근 사무처장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긴급 브리핑을 자청해 "불필요한 논쟁을 중단하고 일본 정부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명백히 밝히기 위해 유엔 안보리 전문가 패널 또는 적절한 국제기구에 공정한 조사를 의뢰하는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NSC는 지난 2017년 북한의 잇달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핵실험 등 한반도 위기감이 치솟을 때도 서면브리핑 수준으로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 NSC 사무처장이 직접 브리핑까지 자처해 특정 국가를 향한 입장을 내놓은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실제로 청와대 내부에서는 일본 고위 관료와 우파 언론들의 '한국 흔들기'를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기류가 형성됐고,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NSC가 직접 나서 일본 정부를 향해 강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정리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사무처장은 브리핑 뒤 기자들과 만나 "최근 일본측 고위 인사들이 수출 규제와 관련해 우리측이 수출 규제 품목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유엔 제재에 대한 이행을 우리측이 잘 못하고 있다는 등의 언급이 있었다. 청와대에서 논의한 결과 사무처장인 제가 정부의 입장을 밝히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며 발표 배경을 설명했다.

◇ 日 주장 일축할 자신감 피력…"일본에 대한 조사도 함께 실시"


김 사무처장은 "(국제기구) 조사 결과 우리 정부의 잘못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에 대한 사과는 물론 보복적 성격의 수출규제 조치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공세를 높였다.

또 "일본의 위반사례에 대한 철저한 조사도 함께 실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7일 아베신조 일본 총리가 보수성향의 후지TV에 출연해 한국 수출 규제 이유로 대북 제재 준수를 언급하면서 군불을 떼고,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 대행도 "군사 전용이 가능한 물품이 북한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며 자국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 조치를 정당화한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량살상무기 관련 규제 물자에 대한 수출 위반 사건이 이렇게 많이 적발됐는데도 한국 정부가 공개하지 않은 건 놀랍다"(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 위원이었던 후르가와 가즈히사), "대량 파괴에 전용이 가능한 전략물자가 한국에서 위법으로 유출되는 게 급증하고 있다"(오노데라 이쓰노리 자민당 안보조사회장) 등 일본 정치인의 잇달은 의혹 제기에 '제3자 공동조사'를 카드를 빼들며 일본 정부와 보수 언론간 의혹제기 확산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도 풀이된다.

특히 한국 정부의 잘못이 없다는 조사결과가 나오면, 이를 기반으로 일본측 주장이 처음부터 잘못됐으며 의도성을 담은 '정치보복성' 경제제재 조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국제사회에서 일본 규제 철회의 당위성을 설파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 정부가 대북 제재 위반 우회 수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일축할 정도의 자신감도 엿보인다.

◇ 일본 정부 대북 전략물자 반출…하태경 의원 폭로도 '동력'

김 사무처장이 이날 "일본도 수출통제 제도를 투명하게 운용하고 있는지 자문해보기 바란다"고 언급한 점도 눈길을 끈다.

일본 정부가 전략물자 대북 우회수출 관리 부실 책임을 우리 정부에 덧씌우기 전에 일본 정부가 당당한지 돌아보라는 '훈계'이자 '질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이 과거 불화수소 등 전략물자를 북한에 밀수출한 사실을 일본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CISTEC) 자료에서 확인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오히려 일본 정부가 대북 전략물자 수출 통제에 허점이 있을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관계가 나온 만큼, 국제 여론전에서도 해 볼만한 승부라는 판단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아닌 일본 정부의 잘못이 드러나면, 아베 총리가 이달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지자 결집 등 내부 정치용으로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했다는 여론이 급속히 확산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일본 정부는 급속하게 수세에 몰리면서 수출 규제 조치 철회는 물론 향후 비슷한 시도를 재차 할 수는 없을 것이란 계산도 깔렸다.

◇ 한반도 비핵화 북미정상회담 '길목', 日 딴지걸기에 '엎어치기'

청와대가 이처럼 강한 역공에 나선 또 하나의 배경에는 일본 정부의 일방적 주장이 조만간 열릴 북미간 비핵화 협상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30일 판문점 남측지역 자유의 집에서 50분 넘게 사실상 3차 북미정상회담을 이어가며 하노이 '노딜'을 극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마지막 날 트윗을 통해 김 위원장애게 '원포인트' 만남을 제안했고, 김 위원장이 이에 응하면서 '기적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이를 계기로 비핵화 방법론을 놓고 신경전을 펼치던 북미 양국은 이번 달 내에 실질적인 비핵화를 위한 실무협상팀을 꾸리기로 잠정 합의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의 큰 걸음에 마치 딴지라도 걸 듯, 한국 정부를 대북 제재 위반 국가로 몰아가는 것을 청와대로서는 더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정치적 판단도 작용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김현종 2차장과 외교부 김희상 양자경제국장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의 불합리성을 적극적으로 따지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일본측이 우리 정부가 수출 통제와 (대북) 제재 이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근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그 근거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전문가 패널이나 국제기구에 한일 양국 모두 공정한 조사를 해보자는 것"이라며 청와대 내부의 강한 반감을 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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